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형 일자리, 기대와 우려 사이
군산형 일자리, 기대와 우려 사이
  • 이동희 기자,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08 06:40
  • 수정 2019.12.0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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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공동교섭’ 호평에도 ‘노동권 배제’ 비판 이어져
군산지역 노동계, “군산형 일자리 반대할 수 없어”

[리포트] 군산형 일자리, 기대와 우려 사이

지난 10월 24일 전북 군산시 ㈜명신 군산공장(옛 한국지엠 군산공장)에서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이 개최됐다.

군산형 일자리는 문재인 정부 들어 만들어진 여섯 번째 상생형 지역일자리로, 협약식 이전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왔다. 이유는 군산형 일자리가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첫 시작을 알린 광주형 일자리보다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원·하청 관계 개선 ▲노사책임경영 등 4대 정신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공동교섭, 노동이사제 등 국내에서 처음 도입되는 모델들이 군산형 일자리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그러나 협약식 당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과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은 군산형 일자리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상생협약서에 노동권을 배제하는 내용이 담겼다며 반발했다.

군산지역 노동계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제기하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군산경제 위기를 몸으로 체감한 당사자들이기에 “군산형 일자리를 반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 1년 동안 논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군산형 일자리를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2019년 10월 24일 전북 군산시 ㈜명신 군산공장에서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이 열렸다. ⓒ 청와대 홈페이지
2019년 10월 24일 전북 군산시 ㈜명신 군산공장에서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이 열렸다. ⓒ 청와대 홈페이지

군산형 일자리,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나

군산형 일자리의 축은 ‘전기차 클러스터’와 ‘상생협약’이다. 군산형 일자리의 1차 목표는 노사민정이 협력해 군산 및 새만금 산업단지에 전기차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기업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 참여 기업 모두 대기업이 아닌 중견·벤처기업이다.

먼저, 명신, MS오토텍 등 명신그룹이 주축이 된 ‘명신 컨소시엄’이 있다. 명신은 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업체로, 현재 옛 한국지엠 군산공장 부지를 매입해 입주했다. 중국 전기차업체 퓨쳐모빌리티와 맺은 위탁계약에 따라 2021년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전기차 ‘바이튼 엠바이트’를 연간 5만 대 이상 생산할 계획이다. 명신 컨소시엄은 당장 내년부터 700명의 신규채용을 계획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2,675억 원을 투자해 900명의 직접고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생산 규모는 2022년까지 SUV 등 전기차 12만 대 생산을 목표로 한다.

같은 기간 에디슨모터스, 대창모터스, 엠피에스코리아 등 4개 전기차업체와 코스텍 등 11개 자동차 부품사는 ‘새만금 컨소시엄’을 꾸린다. 새만금산단 제1공구 및 군산국가산단 유휴부지에 둥지를 틀 예정이며, 2022년까지 1,447억 원을 투자해 1,061명의 직접고용과 5만 7,000여 대의 전기차(버스, 트럭) 생산을 목표로 한다. 새만금 컨소시엄은 내년 4월까지 설비를 갖추고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군산형 일자리의 또 다른 핵심인 상생협약은 ▲지역공동교섭 ▲적정임금 ▲원·하청 상생 ▲투명경영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협약 준수를 구속하는 조항을 둬 실효성을 높였다. 대표적으로 상생협의회 산하에 갈등조정특별위원회와 임금관리위원회를 설치해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사가 위원회의 조정안을 5년간 수용하도록 했다.

협약식 이후 약 2년 동안은 협약 이행을 위한 세부 내용이 논의될 예정이다. 오국선 군산시 일자리창출과 과장은 “실제 생산이 본격화되는 2년 후에 상생협약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12월부터 상생협의회와 산하 위원회의 구성방안을 토론할 것이며 이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공모한 사업비를 가지고 제2차 컨설팅 사업부를 개설해 이행 방안에 대해 계속 논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군산형 일자리, 호평 받는 지점은?

지역공동교섭을 통한 원·하청 상생 특히 손에 꼽히는 건 ‘지역공동교섭’이다. 지역공동교섭은 1차 공동교섭과 2차 기업별교섭으로 이뤄지는데, 전기차 클러스터 내 모든 기업 노사가 참여하는 상생협의회에서 1차 공동교섭이 진행된다. 1차 공동교섭에서 교섭 가이드라인을 논의한 후 각 기업 노사가 2차 기업별교섭을 실시하는 방식이다.

군산형 일자리의 지역공동교섭은 산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의 장점을 혼합했다. 원·하청 노동자 간의 임금격차를 완화하는 동시에 기업의 지불능력을 고려했다. 공동교섭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한 ‘공동 복지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이는 원·하청 격차 해소뿐만 아니라 전기차 클러스터 전체의 교섭 시기를 일치시키는 장점도 있다. 모든 부품이 적시에 공급돼야 하는 자동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 교섭이기도 하다.

채준호 전북대 교수는 “모든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관통하는 핵심은 좋은 일자리”라며 “기존 대기업 중심의 일자리와 협력업체 위주의 상대적으로 질 낮은 일자리 중에서 후자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가 중요한 핵심인데, 그런 의미에서 군산형 일자리의 지역공동교섭은 엄청난 실험”이라고 설명했다.

선진형 임금체계 구축 전북지역 제조업 평균임금을 지향하고 기본급 비중을 80%로 높이며 직무급제를 도입한다는 선진형 임금체계 구축도 손에 꼽힌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북지역 제조업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임금부담을 덜 수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초과근무수당의 비중이 높은 현 임금체계에서 벗어나 장시간 노동을 피할 수 있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군산형 일자리 컨설팅 단장)는 “선진형 임금체계가 완전히 설계되지는 않았지만, 주40시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의 기본급이 80% 이상 되게 하는 것이 골자”라며 “노동 강도와 위험을 기준으로 따지는 직무급제를 도입해 노동자 내부의 갈등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투명경영을 바탕으로 한 노동이사제와 우리사주제를 도입해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보장한 장점도 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노동자의 이사회 참관을 시작으로 노동이사제까지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오국선 과장은 “노동이사제가 정착되면 경영이 투명해져 회사 상황을 노동조합도 모두 공유할 수 있어 노사 양측이 합리적인 안을 가지고 교섭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노동권 배제 없이는 일자리 못 만드나?”

호평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 당일 협약 내용이 드러나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곧바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앞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시초인 광주형 일자리가 추구하는 적정임금을 두고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불러오는 ‘반값임금’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또한, 광주형 일자리의 노동환경을 협의하는 상생노사발전협의회 운영 및 결정사항 유효기간에 ‘누적 생산 35만 대 달성 시까지’라는 단서가 달리자 노동권을 배제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때부터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를 포함한 정부의 모든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변이 생긴 것은 군산형 일자리부터다. 민주노총 군산지부가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한다고 밝히며 협약서에 서명까지 했다. 최재춘 민주노총 전북본부 군산지부 지부장은 “군산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는데 민주노총 군산지부가 반대투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의 군산경제 상황은 우리가 밖에서 반대만 할 상황이 아니다. 들어가서 우리가 원하는 걸 100% 이룰 수 없다고 하더라도 안 들어면 50%까지 떨어질 것을 70~80%까지 끌어올리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군산지역의 경제 상황을 일정부분 극복하는 역할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화두인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군산형 일자리가 ▲갈등조정특별위원회·임금관리위원회 설치(협약안 제6·7조) ▲5년간 위원회의 조정안 수용(협약안 제20조) ▲협약안 불이행시 제재규정(협약안 제39조)을 통해 노동권을 배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군산형 일자리는 임금관리위원회를 통해 적정임금 구간과 임금상승률을 결정한다. 이에 대해 장석원 금속노조 기획부장은 “임금이라는 건 노사가 자율적으로 교섭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며 “임금관리위원회라는 통제기구가 결정한 인상률을 노사가 수용해야 한다는 건 사실상 노동자에게 통제된 임금을 강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북지역 제조업 평균임금을 지향한다는 ‘적정임금’에 대한 우려도 이어진다. 조혜진 민주노총 전북본부 정책국장은 “제조업 평균임금이 제일 낮은 곳이 전북인데 결국 제조업 중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주겠다는 것”이라며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려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한다는 논리로 노동계를 압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사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중재하는 갈등조정특별위원회의 조정안을 5년간 수용해야 한다는 협약안 제20조에 대한 반발도 상당하다. 사실상 노동조합이 5년간 파업 등 쟁의행위를 할 수 없도록 만든 ‘독소조항’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현행법은 노사 간 교섭이 결렬되면 파업을 할 수 있는데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의회는 갈등조정특별위원회를 통해 5년간 조정안을 수용하도록 만들었다”며 “이러한 노동권 배제 내용이 담겼을 때 노동계가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협약안 불이행시 지원금을 회수한다는 제재 규정에 대해서는 “혹시라도 노동계가 협약을 따르지 않을까봐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한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주호 정책실장은 “그런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못 만드는 것인가”라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비판을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총 군산지부, 한국노총 군산지역본부 모두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협약서에 노동계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했다. 최재춘 지부장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의 이야기만 주장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서 “협약은 노동법보다 상위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5년 안에 노동조합을 설립해서 법대로 가겠다고 하면 막을 수는 없다”며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군산지역 위기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일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지역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민주노총 군산지부와 한국노총 군산지역본부 모두 협약안 불이행시 지원금을 회수한다는 협약이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에는 반박의 목소리를 냈다. 고진곤 한국노총 군산지역본부 의장은 “투자 기업의 ‘먹튀’를 막기 위해 노동계의 주장으로 담긴 협약”이라며 “투자 기업이 정부 혜택만 받고 떠나지 않도록 지원금 회수 등의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반박했다.

민주노총, 상생형 지역일자리 가이드라인 만든다

한편, 현재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군산형 일자리를 시작으로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조혜진 정책국장은 “민주노총 내부에서 군산형 일자리를 포함한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대한 입장과 명확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주호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의 입장은 지역에서 일자리를 만들지 말라는 게 아니라 나쁜 일자리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며 “지역의 특색과 산업적 전망에 맞춰서 지역형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정말 그런 전망 속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서 “큰 틀에서는 정부의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반대하고 있지만 이번 군산형 일자리 평가를 통해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상생형 지역일자리에 대한 민주노총의 가이드라인을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논의는 시작됐지만 민주노총이 이를 통해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는 이르다. 조혜진 정책국장은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 군산지부가 참여하는 부분에 제약이 따를 수도 있고 현재는 이 부분들에 대해 명확히 평가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입장을 제출하려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주호 정책실장 역시 “공식화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