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구성원이 배제된 공공기관 사명(社名) 변경은 정당성이 있는가?
[기고] 구성원이 배제된 공공기관 사명(社名) 변경은 정당성이 있는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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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양홍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감정원지부 위원장
양홍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감정원지부 위원장

공공기관의 역사는 국가 경제 발전의 역사와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올해로 창립 50주년이 되는 공기업, “한국감정원”의 역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형SOC 개발사업의 보상평가 및 금융기관의 담보평가, 부동산 가격공시제도 시행 등 감정평가제도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감정평가제도는 1940년대 각 금융기관에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급격한 경제성장의 이면에 지가상승과 토지 투기 등이 만연하게 되자 이에 따른 부동산 가격 결정과정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감정평가업무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보장하기 위해 독립된 전문기관인 한국감정원이 1969년 탄생하였다.

이후 한국감정원은 감정평가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다가 1980년대 후반 이후 민간영역의 성장과 더불어 점차 사적영역과 경쟁하는 과점시장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기부터 시행된 정부의 ‘감정평가시장 선진화 계획’에 따라 감정원은 최종적으로 2016년 9월, 민간과 경쟁하는 감정평가시장에서는 전면 철수하고 부동산시장 관리와 정부의 부동산 정책지원이라는 공공의 역할에 집중하는 기관으로 거듭났다.

민간과 경쟁하는 감정평가시장에서의 전면 철수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파레토효율을 추구하는 정부의 공공기관 기능 조정의 결과물이며, 지난 수년간 이어온 민간영역과의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대타협과 합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대타협의 파트너였던 한국감정평가사협회의 무리한 행보, 아니 더 나아가 공공기관의 경영에 부당하게 간섭하려는 불순한 시도가 지속되고 있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 낭비에 대한 우려가 재차 커지고 있다. 민간과 공공의 역할을 명확하게 정립한 공공기관 기능 조정의 결과를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통째로 뒤집고, 회원들의 이익을 위해 공공의 업무를 다시 넘보거나, 한국감정원의 사명(社名)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기 위해 전방위적인 압력과 로비를 행사하려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직능단체 혹인 이익단체의 특성상 본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국회나 행정기관 등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전혀 새로울 것은 없다. 하지만, 지켜야 할 선을 넘는 행동들은 사회의 정의를 훼손하고 가장 중요한 국민들에게도 득이 될 것이 전혀 없기에 문제는 심각해진다.

민간 이익단체인 한국감정평가사협회는 과거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감정(鑑定)’이란 단어가 들어있다는 이유로 한국감정원 사명이 국민 혼란과 불편을 초래하여 사명변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감정평가를 필요로 하는 경우는 상당수가 부동산 담보 대출의 목적일 때가 많은데, 이 경우 대출업무를 취급하는 금융기관에서 평가를 의뢰하기 때문에 국민 개개인이 혼선을 겪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다. 특히 한국감정원법 시행 이후로 우리 원은 감정평가 업무를 단 1건도 접수‧처리한 사례가 없어 감정평가사협회가 주장하는 국민 혼란과 불편은 그 실체가 없음이 자명하다.

오히려 50년간 국민들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자리잡은 ‘한국감정원’의 명칭을 다른 이름으로 변경했을 때 일어나는 국민 혼란과 불편이 가중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또한 공공기관의 불필요한 사명 변경으로 인해 뒤따르는 국민 혈세 낭비에 지적은 국민과 언론들의 공감을 얻기에 충분하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한국감정원은 며칠 전 한 언론기사를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공기업 브랜드 인지도 1위”에 오른 기관이다. 그만큼 국민들은 부동산 분야에서 한국감정원의 역할과 기능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50년간 켜켜이 쌓아올린 역사와 명성을 대표하는 사명(社名)이 하루아침에, 그것도 외부 이익단체의 부당한 로비에 의해 변경됨으로써 초래되는 혼란과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세금과 사회적 비용으로 전가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 우스갯소리로 “법 위에 떼법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억지주장을 늘어놓는 직능단체들의 압력에 못 이겨 이른바 ‘떼법’을 만들기도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빗댄 말이다.

공공기관의 사명(社名)은 회사를 대표하는 얼굴이며, 기관의 역사를 담고 있고, 기관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미래비전을 모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기관 내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회사를 이끌어갈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외부의 누군가가 ‘감놔라 배놔라’ 할 성질의 영역이 결코 아니다.

공공기관운영법(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에서도 정부는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볼 때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국감정원 사명 변경 역시 한국감정원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협의를 통해 진행되어야 하며, 정부의 청부입법이나 민간의 압력에 의한 사명변경은 결단코 옳은 방향이 아니다.

한국감정원을 사랑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현재 회사의 주인인 직원들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된 채 진행되고 있는 사명변경 개악(改惡)을 막기 위해 총력 투쟁을 전개하고 있으며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명 변경을 밀실에서 추진하고 있는 자들에게 진지하고 묻고 싶다. “본인들의 사랑하는 자녀가 태어나 이름을 지을 때 자신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가족들과 함께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진지하면서도 신중하게 이름을 결정했는지를 다시금 돌이켜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