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첫발 뗀 수출입은행 노사
‘대화’로 첫발 뗀 수출입은행 노사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2.08 06:38
  • 수정 2019.12.09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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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신뢰의 출발점을 마련하다

[인터뷰] 신현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

지난 청와대 2기 내각으로 은성수 전 수출입은행장이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행장 자리는 한동안 공석이었다. 서서히 행장 임명에 대한 하마평이 들리자, 수출입은행노조는 수출입은행이 국책은행인 만큼 낙하산 인사가 아닌 전문성을 갖춘 은행장을 선임하길 촉구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29일 방문규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임명됐다. 그는 행정고시 28회 출신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식품유통정책관, 보건복지부 차관 등을 지냈다. 행장 첫 출근 당시 수출입은행노조는 행장 출근 저지투쟁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장시간 대화로 갈등 국면을 타개했다.

ⓒ 이현석 175studio@gmail.com

“위원장님, 신임 행장 출근 저지 투쟁 준비하신다면서요?”

“일단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인데 변수가 많네요, 지금도 계속 대화 중입니다.”

지난 10월 29일 기획재정부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신임 수출입은행장이 결정됐다. 신임 행장 출근 전날, 출근 저지 투쟁을 염두에 뒀던 신현호 수출입은행노조 위원장은 신임 행장과의 대화를 이어갔고, 대화는 밤 12시가 되도록 지속되었다.

그리고 11월 1일 방문규 현 수출입은행장은 “함께 고민하고, 서로 격의 없이 소통하는 ‘일할 맛 나는, 일에 즐거움과 보람이 있는’ 최고의 정책금융기관 수출입은행을 같이 만들어 가자”는 인사와 함께 취임했다.

“위원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아, 그게 말하자면 긴데요…”

전화를 받은 신현호 위원장의 목소리는 어딘가 밝아보였다. 기자는 약속을 잡고, 11월 6일 오후 수출입은행 9층에 위치한 노동조합 사무실로 신현호 위원장을 찾아갔다.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임명 전에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일각에서는 노동조합의 출근 저지 움직임을 ‘관례’나 ‘구태 의연한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저희는 임명 전에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임 행장으로) 하마평에 오른 사람 중에 당연히 잘 이끌어간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그게 사실 뽑기와 같았거든요. 오래 누적된 불만이었어요. 임원추천위원회를 열면 좋겠다고 건의하면서, 최소한 절차적 정당성을 갖고자 했어요.

임명이 발표되고, 행장과 오후 4시에 만나서 밤 12시가 되도록 수출입은행과 노동조합이 가진 이슈 관련 얘기를 했는데요, 행장 본인이 ‘대화하자’는 의지가 강했어요. 행장이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보이니, 노사가 양측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보통은 행장과 노동조합이 대내외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어긋날 때가 많은데, 수출입은행의 대내외적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관심을 가지며 해결방안을 찾아보려 논의를 했죠. 행장이 아무래도 기획재정부 출신이다 보니, 노동조합이 헤맬 때 누굴 만나야하고, 어떤 식으로 문제 접근을 해야 하는지 등 다각화하여 접근할 수 있다는 걸 대화를 통해 보여주기도 했어요. 노동조합의 이슈를 은행 외부 사람에게 문의해서라도 구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걸 보면서 함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밤 12시까지 얘기를 했다는 건,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가려는 모습이라고 봐요. 본 지 얼마 안됐지만, 신뢰를 차근차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의 이슈는 무엇인지.

교섭, 파업, 노동자 권리 등 공공기관 노동문제는 총액인건비와 관련돼 있어요. 예산 편성 지침에 총임금 인상률이 공무원 인상률과 동일하게 나오니 임금단체협상을 할 수 없고요, 임금인상 결정구조도 자율적이지 못해요. 조합원의 임금권리를 위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보니까, 이전에는 직원들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노동조합 위원장 뽑을 때, 노동조합 위원장에 직원들이 큰 관심이 없어서 세 번째 공고가 뜨고 나서야 제가 나가서 단일후보로 임명됐어요. 그래서 처음에 신임 행장 출근저지 투쟁에 나선다니까 ‘보여주기식’이 아니냐는 말들도 많았던 거 같아요. 저희에게 실질적 사용자는 정부예요.

위원장으로서 어떻게 이끌어가고 싶은지.

‘든든’이 노조의 기치예요. 조합원들이 자신이 어떤 일을 겪든 노동조합이 있어서 든든하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노동조합 역시 조합원의 단단한 지지가 있어야 하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노동조합의 연속성이 고민되기도 해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노동조합의 일과 자신의 일이 동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풍조가 있어요. 정부 방침이 정해지면 그 범위 내에서 협상하는 게 공공기관이다 보니, 노동조합 활동이 이곳에서 일하는 우리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리기 위해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야만 해요. 3년 동안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습니다.

한편,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한마디 부탁드린다’는 <참여와혁신>의 요청에 이렇게 말했다.

“취임 이후 노동조합과 다양한 현안에 대해 대화하려고 노력하면서, 신임 은행장으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은행의 장기적인 방향성에서부터 맞닥뜨린 현안에 대한 대응방식에 이르기까지 조합과 직원의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며, 주52시간 상한제 등 새로운 노동환경에 노사가 합심하여 대응하기 위한 상호신뢰의 출발점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통해 수출입은행을 더욱 일할 맛 나는 일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