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부지런함과 노동생산성
[박완순의 얼글] 부지런함과 노동생산성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1.20 18:25
  • 수정 2019.11.20 1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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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아침과 지하철을 상상하면 무엇이 떠오르냐고 물었을 때 비슷한 대답들을 할 것이다. 비슷한 대답을 하면서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푹 쉴지도 모른다. 그들과 다르지 않은 상상을 하며 아침 출근길 지하철을 타러 갔다. 한숨을 푹푹 쉬는 사람들인데도 그들은 여전히 부지런하다. 개찰구 넘어 지하철 전광판에 보이는 ‘전역 도착’을 보고 종종 걸음으로 뛴다. ‘당역 접근’을 보고 빨리 뛴다. ‘당역 도착’을 보고 전력 질주를 한다. 당역 도착? 내 얘기였다. 나도 전력 질주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해가 뜨면 부지런히 산다.

각자가 부지런하다. 우리는 부지런하다. 대한민국은 부지런하다. 그렇다. 우리 사회는 근면이라는 신앙을 받들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다. 2017년 기준 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OECD 36개 회원국 중 29위이다. 그렇게 부지런하게 사는데, 근면이라는 신을 모시며 사는데 낮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자고, 더 부지런을 떨자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많다. 아침에 여의도에 간 적이 있는데, 건물이 얼마나 높은지 아침 안개에 쌓여 건물의 윗부분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 건물들은 압축 성장, 한강의 기적이라고 우리의 지난 근현대사를 치켜세우는 단어들로 만들어졌다.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경제 개발을 했는데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그래서 경제 발전은 전 세계에 소문날 정도로 이뤘는데 아침마다 사람들이 그렇게 뛰어다니는 것인가?

노동생산성이라는 말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생산성은 한 국가에서 생산된 부가가치 총합인 국내총생산(GDP)을 전체 고용자 수로 나눠 산출한다. 간단히 말해 노동자 한 명이 얼마의 돈을 벌고 있는지 확인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상품의 시장 가치가 중요한 변수다. 단순화해서 예를 들면, A국에서는 햄버거가 만 원에 팔리고 B국에서는 오천 원에 팔린다고 했을 때, 햄버거 내용물 구성이 다르지 않고 햄버거 점포의 노동자 수도 비슷하고 팔린 개수도 비슷하다면 B국 햄버거 만드는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은 낮다.

A국이든 B국이든 햄버거를 만드는 노동자가 햄버거를 만들 때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지, 어떻게 하면 고객이 좋아할지,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만들었는지 등 실제 노동자의 노동 기여도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만들어낸 상품이 시장에서 얼마로 팔리냐가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을 중요하게 판가름한다. 이러한 ‘노동생산성’에 ‘시간당’의 의미를 붙이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장시간 노동공화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간당 노동생산성을 산출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것도 크게 의미가 없어 보인다. 의미가 있다면야 우리 안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십 년 전 대한민국보다 노동생산성이 좋아졌다, 지금 A회사가 십 년 전 A회사보다 노동생산성이 좋아졌다와 같이 말이다. 연간 추이가 어떻게 되고, 변곡점에서는 어떤 것을 했기 때문에 생산성이 올랐으니, 그걸 계승하고 발전시켜보자 정도.

아 그리고 좀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몰입도나 심리적 효과 같은 노동 환경의 변화가 노동생산성을 높여준다는 이야기였다. 일례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아무런 조치(설비투자 등)를 취하지 않아도 일정 부분 생산성이 올라간다고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일해야 하기 때문에 몰입도도 생기고, 빨리 집에 갈 수 있다는 기대심리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물론 위에서 질문을 던지자고 했던 노동생산성의 측면이긴 하지만) 아침 지하철 타러 가는 사람들이 더 안 뛰어서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이야기에 반대 근거가 된다. 그리고 개인의 근면을 강조하기보다는 일하는 방식의 효율성에 대한 고민도 안겨준다. 그렇게 고민해서 다른 나라와 비교하기보다도 ‘우리 예전보다 좀 더 효율적으로 일했구나‘라고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