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曰 “대학 전공 살릴 수 있는 일자리 빨리 선택하라”
데이터 曰 “대학 전공 살릴 수 있는 일자리 빨리 선택하라”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2.08 06:36
  • 수정 2019.12.08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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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직장 유형 무관하게 전공 살려야 ‘괜찮은 일자리’로 이행 가능
그런데, 고졸자나 전문대졸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리포트] 데이터가 말하는 것, 데이터로 읽어야 할 것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아가며 ‘취업’은 엄청난 고민이다.

그 고민을 좀 더 확장하면 ‘우선 따지지 말고 취업을 할 것인가’, ‘좀 더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도달한다. 누구도 함부로 조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데이터는 좀 더 나은 선택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황성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미래인재연구본부 동향·데이터분석센터 센터장이 통계를 분석해 쓴 <교육-노동시장 이행과정에서의 선택이 10년 후 노동
시장 안착에 미치는 영향 탐색> 보고서는 첫 직장 유형과 무관하게 대학 전공을 살려야 10년 후 ‘괜찮은 일자리’로 이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 놈의 취업, 대한민국 청년은 어떤 길 위에 서 있나

길을 지나가는 청년을 붙잡고 고민을 물어보면 ‘취업’이라고 답할 확률이 높다. 통계를 봐도 그렇다. 청춘 상담 공간인 ‘좀놀아본언니들’이 진행한 10~30대 청년 2만 1,942명의 고민상담 결과 1위 고민이 취업과 진로였다. 지금 청년들에게 ‘취업’은 가장 어려운 무언가인 동시에 손에 닿지 않는 무언가다.

이러한 상황은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홈페이지에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2019년 10월 기준 청년확장실업률은 20.5%이다. 청년확장실업률은 고용보조지표지만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실업률에서 실업자 충족 요건은 국제노동기구(ILO)의 정의를 따른다. 1)조사대상 주간에 수입 있는 일을 하지 않은 자 2)지난 4주간 적극적 구직활동을 한 자 3)일자리가 주어지면 즉시 취업이 가능한 자. 이 세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면 실업자로 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구직 활동을 하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 같은 단시간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당사자가 생각했을 때 그들이 행하는 단시간 노동은 취업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거쳐 가는 자리일 뿐이다. 청년확장실업률은 그러한 상태인 청년들까지 포함하는 통계다. 결국 청년확장실업률 20.5%를 통해 알 수 있는 지점은 청년 5명 중 1명은 사실상 실업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고 국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아 일자리 창출이 양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이다. 질적인 문제도 있다. 창출되는 일자리의 고용 안정성이나 임금 수준, 노동 환경이 좋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일자리의 양적, 질적 문제 때문에 청년들은 일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다. 대졸 무직자 급증은 이유 있는 현상이다.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것도 이유 있는 현상이다. 가고 싶은 일자리는 경쟁률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떨어져나가는 청년의 수도 많다. 일련의 과정은 악순환을 일으킨다.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면 청년들의 고민은 커진다. ‘우선 따지지 말고 취업을 할 것인가’, ‘좀 더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

데이터 가라사대, 대학 졸업 10년 후
‘괜찮은 일자리’ 가지려면
직업과 대학 전공 일치 시키거나,
전공 지식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거나

황성수 센터장이 쓴 보고서에 따르면 “졸업 이후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s)’로 이행하는 청년들의 경우, 진입시점에 선택한 일자리가 모두 전공과 일치되는 일자리, 가능하면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도움이 되는 일자리를 선택한 결과였다”고 데이터는 말하고 있다. 또한, “진입시점에 선택한 일자리가 중소기업인지, 대기업 및 공공기관인지 또는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등 그 일자리 유형보다 전공과의 일치여부가 10년 후 ‘괜찮은 일자리’로의 이행을 결정하였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이 데이터 분석은 “졸업 이후 노동시장에 안착하는 시점에 ‘괜찮은 일자리’를 가지려면 졸업시점, 즉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시점에서 그 일자리가 가진 외형적 조건보다는 전공과 일치하면서 대학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도움이 되는 일자리인지 판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갖는다.

분석 자료로는 한국고용정보원 ‘대졸자직업이동경로조사(Graduates Occupational Mobility Survey : GOMS)’를 활용했다. 분석 대상 모집단은 2005년 졸업생인 2005GOMS 1차 조사 26,544명이고 10년 후인 2015년 추적 조사는 추적 가능한 모집단 인원 중 1,824명이 대상이었다. 보고서에서 정의하는 ‘괜찮은 일자리’란 ‘1)하는 일과 노동조건 모두 만족 2)하고 있는 직무 수준이 교육수준과 일치하면서 동시에 전공과 일치 3)이직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 이 3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일자리다.

좀 더 준비해 취업할까? vs 빨리 취업해 경력을
쌓을까?
노동시장에 빨리 진입하는 것이 낫다

황성수 센터장은 GOMS 자료를 활용해 다른 통계 분석도 해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청년층 노동시장 진입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것인데, 분석 결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대학 졸업자와 이후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과 시간당 임금에서 유의미한 격차가 존재했다. 즉, 경제 불황은 청년의 취업률을 낮춘다. 경제 불황기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청년은 경제 활황기에 진입한 청년보다 시간당 임금을 낮게 받는다. 또한 이 격차는 지속된다. 청년이 노동시장에 진입해 안정화된 시점에서도 격차는 해소되지 않았다.

다만, 대졸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고용형태, 임금수준 등)의 일자리로 이동이 가능해 취업상 불이익을 피할 수는 있었다. 불이익을 피하고 대졸자들이 노동시장에 어떤 일자리이든 빨리 진입했을 때 8~11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경제 활황기에 취업한 세대들과 소득 격차가 크게 나지 않았다. 물론 경제 활황기 취업 세대 소득 수준을 역전하기는 평균적으로 어려웠다.

이 통계 분석은 청년들이 선택지에서 종합적인 고려를 할 수 있게 돕는다. 노동시장 진입을 앞두고 ‘우선 따지지 말고 취업을 할 것인가’, ‘좀 더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서 있는 청년들에게 좀 더 나은 선택은 우선 취업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데이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경제 불황기를 겪고 있는 현 시점의 청년들에게 데이터가 말해주고 있으니 이렇게 선택해야 한다고 강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러한 길도 있으니 그 선택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라고 할 수는 있다.

결국 두 가지 통계 분석을 종합하면, 첫 일자리 형태가 어떠하든 대학 전공을 최대한 살려서 가능한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선택이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취재를 위해 만났던 황성수 센터장은 “지금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경향성을 말해주는 것이지, 꼭 그러한 선택이 옳다고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통계적으로 그런 유의미한 흐름을 볼 수 있지만, 개개인의 삶을 마이크로하게 들여다봤을 때 누군가는 한숨 고르고 취업을 준비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는 것이 그 사람의 긴 인생에서 제대로된 직업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에 단언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선택은 정확한 계산식에 의해서 내려지지 않는다. 어떤 선택이 향후에 어떤 효과를 낳을지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또 다른 선택과 과정으로 오히려 긍정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일자리의 형태가 어떠하든 대학 전공을 최대한 살려서 가능한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것도 어떤 다른 선택지와 동등한 위치에 있는 선택지일 뿐이다.

데이터가 말해주지 않았던 것
그렇다면 고졸, 전문대졸 취업자는?

해당 통계 분석이 말해주지 않는 것이 있다. 말은 해주지 않지만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위의 통계 분석은 ‘대졸자들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대학 전공’을 가능한 활용할 수 있어야 10년 후 괜찮은 일자리로 가고,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일자리로 이동이 쉬우니 8~11년 후 임금 격차도 해소 가능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거나, 전문대를 졸업하고 노동시장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청년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

황성수 센터장은 “대졸자도 문제이긴 하지만 대졸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일자리라도 갈 수 있다”며 “진짜 문제는 고졸자나 전문대졸자는 낮은 수준의 일자리에서 대졸자와 경쟁하게 되는 것이고 선택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일자리까지 대졸자들이 잠식하면서 고졸자와 전문대졸자들의 일자리 입지가 좁아진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통계로 고졸자와 전문대졸자들의 합리적 선택의 가능성을 알아볼 수는 없다. 그러나, 통계가 소리 없이 말하고 있던 것은 전체 청년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점이다. 단순히 현 상황 내에서 어떤 선택 경로가 경향적으로 괜찮을지를 넘어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나아져야 하나?
성장 동력 만들기와 사회안전망 구축

황성수 센터장이 진행한 두 가지 통계 분석의 목적은 경제 불황기로 인한 청년 실업난 속에서 청년들과 공동체에 좀 더 나은 합리적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목적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 불황이 가장 큰 문제다. 불황기에 놓인 경제에 숨을 불어넣을 정책이 필요하다. 가치를 창출할 성장 동력이 필요한데, 대한민국 경제를 두고 항상 지적하는 말이 혁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역설적이게도 OECD 국가 중 대한민국은 R&D 투자 규모는 높은 순위다. R&D 투자 규모에 걸맞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 이러한 바탕 아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바탕으로 신산업을 육성하고, 기존 산업의 혁신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이 가능해야 한다.

사회안전망도 촘촘하게 짜여 져야 한다. 호황기 경제는 단시간에 도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황기로 넘어가기 위한 다양한 도전에서 탈락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황성수 센터장은 “덴마크는 창업률이 높다. 왜 창업률이 높을까 고민해봤는데, 창업 리스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망하더라도 창업 펀딩이 국가 차원에서 나온다더라, 이게 엄청난 성장 동력이다. 우리나라와 같은 생계형 창업이 아닌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업하는 게 하나의 성장 동력이다. 청년들이 마음껏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제언하기도 했다. 고용형태가 불안정하더라도, 임금 수준이 낮더라도, 그래서 다시 청년들이 노동시장 밖으로 나가더라도 안정성이 높으면 주저하지 않고 노동시장에 진입할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노동시장 진입과 연계된 정책이어야 청년들이 노동시장 바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현시점에서 대한민국 청년으로 살아가며 ‘취업’은 엄청난 고민이다. 그 고민을 좀 더 확장하면 ‘우선 따지지 말고 취업을 할 것인가’, ‘좀 더 시간을 투자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도달한다. 누구도 함부로 조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남의 조언이든 나의 선택이든 어떤 길도 좁고 긴 벼랑이라 발을 헛디디면 껌껌한 골짜기로 떨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청년에 미래가 있다고 말하기 위해선 청년들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이 입체적으로 준비돼야 한다. 그 입체면 중 한 면이 황성수 센터장이 GOMS 자료를 이용해 통계 분석한 결과와 결과를 반추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의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