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형 일자리, 자동차산업의 다음을 위해서 필요한 단계”
“군산형 일자리, 자동차산업의 다음을 위해서 필요한 단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12.08 06:39
  • 수정 2019.12.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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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교수, “전기차 클러스터에 원·하청 상생 입힌 것이 군산 모델”

[인터뷰] 김현철 군산대학교 교수

지난 10월 24일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이 마무리됐다. 군산형 일자리 컨설팅사업 단장을 맡아 군산지역 노사민정과 함께 군산형 일자리를 설계한 김현철 군산대 교수는 “협약은 원칙에 합의한 것일 뿐 이제부터는 훨씬 더 어려운 일이 기다리고 있다”며 “협약을 바탕으로 세부 내용을 만들어 합의하는 과정이 더 남아 있다”고 밝혔다.

지난 1년 동안 김현철 교수는 군산형 일자리 원칙을 만드는 데 시간을 쏟았다면, 앞으로의 1년은 군산형 일자리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상생협의회 구성 및 운영 ▲선진형 임금체계의 세부 내용 등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지난달 8일 전북 전주에서 김현철 교수를 만나 군산형 일자리 설계부터 협약식까지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인하고, 군산형 일자리를 향한 비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김현철 군산대학교 교수
김현철 군산대학교 교수

설계부터 협약식까지 1년

상생형 지역일자리를 설계할 때는 일자리 안에서 노사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과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고민이 있었나?

두 가지 고민을 했다. 하나는 실패한 모델을 따라가지 않기 위한 고민, 또 다른 하나는 군산지역의 창의성을 가지고 갈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고민이었다.

기업은 일정한 사이클을 그리며 호황과 불황을 왔다 갔다 하는데 기업이 잘 나갈 때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많이 준다. 근데 반대로 회사가 어렵다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을 수 있을까? 깎을 수 없다. 이때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은 선에서 유지되면 적자 폭이 증폭하게 되고 기업이 어려움을 겪는다.

지엠(General Mortors, GM)을 예로 들면, 지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은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신규 노동자의 임금을 낮췄다. 이중임금제를 가져간 거다. 이런 이중임금제는 무조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엠에서는 이 이중임금제로 생긴 노동자 간 임금 격차를 15년에 걸쳐 같아지도록 만들었다. 결국 지엠에서도 실패한 거다. 군산에서는 이 같은 이중임금제를 만들면 안 된다는 고민이 가장 첫 번째였다.

두 번째는 상생형 지역일자리는 광주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군산은 군산에 맞게 지역의 창의성을 갖고 지역 실태에 맞는 일자리 설계를 하려고 노력했다. 논의 초기에는 광주형 일자리를 따르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완강히 버텼다.

사실 지금도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는데, 군산형 일자리가 앞으로 만들어질 또 다른 상생형 지역일자리의 표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지역마다 지역에 맞는 설계를 해야 하고, 다른 지역의 모델을 가져와서 밀어붙이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군산이라는 모델은 중소·벤처기업을 중심으로 전기차 클러스터를 만들 때 맞는 모델인 거다.

그렇다면 군산형 일자리에는 군산의 어떤 지역적 특성이 들어간 것인가?

군산은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라는 상황이 1차적으로 있었다. 한국지엠의 경우,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이 인천 부평공장에 있다. 군산공장에서는 위탁생산을 할 수 있는 서플라이 체인이 없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자동차 회사를 끌어들이자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자동차 회사라는 건 기존의 내연기관차 회사가 아닌 전기차 회사였다.

전기차의 핵심은 배터리, 모터, 감속기다. 이 세 가지 핵심 장비들은 내연기관차 핵심 장비에 비해 훨씬 만들기 쉽다. 이 세 가지를 제외하고 남는 건 무엇인가? 차체만 해결하면 되는 거다.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명신이 차체를 만드는 회사다. 그렇게 연결이 된 거다. 이후에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이 전기차를 만드는 중소·벤처기업들을 찾았다. 이 기업들을 가지고 어떻게 전기차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여기에 노사상생을 끌어낸 것이 지역 노사민정과 내 역할이었다.

이야기한 대로 군산형 일자리는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전기차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이 골자다. 대기업 없이 중소·벤처기업 중심으로 운영됐을 때의 장점은 무엇인가?

여기엔 원·하청 상생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대기업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이미 힘이 막강한 노조가 조직돼 있어 노동자의 권리가 굉장히 높은 수준까지 올라가 있다는 것이 하나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노조가 지금까지 싸워서 만들어 놓은 것을 누구도 양보하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대기업과는 할 수 없는 거다.

또 하나, 대기업은 원·하청 관계가 수직적 계열화로 완전히 고착화돼 있다. 이걸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한테 원·하청 상생하자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중소·벤처기업들은 아직 이런 문제들이 고착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운 설계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면 이후에도 군산형 일자리에는 대기업이 들어올 수 없는 건가?

참여하는 중소·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건 가능하지만 대기업은 받을 생각은 없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군산형 일자리 협약대로 하면 들어오는 대기업이 없다.

군산형 일자리는 협약을 살펴보면 ‘선진형 임금체계’를 구축한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선진형 임금체계는?

지금은 개념만 만들어진 거고 앞으로 세부 내용이 만들어질 텐데, 말하자면 이런 거다. 주40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임금에서 기본급을 80% 이상이 되게 하는 거다. 여기에 전북지역 제조업의 평균임금을 지향하는 적정임금으로 간다. 연장근무를 통해서 임금을 많이 가져가는 임금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또 하나는 직무급이 들어있다. 노동자들 중에서도 힘없는 노동자들은 힘든 현장에서 일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위험의 외주화로 가는 거다. 우리나라는 힘들고 어려운 일일수록 임금이 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이에 따른 노동자 내부 갈등을 막으려면 임금체계를 바꾸고 노동 강도에 따라 임금을 주는 직무급을 도입해야 한다.

노동권 배제 등 반대 목소리도 이어져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5년간 갈등조정특별위원회 조정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협약을 지적하면서 군산형 일자리에 노동권 배제가 들어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굉장히 뼈아픈 지적이다. 처음에 내부에서는 5년간 무교섭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합리적인 수준에서 노사의 양보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해보겠지만 무교섭으로 가는 건 안 된다고 못을 박았고, 노동권을 박탈하지 않는 시스템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상생협의회 설계가 나왔다. 교섭은 1차 공동교섭, 2차 기업별교섭을 다 할 수 있게 했다. 다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파업은 하지 말자, 갈등조정특별위원회에서 조정을 받자고 했다.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박탈한 것은 노동계의 양보라는 걸 백퍼센트 인정하고 마음 아프게 생각한다. 다만, 이 양보를 받고 사측에게는 노동이사제를 받고 우리사주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서도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과물이라는 걸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그렇게 5년간 위원회의 조정안을 수용하는 협약을 맺었다. 그렇다면 5년 뒤에는 어떻게 되는 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상생협의회의 대략적인 구성은 노사민정 대표가 모두 들어오는데 민과 정의 숫자를 줄이고 노와 사의 숫자를 늘리는 거다. 이는 상생협의회가 큰 규모의 노사협의체가 될 수 있도록 하는 인적 구성이다.

이 구성원들이 5년간 해야 할 일은 노사가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거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기 위해서는 투명경영이 필요하고, 군산형 일자리 협약에 들어간 우리사주제와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 정보가 다 공개될 수밖에 없다. 이를 바탕으로 5년 동안 신뢰를 쌓고, 파업하지 않아도 합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명신’은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으로, 현재 금속노조의 중앙교섭을 하고 있는 사업장이기도 하다. 금속노조에서는 “군산형 일자리의 기본 설계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체계와 정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명신 노사 모두 지적한 문제다. 지역공동교섭을 하면 명신 입장에서는 결국 교섭을 한 번 더 늘려 놓는 일만 벌어진다는 지적이었다. 이 부분은 노동권 박탈처럼 뼈아픈 지적은 아니고 실제로 운영하면서 풀어가야 하는 문제로, 역시 고민이 많은 지점이다.

지금까지 명신은 현대자동차의 1차 하청업체로서 교섭 대상이었는데, 군산형 일자리에서는 명신이 원청기업이 되고 밑에 하청업체가 들어오는 거다. 앞에서 원·하청 관계로 인한 수직적 계열화가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군산형 일자리 지역공동교섭에서는 원청과 하청 노사가 모두 들어와 교섭을 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원청이 하청에게 가했던 갑질, CR(Cost Reduction, 납품단가 인하) 요구를 못한다.

군산형 일자리 안에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 민주노총 사업장, 한국노총 사업장이 섞여 있기 때문에 금속노조의 중앙교섭만으로는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그러니 지역에서 그게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거고 작은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다. 금속노조가 이야기한 부분도 맞는 말이다. 교섭이 복잡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가면 원·하청 문제는 손댈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이대로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해볼 것인가 중에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군산형 일자리를 통해 기대하는 바는?

살면서 충격을 받은 사건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다. 쌍용차 사태에서 많은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목숨을 잃는 걸 보면서 여러 번 울었는데, 내가 자동차 산업을 연구하는 사람이니까 더 마음이 쓰였던 것 같다.

쌍용차라는 대기업에서 문제가 생기니까 노동자들이 해고됐고 그 노동자들을 다시 쌍용차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대안이 없지 않았나. 앞으로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면 이건 정말 비극이다.

그러다가 한국지엠 군산공장이 문을 닫았다. 그 과정에서 실제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몇 분 돌아가시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쌍용차 사태가 반복되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굉장히 컸었고, 대안을 설계하면서 전기차 아이디어를 모아 지금의 전기차 클러스터라는 그림을 그렸다. 군산지역 노사민정이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왔다. 군산형 일자리는 군산경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다음 단계를 위해서도 필요한 단계라고 본다. 꼭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