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앓는 소리, 이유는 있다
중소기업의 앓는 소리, 이유는 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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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 임금체계가 형성한 장시간 노동체제, 완전 적응한 중소기업
대비 없는 노동시간 단축, 중소기업 ‘갈등’, ‘정체’ 가능성 높여

커버스토리② 그 누가 중소기업에게 돌을 던질 수 있으리오

주52시간 상한제 X 중소기업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매번 진통을 겪어왔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앓는 소리와 현장의 혼란 더욱 크다. <참여와혁신> 12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2020년 1월 1일 50~299인 사업장 주52시간 상한제를 앞두고 중소기업의 이유 있는 앓는 소리를 모아봤다. 또한, 선제적인 논의와 노사 합의로 이미 주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펴봤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는 이 말을 외치며 산화했다. 당시 근로기준법은 ‘주60시간 노동’을 상한으로 정했지만 노동자의 삶과 괴리감이 큰 숫자였다. 하루 14시간 주7일 노동과 한 달에 고작 이틀뿐인 휴일이 노동자가 겪는 진짜 현실이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였다. 끊임없는 노동자의 요구로 한국의 노동시간은 점차 감소했다. 1980년에는 연평균 2,700시간이 넘었으나 2018년에는 1,967시간으로 줄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사회는 여전히 많이 일한다. 일본(1,680시간), 미국(1,786시간)에 비해서도 더 많이 일하며, 가장 적게 일하는 독일(1,363시간)과 비교했을 때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 ‘글로벌 스탠더드’를 천명한 지 30년이 지났건만 어째서 노동시간만큼은 세계적 추세를 쫓아가지 못하는 걸까. 근로기준법의 꼼수 해석을 바로잡았을 뿐인 주52시간 상한제가 한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노동자조차도 노동시간 단축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닐까. 왜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 관행은 개혁하기 어려울까.

주52시간 상한제 성패는 중소기업에 달렸지만…

2018년 7월 주52시간 상한제가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대기업 화이트칼라 노동자의 삶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됐다. 노동자들은 여가생활을 늘리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아 갔다. 사용자도 장시간 노동을 권장하지 않는 조직문화를 조성했다.

하지만 주52시간 상한제의 성공여부는 중소기업에게 달렸다. 흔히 사업체 비중은 99%, 종업원 비중은 88%에 달한다는 ‘9988’으로 표현되듯 노동자 대다수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통계포털(KOSIS) 전국 사업체수 및 종사자수 통계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상용노동자는 18.39%에 지나지 않는다. 50~299인 사업장은 22.39%, 5~49인 사업장은 45.43%에 달한다. 약 82%의 노동자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것이다. 더불어 주52시간 상한제를 적용 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도 14.56%다. 때문에 이들의 삶을 바꾸지 못하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은 일부 잘 나가는 노동자의 특권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내년 1월부터 50~299인 사업장에 주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되지만 중소기업은 준비는 미진하다. 고용노동부가 11월 18일 보완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여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현장의 혼란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지난 11월 18일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의 영향 토론회’ 현장.
지난 11월 18일 중소기업중앙회가 개최한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의 영향 토론회’ 현장.

중소기업중앙회가 2019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소기업 58.4%는 주52시간 상한제를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 중 절반가량이 준비시간 부족을 토로했다.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유예 기간으로 3년 이상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27.4%에 달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들이 우려하는 지점(복수응답)은 ▲인건비 상승(70.4%) ▲인력부족(34.4%) ▲생산차질(33.8%) 등이었다.

중소기업 노동자도 노동시간 단축을 마냥 반기지는 않았다. 시급제로 일하는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노동시간 단축은 곧바로 임금삭감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8일 중기중앙회가 주최한 ‘근로시간 단축과 중소기업 영향’ 토론회에 참여한 한용희 (주)한신특수가공 생산부장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깎여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가 많다”며, “일하는 사람이 더 일하고 싶은데 왜 정부에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라고 말했다. 이 발언의 적절성은 따져봐야 하지만, 노동시간 단축을 앞둔 중소기업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점은 확실하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도 “정용진 이마트 사장이 선도적으로 주35시간을 시행했을 때 ‘적정임금을 받기 위해서 노동을 더 하고 싶다’, ‘더 해야 생활임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현장의 요구가 있었다”며, “주52시간 상한제 시행으로 중소기업이 ‘큰일난다’, ‘걱정된다’는 게 현실이다. 사업주도 힘들고 노동자도 힘들다”고 지적했다.

‘기형적 임금체계’ 아래 형성된 장시간 노동체제

노사를 불문하고 중소기업 현장에서 앓는 소리가 나온다. 원인은 바로 중소기업 노사가 ‘주68시간 체제’에 뿌리 깊게 적응했기 때문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2012년 발표한 <선진국 사례에 비추어 본 우리나라 장시간 근로개선의 필요성 및 방향>이라는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노사 담합체계가 장시간 노동체제를 재생산하고 있다. 산업화시대 노사가 노동시간 투입 중심의 경제성장, 기업의 저임금 경쟁력, 생계비 확보를 위해 서로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담합을 했던 관행이 굳어져서 내려오고 있다. 고속경제성장으로 임금수준이 높아졌고, 주 40시간제가 도입됐으나 장시간 노동의 관행은 노사가 지지하는 가운데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장시간 노동체제는 “인력투입으로 생산성을 끌어내던 산업화시대의 전략이 지속”되는 체제다. 근본적인 생산성 향상은 그대로 두고 ‘사람을 몇 명 더 투입시켜서’ 문제를 해결하는 구시대의 방식이 뿌리 깊게 잔존한다는 것이다. 장시간 노동체제가 형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형적 임금체계’ 탓이 크다. 기본급이 과도하게 낮고 성과급이나 초과근무수당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기형적 임금체계 아래에서 노동자는 임금보전을 위해 일정량 이상의 초과노동을 일상적으로 해왔다. 더욱이 결혼이나 육아 등 생애주기별로 목돈이 들어가는 시기에는 특근 및 잔업을 자진해서 찾았다.

사용자는 최소고용을 유지하고 노동시간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펼쳤다. 일부러 최소한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경기에 따라 변동하는 물량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늘려 대응했다. 통상임금의 기준이 되는 기본급이 낮았기에 적은 수의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것이 사용자에게는 비용 측면에서 이득이었다. 더불어 구조조정 필요성이 발생할 때 드는 해고 부담도 줄었다.

이러한 배규식 원장의 지적은 약 7년이 지난 현재에도 적확하다. 특히 중소기업에서 장시간 노동체제가 여태껏 개선되지 못한 이유는 약 15년 전 ‘주5일제’를 통한 노동시간 단축이 야무지지 못했던 탓이 크다. 당시 법 개정의 효과로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중심으로 일정부분 노동시간 단축이 일어났지만 중소기업과 제조업종에서는 미미했다.

현재 주52시간 상한을 규정하는 근로기준법은 2003년 8월에 개정돼 2004년 7월에 시행됐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사업장 규모별로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시행됐다. 그 동안 중소기업이 노동시간 단축을 준비하라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정책적 실수를 보였다. 통상임금 산정 범위 등 임금체계 개편은커녕 심지어 ‘1주는 5일’이며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근기 68207-2855, 2009.9.20.)을 그대로 뒀다. 개정 근로기준법은 주52시간 상한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처벌 기준은 평일근무(40시간+연장12시간)와 휴일(16시간)근무를 더한 주68시간이었다. 법과 행정해석의 간극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장장 6년의 유예기간 동안 중소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대비하지 않았다. 2011년 개정 근로기준법 전면 시행 이후에도 중소기업은 처벌 기준은 주68시간이라는 행정해석을 근거로 장시간 노동을 지속했다. 법을 지키거나 시행에 맞춰 준비할 유인이 중소기업에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5개 경제단체가 2002년 10월 15일자 부산일보(3면 하단)에 광고를 냈다. 주5일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쟁력 저하’, ‘무노동 무임금이 지켜져야 한다’는 등의 글귀가 눈에 띤다.
5개 경제단체가 2002년 10월 15일자 부산일보(3면 하단)에 광고를 냈다. 주5일제 도입을 반대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경쟁력 저하’, ‘무노동 무임금이 지켜져야 한다’는 등의 글귀가 눈에 띤다.

대비 없는 중소기업의 주52시간 상한제 도입
갈등이냐 정체냐, ‘진퇴양난’ A기업의 사례

자동차 부품 협력업체인 A사의 사례는 장시간 노동체제가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상태에서 노동시간 단축이 어떤 양상이 될 것인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총 200인 규모의 A사는 2014년까지 무교대 12시간 근무의 장시간 노동을 해왔다. 완성차업체의 생산속도에 맞추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시행한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납품단가 인하 탓에 A사는 기존 물량 수주를 대거 포기했다. 그러자 의도치 않은 노동시간 단축이 일어났다. A사 노동자는 주간 8시간 근무를 하게 됐다. 하지만 대신 임금도 반 토막이 날아갔다. 초과근무수당이 월급의 절반가량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A사의 노동자들은 생계곤란을 겪었다. 이후 당연한 수순으로 A사는 한동안 노사갈등을 겪었다. A사 노동조합은 강력히 회사에 항의했고 약 1년간의 분규를 겪은 끝에 2년 동안 단계적인 임금 인상에 합의했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현재 A사가 당면한 처지다. A사는 현재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국면에서 노동시간 위반 소지가 없다. 노동시간이 자연적으로 단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추가로 물량을 더 수주할 수도 없어졌다. 주52시간 상한제 시행 이후 장시간 노동을 통한 추가 물량 대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회사는 설비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보다는 해외로 물량을 돌리고 있다. A사 노동조합 위원장은 “회사가 정년퇴직한 노동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하며 더 이상 신규인력을 뽑지 않는다. 직원들이 전체적으로 고령화되고 있다”며, “회사가 물량을 해외로 돌리는 등 국내 공장에 더 이상 투자하려하지 않는다.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도 계속 있다”고 말했다.

A사의 사례는 주52시간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있는 중소사업장에게 두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는 기형적 임금체계 아래 노동시간 단축은 임금 감소를 크게 가져온다는 것이다. 차후에 노사갈등의 씨앗이 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생산성 보전에 대한 대비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그대로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갈등이냐 정체냐.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중소기업 노사는 최대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의 임금이 보전되면서도 생산성을 보전할 수 있어야 한다. 주52시간 상한제가 노동자에게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면, 사용자에게도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용자에게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재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