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생활도 할 수 없는 점검수수료 자체가 영업 압박"
"기본생활도 할 수 없는 점검수수료 자체가 영업 압박"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2.04 19:42
  • 수정 2019.12.05 10: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회에서 첫 목소리 낸 코웨이 코디·코닥
"노동자로 인정받기 위한 노동관계법령 개정 필요"

3년 전 겨울, 웅진코웨이 코디 10년 차 고수진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길 위를 달렸다. 15kg이 넘는 정수기 필터 등 장비를 싣고 고객 집에 설치된 코웨이 제품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사고는 찰나였다. 빙판길에서 오토바이가 크게 미끄러졌다. 행인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를 세우고 겨우 일어났더니 갈비뼈가 욱신거렸다. 찢어진 패딩 점퍼에선 오리털이 날렸다. 

갈비뼈가 아파 가방을 메기도 어려웠지만 고수진 씨는 다시 걸음을 뗐다. 약속을 잡기 어려운 고객이라 돌아갈 수 없었다. 행색을 보고 놀란 고객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점검을 마쳤다.  

고수진 씨는 오토바이를 고쳐야 하고 병원에도 가야할 것 같아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미팅 참석은 어렵겠다고 이야기했다. 지국장은 "조심하지 그랬냐"며 "입원한 건 아니니까 미팅에 오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물었다. 서러웠지만 정해진 일정을 소화했다. 회사 업무를 위해 이동하다 다쳤는데도 회사에서는 책임은커녕 걱정 한마디 없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특수고용노동자인 코디에게 회사는 업무를 지시할 땐 직원처럼 대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개인사업자로 대하며 책임을 회피한다. 

- 고수진 코웨이 코디 증언 재정리

이윤선 코디가 4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에서 일터에서 겪은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윤선 코디가 4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열린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에서 일터에서 겪은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고수진 씨를 비롯한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4일 오전 국회에서 첫 목소리를 냈다. 불합리한 처우와 열악한 노동환경을 증언하고 함께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가전통신서비스노조 방문판매서비스지부(지부장 왕일선, 이하 방판지부)는 이날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를 열었다. 한 달 전 창립 총회를 한 방판지부 소속 코웨이 코디·코닥 40여 명은 하늘색 유니폼을 단정히 갖춰 입고 토론장을 가득 채웠다. 밝은 표정으로 들어온 이들은 동료들의 증언을 들으며 이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눈과 코는 내내 빨갰다.

□ 낮은 수수료로 인한 월 평균 수입 162만 원

김성혁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은 지난 6월부터 세 달간 웅진코웨이·청호나이스·SK매직서비스 방문판매 노동자 78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코디·코닥의 월 평균 순수입은 162만 원이었다. 총수입은 월 평균 222만 원이지만 차량운행비, 보험료, 주차비 등 업무 관련 개인 지출비용이 60만 원 정도 빠져나갔다. 

수입에서 점검·관리 수수료가 59.7%, 영업을 통한 판매 수수료는 33.2%를 차지했다. 이들은 한 달에 200계정 정도 제품을 점검·관리하지만 건당 수수료는 평균 5,500원에 불과해 영업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운 현실이 반영된 결과였다. 김순옥 코디는 "점검을 열심히 해도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점검 수수료를 받아야 해서 코디들이 때로는 무리한 영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며 "기본적인 생활도 할 수 없는 낮은 수수료 자체가 바로 영업압박"이라고 지적했다. 김순옥 코디는 "월 수수료만으로 생활이 어려워 밤에는 한정식 집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영업 압박과 수당되물림

이날 코디·코닥들은 영업압박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본사에서 매달 지국으로 보내는 '매출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내가 나의 고객"이 되어 제품을 떠안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윤선 코디는 "일하는 중에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린다. 지국장이 지금 점검 중인 고객님 댁 제품의 사용 개월수, 사용금액, 위약금 등을 불러주면서 '영업해봐라' '사용하지 않는 제품 좀 권해봐라' 하면서 영업압박을 한다"며 "'네'라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통화가 계속되다 보니 눈치 빠른 고객들은 불편해하신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고객이 제품을 반환하면 코디·코닥이 받은 영업 수수료를 회사에서 다시 빼가는 '되물림' 제도도 노동자들이 겪는 어려움으로 드러났다. 김순옥 코디는 "영업을 위해 고객에게 선물과 현금지원을 해준 금액을 빼고 나면 월 200만 원 벌기도 어려운 현실인데 수당되물림까지 당하는 달이면 최저임금도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참담한 심정에 빠진다"고 말했다. 

□ 가정방문노동자로서 겪는 어려움

방문판매 노동자들은 고객의 사적 공간인 '집'에 혼자 들어가 일을 하다 보니 성희롱·성폭행에 무방비하게 노출됐다. 고객의 애완견에게 물리거나 고객의 갑질에 시달리는 경우도 잦았다. 이윤선 코디는 "속옷만 입고 문을 열어주는 남성 고객 때문에 처음엔 놀라서 바닥에 주저 앉은 적이 있다. 그 고객이 쫓아올까 봐 벽을 잡고 계단을 내려온 기억이 생생하다"며 "사무실에 얘기하면 지국장은 고작 그 고객을 욕하거나 여성인 코디 대신 남성인 코닥으로 배정을 바꿔줬다"고 비판했다. 이윤선 코디는 만약 해당 지국에 코닥이 없는 경우에는 동료 코디가 자청해서 같이 가주는 식으로 대처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호소했다. 

4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개최된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에 참석한 코웨이 코디들이 동료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참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4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개최된 '생활가전업체 방문판매서비스 노동자 권익찾기 토론회'에 참석한 코웨이 코디들이 동료의 증언을 들으며 눈물을 참고 있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방문판매 노동자들이 원하는 노동조건 개선 방법은?

방문판매 노동자들은 더나은 환경에서 일하기 위해서 임금(수수료) 인상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비스연맹이 이들에게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 1위와 2위를 설문조사한 결과 1위 조건 중 '임금(수수료) 인상'이  61.9%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결과는 현재 코디들의 전체 수입 중 제품 점검과 관리만으로 받는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60%를 밑도는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이들은 제품 점검·관리 수수료만으로는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리하게 판매 활동에 나서는 상황에서 벗어나기를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4대 보험 적용'이 25.9%로 높았다. 이어 매출압박 중단(7.8%), 복리후생 확대(1.6%), 노동시간 단축(1.3%), 노동강도 완화(1.3%) 등의 순이었다. 1순위와 2순위를 모두 합할 경우 역시 임금(수수료) 인상이 44.6%로 가장 많았고 4대 보험 적용이 31.7%였다. 4대 보험에 대한 요구가 높은 이유는 코디·코닥들이 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닌 위탁계약을 맺어 '자영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노동자로서 사회 안전망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근본적으로는 법적으로 '노동자성' 인정받아야 

이날 토론회에서 방문판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들은 현행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되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해 고용보험 등 기본적인 사회보장 제도의 적용에서도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인준 변호사(법무법인 향법)는 "'특수형태근로종속자'들은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고용보험 등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관계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