[이동희의 노크노크] 개인의 취향, 개인의 행복
[이동희의 노크노크] 개인의 취향, 개인의 행복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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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희의 노크노크] 기자의 일은 두드리는 일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이틀 전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간은 오전 10시 30분경. 기자회견을 챙기기 위해 동대문역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는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출근하는 길이세요?”라며 말을 걸었다. 낯선 사람을 향한 경계심이 일었지만, 자리에 앉기 전 가방이 열려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준 사람이라 (경계심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채로) 출근하는 길이 아니었음에도 그냥 그렇다고 말을 받았다.

그렇게 물꼬를 튼 대화는 약 10분간 이어졌지만, 대화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의 일방적인 질문 공세가 대부분이었다. “무슨 일 하세요?” “출근 시간이 언제예요?” “입사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 등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진행된 낯선 사람과의 게릴라 인터뷰가 불편했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기도 뭐해 나름 친절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그렇게 끝없이 쏟아지던 질문은 우연히 같은 시간, 같은 전동차를 타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된 사이에서 쉽게 나오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수준까지 올라갔다. “지금 하시는 일은 하고 싶었던 일이에요?”

솔직히 말하면 기자 일이 꿈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초면인 사람에게 구구절절 설명하고 싶지 않아 대충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돌이켜보니 이날 이 사람과의 대화에서 내가 저지른 결정적인 패착은 이 대답이었다)

어느새 질문은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은 행복하냐’까지 나왔다. 특별히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지만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굳이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고나 할까) 시큰둥한 반응을 유지한 채로 행복한 건 아니라고 답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나를 불행한 사람으로 여기는 그의 태도에서부터 시작됐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행복하지 않다고요? 왜 그런 불행한 삶에 자신을 맡기고 계시는 건가요?’라는 측은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말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동시에 기분이 상하기 시작한 나는 약간의 반발심이 생겨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매일 매시간 행복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그럴 수 있죠”라는 대답이 되돌아 왔다.

결국 그는 누구였는가. 대화의 끝에서 그는 자신을 브랜딩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며 ‘나처럼’ 일을 하면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3~5년 차 젊은 직장인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짜 그런 직업이 있는지, 그 ‘브랜딩 회사’가 뭐 하는 곳인지에 대해서는 더 파고들지 않겠다)

그는 자신의 속한 회사 이름을 알려주면서 이름과 연락처를 알려주면 상담을 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다행히 그가 나보다 먼저 정차역에 내리면서 그와의 대화는 끝이 났지만, 그는 내리기 직전 ‘해브 어 굿 데이(Have a good day)’를 외치며 마지막까지 내 속을 긁었다. 이거 하나는 확실했다. 그가 아침부터 내 굿데이를 날려버렸다는 것.

행복을 운운했던 그의 질문과 대답이 왜 내 기분을 상하게 했을까? 답은 금방 나왔다. 그가 내 행복을 진단하면서 나에게 가져간 정보는 극히 일부였다는 것과 행복의 잣대를 내가 아닌 바깥에서 가져왔다는 것. 즉, 내 행복을 함부로 규정했다는 것에 대한 불쾌함이었다.

타인의 잣대가 나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이다. *행복이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타인의 잣대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다만, 행복도 개인의 취향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 행복을 강요해 다른 사람에게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이렇게 해야 행복할 것이라는 ‘행복론’은 불행에 빠지는 또 다른 길이라는 것을.

*이 문장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 나온 문장을 변형한 문장으로, 원문은 “타인과의 관계가 나의 선호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되는 것이 아니라 내 의사와 관계없이 강요되고, 의무와 복종의 위계로 짜이는데 이것이 행복의 원천이 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