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쓰레기는 화성으로, 노동자는 현장으로!”
“화성 쓰레기는 화성으로, 노동자는 현장으로!”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2.08 06:37
  • 수정 2019.12.09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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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화성시청 앞 농성 진행 중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 제대로 지켰나

[리포트] 화성그린환경센터 폐쇄, 거리의 노동자들

2019년 10월 1일, 경기도 화성시의 재활용 폐기물 처리업무를 위탁·수행하던 화성그린환경센터(이하 센터)가 폐쇄됐다. 악취 등 민원이 지속해서 제기됐다는 이유였다. 한국노총 연합노련 알엠화성공장노동조합(위원장 정운기, 이하 노조)은 센터의 폐쇄 과정이 일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센터 폐쇄 이후 문제는 또 발생했다. 센터를 위탁·운영 하는 주식회사알엠(대표이사 임범진,이하 회사)은 용역계약이 변경됐다며 고용 승계를 거부했다. 센터에서 일하던 노조 조합원 16명은 10월 18일 퇴직 절차가 진행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매일 아침, 화성시청 앞에서는 ‘생존권 사수’를 위한 조합원 16명의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조합원들은 “사직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노동조건과 처우, 신분을 보장하라”며 천막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화성시청 앞에서는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는 알엠화성공장노동조합의 집회가 있었다.

“왜 우리가 폐기처분이 돼야 하나”

노조 조합원 16명은 평균 5년 이상 센터에서 일했다. 재활용 폐기물 수거 및 처리 업무를 담당하는 조합원들은 주로 거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소음과 매연으로 고통받는다. 마스크가 지급되지만 얇은 일반 마스크로는 한 타임(2시간)만 일해도 마스크 전체뿐만 아니라 콧속까지 새카매진다. 매연 등으로 폐나 기관지 등 호흡기에 대한 정밀한 검진이 필요하지만, 회사는 기본적인 건강검진만 제공했다고 조합원들은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작업의 특성상 칼이나 못에 찔리는 경우가 많다. 어디서 어떤 환자에게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주삿바늘에 찔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나 회사는 파상풍 주사를 맞게 해달라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조합원들은 각자 사비를 들여 파상풍 주사를 맞았다.

노조는 “작년에는 기본급이 최저시급에 채 미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었는데 노조는 지난해 조합원이 기본급으로 받은 금액은 시간당 7,110원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기본급에 잔업 수당을 포함해 7,350원을 만들었다가 다시 잠잠해지니 잔업 수당을 기본급에서 제외했다고 노조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 11월 13일 화성시청 앞에서 있었던 집회에서 이미현 조합원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가족을 위해 일 해왔다”며 “왜 우리가 폐기처분이 돼야 하나”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단체협약에는 고용 승계 명시했는데 …
입찰방식 변경으로 고용 승계 안 된다니

노조가 문제를 제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6월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고용 승계를 명시했음에도 회사가 고용 승계 대신 퇴직 절차를 밟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2일, 노조와 회사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노조가 공개한 단체협약 합의서에는 “회사가 재낙찰시에는 기존 인원 전원 100% 고용 승계함을 원칙으로 하되, 관련 법규 및 취업규칙상 고용 및 채용의 제한 조건에 해당하는 경우 이를 적용한다”고 명시돼있다.

노조는 이를 근거로 고용 승계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는 ‘입찰 방식의 변경’을 이유로 고용 승계와는 별개”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노조에 ‘재고용’을 제안했는데 이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저하가 발생했다. 실제로 지난 10월, 회사가 노조에 발송한 공문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재고용에 대한 협의는 화성시와 신규계약 조건상 ‘재고용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근거에 의해 진행되는 것이며, 고용 승계에 대한 논의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안내드립니다”고 명시돼있다.

주식회사알엠과 알엠화성공장노동조합이 올해 6월 체결한 단체협약확인서 ⓒ 연합노련
주식회사알엠과 알엠화성공장노동조합이 올해 6월 체결한 단체협약확인서 ⓒ 연합노련

올해 조합원들이 시간당 기본급으로 8,552원을 받았다. 올해 최저시급인 8,350원보다 200원가량 더 많이 받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가 재고용 조건으로 내건 시급은 조합원들이 올해 받던 금액보다 적은 최저시급이었다. 게다가 매달 지급되던 교통보조금과 잔여 수당, 상여금 등은 모두 사라졌다. 조합원들은 한 달에 약 90만 원의 임금 차액을 감수하면서 회사와 재고용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같은 조건의 고용 승계로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결국 회사는 지난 10월 18일, “재고용 의견서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고용에 응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겠다”며 4대 보험 등 상실 신고, 잔여 연차수당 정산 및 지급, 퇴직금 지급 등 퇴직 절차에 돌입했다. 사실상 해고였다.

회사가 ‘고용 승계는 별개’라고 주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가 지난 2018년 4월, 화성시와 체결한 계약은 ‘화성그린환경센터 재활용선별시설 위탁운영 용역계약’이다. 그리고 이번 9월 화성시와 회사가 체결한 계약은 ‘재활용품 대행처리 용역계약’이다. 회사는 “전자는 ‘시설 민간위탁계약’을 내용으로 하는 용역계약이고 다른 계약이기 때문에 재낙찰이 아니다”라며 “그러므로 고용 승계에 대한 의무가 없고 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고용 승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진구 연합노련 공인노무사는 “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했고 회사와 화성시의 용역계약이 만료됐다고 근로계약이 만료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정운기 노조 위원장 역시 “화성시와 회사가 체결한 용역계약은 명칭만 변경됐을 뿐 실질적인 업무는 기존과 같다”며 “따라서 회사는 단체협약 확인서에 명시된 고용 승계 조항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매일 아침 8시 화성시청 앞 농성
쉽지 않아도 시청 앞에 모이는 이유는

노조 조합원 16명 전원은 매일 아침 8시부터 화성시청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에서 사실상 해고 절차에 돌입하기 이틀 전인 10월 16일부터 시작된 농성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기자가 현장을 찾은 11월 13일은 비가 내렸다. 조합원들은 추운 날씨와 비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뜨거운 커피와 차를 연거푸 들이켰다. 옹기종기 모여 온기를 나누기도 했다. 다음날인 수능 날은 더 추워진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조합원들이 매일 아침 시청 앞에 모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6시 30분까지 화성시청 앞 천막으로 모인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시청 앞 천막으로 모이는 것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었다. 한 조합원은 “당연히 쉽지 않죠”라며 “그냥 원래 받던 급여를 받으면서 일하고 싶을 뿐이다”고 답했다. 이날 한 시민은 천막을 찾아와 이른 아침부터 시끄럽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정운기 위원장은 “화성시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고용노동부가 공동으로 마련한 ‘용역근로자 근로조건 보호지침’(이하 지침)의 내용을 성실하게 이행할 의무가 있는 화성시가 그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1월 13일 진행된 집회에서 조합원들의 목에는 화성시의 책임을 지적하는 피켓이 걸려있었다.

지난 9월 개정된 지침은 당초 일반용역 중 청소·경비·시설물관리 등 단순노무용역에만 적용됐던 지침의 적용 범위를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용역으로 확대했다. 지침에 따르면 자치단체의 생활폐기물 수집·운반 용역은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하는 보통인부 단가를 적용해야 하는데,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한 2019년 하반기 보통인부 시급은 1만 6,283원이다. 그러나 회사가 노동자에 제시한 재고용 조건 시급은 8,350원으로, 지침의 절반 수준에 해당한다.

또한 지침에서는 고용 승계와 고용유지, 근로조건 보호 등을 계약서에 포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발주기관은 이러한 내용을 수시로 확인할 의무가 있다. 또한 “단순노무용역 이외 업무를 외주할 때에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한 외주근로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화성시가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문제가 시작된 원인은 화성시에 있다”고 지적한다.

2년 전, 화성시가 발주한 재활용선별시설 위탁운영 용역의 경우, 용역비를 원가 기준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이번 9월, 화성시가 발주한 재활용품 대행처리 용역의 경우, 용역비를 원가 기준이 아닌 단가 기준으로 산정했다. 단가 기준은 물량에 따라 용역비를 산출하는 방식인데, 화성시는 “센터를 운영할 경우에는 원가 기준으로 용역비를 산정하지만, 현재 센터를 폐쇄한 상태에서 굳이 원가로 용역비를 산정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회사가 센터 폐쇄로 계약 종료를 안내했다. 화성시가 9월 17일, 재활용품 대행처리 용역을 재공고하자 노동자들은 화성시에 공문을 보내 고용 승계를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화성시는 “알엠화성공장노동조합의 사용자는 주식회사알엠이며, 고용 승계 등의 협의는 사용종속관계가 있는 주식회사알엠과 협의해 진행하라”는 공문으로 답했다.

화성시 관계자는 “민원으로 센터 운영이 중단된 것이고 센터 운영 당시에도 업체와 계약을 맺어 위탁한 것이지 근로자와 직·간접적 연관이 없다”며 “재활용품 처리 방식을 바꿔 계약한 것도 업체와 계약한 것이기 때문에 업체가 고용한 인력 등에 대해 시에서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 종료 전부터 두 개 회사는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결정은 회사가 할 문제이고 시는 중재자 역할의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기본적으로 이들은 지침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지침을 적용하지 않은 것”이라고 답했다. 회사는 “현재 사건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접수된 상황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입장만 전했다.

현재 화성시 재활용품은 회사 본사가 위치한 오산공장에서 처리하고 있다. 회사와 화성시 모두 고용 승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어 노동자들은 “화성 쓰레기는 화성으로, 노동자는 현장으로!”를 외치며 여전히 길 위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