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청 불공정 구조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어렵다
원·하청 불공정 구조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어렵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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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청 구조에서 노동시간 단축의 책임은 ‘약자’에게
불공정 거래 개선 없이는 하청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고통으로’

커버스토리④ 노동시간 단축 가로막는 원·하청 구조

ⓒ 전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

주52시간 상한제 X 중소기업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매번 진통을 겪어왔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앓는 소리와 현장의 혼란 더욱 크다. <참여와혁신> 12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2020년 1월 1일 50~299인 사업장 주52시간 상한제를 앞두고 중소기업의 이유 있는 앓는 소리를 모아봤다. 또한, 선제적인 논의와 노사 합의로 이미 주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펴봤다.

“그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I'm Gonna Make Him An Offer He Can't Refuse).”

시칠리아계 마피아 돈 콜레오네(Don Corleone)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특별한 방식으로 ‘콜레오네 패밀리’를 키웠다. 영화 속 “네 놈 골통이든 네 놈 사인이든 둘 중 하나는 이 계약서에 올라오겠지”라는 대사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의 실체를 드러낸다. 콜레오네의 온화한 표정 뒤에는 권총이 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은 비단 마피아만의 방식은 아니다. 약육강식의 시장경제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원·하청 관계가 그렇다. 원·하청 구조 아래 하청업체의 사용자는 또 다른 ‘을’이다. 울며 겨자 먹기이냐 혹은 폐업이냐의 선택에서 하청업체는 원청업체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살펴본 기사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대화로 풀어나갈 때 가장 바람직하다. 하지만 원·하청 구조 아래 당사자의 대화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 원하청 불공정 거래가 잔존하는 지금, 노동시간 단축은 하청업체 노사에게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원청업체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내하청업체

대공장은 사내하청업체에 빚지고 있다. 현대모비스의 전국 13개 공장 중 10개 공장은 사내하청업체가 주축이 돼 운영된다. 2019년 3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표한 <대기업 비정규직 규모>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의 사내하청(간접고용 비정규직) 규모는 42.2%에 달한다. 철강업계에서도 사내하청은 흔하다. 현재 포스코의 1차 협력사 노동자 규모는 1만 6,000여 명(포항 58개 협력업체 8,933명, 광양 49개 협력업체 7,262명)이다. 포스코 전체 노동자의 53% 규모다. 현대제철 또한 다르지 않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1만 3,388명에 달하며 전체의 54.7% 규모다.

조선업에서 사내하청은 더욱 만연해 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조선산업에 고용된 기능인력 17만 1,593명 중 13만 5,785명(79.1%)이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었다. 2019년 3월 기준 현대중공업은 전체의 51.4%, 삼성중공업은 62.2%, 대우조선해양은 68.8% 규모였다.

주요 제조 대기업들은 사내하청업체를 둠으로써 생산단가 절약, 경기변동에 따른 고용유연성 확보 등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원청업체와 사내하청업체의 노동시간 단축은 같은 작업장을 공유함에도 별개로 다뤄졌다. 특히 정책적으로도 대공장에서 주52시간 상한제 적용은 전체 작업장 단위가 아니라 개별기업 단위가 기준이 됐다. 대부분의 원청업체는 2018년 7월에 주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됐고, 사내하청업체는 2020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금속노조가 개최한 ‘철강 비정규직 총력 결의대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난 10월 29일 금속노조가 개최한 ‘철강 비정규직 총력 결의대회’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박옥경 금속노련 포스코 사내협력사노동조합 대표자협의회 공동의장은 “최근 포스코에서 상주자를 대상으로 85제(8시 출근, 5시 퇴근)를 실시하며 근무형태를 변경했다. 그런데 이걸 하청까지 적용하라고 메일이 왔다”며, “원청업체에서 시행했다고 하청업체에서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버스출퇴근 문제부터 쉽지 않다. 특히, 하청업체 노동자는 연장근로해서 적정 임금을 맞춰간다. 넉넉하지 못함에도 따라오라고 하는 것에서 괴리감을 많이 느낀다”고 지적했다.

사내하청업체 스스로 노동시간을 단축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른다. 요컨대, 원하청 간 납품단가 등 비용문제가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예상되는 납기일 차질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 고용’이 반드시 필요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기존 고용을 유지한 채로 노동 강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사내하청업체의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기 어렵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은 “대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쉽게 간다. 대기업들은 노동 강도를 일부 늘려서 물량을 맞췄다”라며, “노동시간을 줄이고 노동 강도 높이는 방식은 협력업체에서 어렵다. 협력업체의 생산성, 즉 노동 강도가 맥시멈인 상황이다. 이미 노동 강도가 80%인데 90%로 올리는 건 엄청난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불공정 하도급 관행이 만연한 IT업계

IT업계의 노동시간 단축을 가로막는 것은 만연한 불공정 하도급 관행이다. 조선업계처럼 프로젝트 단위로 업무가 진행되는 IT업계 특성상 하도급 형태로 일감을 분배하는 경우는 일반적이다. 경력 9년의 민주노총 서울지역지부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이하 IT유니온) 조합원 A씨는 IT업계의 하도급 실태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를 들어서 정부에서 200억짜리 큰 프로젝트가 발주되면 대기업이 수주를 해요. 그런데 대기업들이 자체인력으로 모두를 개발하는 게 아니라 쪼개서 밑에 기업들한테 보내죠. 그러면 밑에 기업들은 또 쪼개서 아래로 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돼요. 정부 사업 같은 경우는 2차 발주가 금지돼 있지만 대표적으로 금융 같은 민자 사업은 제한이 없어요. 심하면 10차까지 내려가기도 하죠. 1인 개발자한테까지 내려가기도 하고요.”

제조업과 달리 IT업계에서는 노동시간과 노동생산성이 비례하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있다고 해서 더 나은 성과물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계산의 편의상 프로젝트 수가는 맨먼스(Man Month)로 산정된다. 개발자의 경력을 고려하여 프로젝트 완성까지 필요한 노동시간을 월 기준으로 산출해 인건비를 책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계약 시 책정된 수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불공정 하도급 거래 관행 때문이다. 경력 10년의 IT유니온 조합원 B씨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갑을 간의 계약 관계 불공정이 미치는 영향이 커요. 처음에 제안요구서(RFP, request for proposal)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항상 중간과정에서 컨펌을 받는데 색깔이 마음에 안 든다. 추가 기능을 넣어 달라고 하기도 하구요. 그러면 사실 돈을 더 받아야 하는데 을의 입장에서는 그게 힘들죠. 을의 입장에서는 갑이랑 관계를 잘 맺어야 다음에 또 계약을 딸 수 있잖아요. 또 협상 과정에서 계약금을 계속 깎으려 하고요. 이런 관행은 민관이 똑같아요.”

협상 과정에서 계약금은 줄어든다. 반대로 요구하는 기능은 많아져 개발자의 업무는 과중된다. 그렇다고 납기일이 연장되지는 않는다. IT업계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만연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유통업계 갑 중의 갑, ‘백화점’

백화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노동자는 이중 고충을 겪고 있다. 화장품판매 노동자는 화장품업체와 고용관계에 있지만 근무지는 백화점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교대제와 노동시간>은 백화점과 화장품업체를 “유통업 내에서 입점하여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대신 백화점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형태”라고 지적했다. 형식상으로는 입점업체 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원·하청 관계’다.

실제로 화장품업체가 완전 자율적으로 화장품업체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정할 수 없다. 백화점 영업시간을 준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입점계약이 달려있기 때문에 화장품업체는 백화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백화점 입점은 화장품업체의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하인주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이하 백면노조) 위원장은 백화점과 화장품업체의 관계를 ‘아주 일방적인 갑을 관계’라고 표현했다. 김소연 백면노조 부위원장은 “계약이 백화점마다 연결돼 있다. 백화점 A지점 한 군데만 계약이 들어간 게 아니라 B지점, C지점에도 함께 돼 있는 식”이라며, “화장품업체가 A지점의 매장을 빼려고 하면 백화점이 B지점 매장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식이다. 자유로울 수 없는 관계”라고 지적했다.

지난 11월 9일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 출범대회 현장.
지난 11월 9일 백화점·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조합 출범대회 현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이러한 상황에서 주52시간 상한제는 화장품판매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크게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2018년 7월에 백화점에 주52시간 상한제가 실시됐다. 대공장과 정반대로 백화점의 주52시간제 상한제는 백화점 내 입점매장의 규모가 기준이 아니라 백화점 전체 규모를 기준으로 적용이 이뤄졌다. 김소연 부위원장은 악화된 노동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반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주52시간 하려고 하면 회사 문 닫고 일 안 하고 가면 되잖아요? 그런데 유통업계에서는 매장 영업시간 때문에 그렇게 조정이 안 돼요. 백화점의 주52시간이 아닌데 내 노동만 주52시에 맞춰서 하는 거죠. 결과적으로 정해진 시간에 압축적으로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해요. 돈을 덜 받지만 실질적인 노동 강도는 더 강해지고, 돌아가면서 일을 하니 인원이 더 필요한데 추가고용은 없는 상태라 노동조건이 더 나빠졌어요.”

화장품판매 노동자의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백화점의 영업시간 단축이나 화장품업체의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 하지만 화장품업체의 추가 고용은 즉각적인 비용 부담을 일으킨다. 백면노조는 백화점의 정기휴점과 휴일휴점을 주장하고 있다. 하인주 위원장은 “IMF 이전처럼 매주 정기휴점제를 실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백화점 빅3는 정기휴무 시 매출이 떨어진다고 핑계를 댄다. 하지만 고객들이 계획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에 매출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약자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원·하청 구조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주52시간 상한제는 임금삭감으로 생계곤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사내하청 사용자에게도 인건비 부담 가중, 생산량 감소 등 경영악화가 야기될 수 있다. IT업계는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상적인 하도급 구조를 형성했다. 사전계약 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등 불공정 관행은 IT 노동자로 하여금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고착시켰다. 입점을 매개로 형성된 백화점-화장품업체 원·하청 구조에서 화장품판매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개악됐다. 노동시간 단축에도 애초에 백화점 영업시간이 정해져 있어 화장품업체 노사가 자율적으로 노동시간이나 강도를 조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의 사례는 원·하청 힘의 차이가 모든 논의에 앞설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불공정한 원·하청 구조 아래에서 노동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하청업체 노사의 대화는 모두 무용지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