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하는 청년 전태일들
힙합하는 청년 전태일들
  • 강은영 기자,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2.08 06:36
  • 수정 2019.12.09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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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전태일 힙합음악제 현장을 가다
‘LOVE·MOVE·UNITY’로 하나 된 청년들

[리포트] 전태일 힙합음악제

 

ⓒ 참여와혁신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강은영 기자 eykang@laborplus.co.kr

‘Uh, And when wake up, I recognize you’re lookin’ at me for the pay cut!’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를 쳐다보며 임금 삭감을 생각하는 네가 보여

 -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Alright> 중

2018년 4월, 켄드릭 라마는 인종 차별로 비롯되는 현실 고민과 변화를 가사에 담아 힙합뮤지션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어딘가 닮아 있었다. 지난 9월 16일 접수를 시작해 11월 16일 본선으로 막을 내린 전태일 힙합음악제 참가자들은 스웨그나 플렉스로 자기애를 말하기보다 삶의 현실을 비춰보았다. ‘나’보다 ‘우리’를 얘기하며 시다들과 풀빵을 나눠 먹던 전태일 정신은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청년들의 마음을 밝혔다.

청년을 사로잡은 콜라보

역에서 광장으로 이어지는 출구를 나설 때였다. 광화문 광장 사방에서 태극기가 펄럭였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토요일. 주변에 배치된 스피커가 귀를 울렸고, 살벌한 문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면서 ‘과연 이곳에서 오늘 전태일 힙합음악제가 열린다는 것이 사실일까’ 의문이 드는 찰나, 광장 북부 바리케이드 속에 무대가 보였다.

‘LOVE, MOVE, UNITY’ 문구가 새겨진 무대 앞 행사장은 준비를 앞두고 분주했다. 비트와 집회 구호는 뒤섞였고, 경찰관 여럿이 바리케이드 주변을 지켰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 속에서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기획한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을 찾아 나섰고, 그는 쾌활한 미소로 반겨주었다.

평소 힙합을 좋아한다던 유현아 팀장은 이번 전태일 힙합음악제가 ‘청소년 랩 경연대회를 해보자’는 발상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힙합뮤지션 ‘아날로그소년’, ‘MC메타’와 함께 기획하면서, 청소년, 랩이라는 제한을 거두고 청년 힙합음악제로 탈바꿈했다. 노동과 힙합, 그 사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 유현아 팀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많았죠!”하고 답했다. 그는 “(어려움이) 많았다는 건 서로 이야기를 몰랐다는 것이고, 이야기하면서 오히려 상상력이 증폭될 수 있었어요”라며 답변을 이어갔다.

이번 제1회 전태일 힙합음악제는 9월 16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으로 접수했는데 총 400여 팀이 참가했다. 본선 시작 30분 전, 전태일 기념관과 기획을 함께 했던 아날로그소년은 “예상보다 다들 실력이 좋아서 실연 예심에서 30팀을 뽑아야 하는데 47팀을 올렸습니다”라며 쟁쟁한 실력의 참가자 12명이 본선에 올라왔다는 걸 시사했다. 그는 심사기준에 대해 “‘LOVE, MOVE, UNITY’도 중요 키워드지만, 우선 랩을 잘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유재하 음악제처럼 길게 지속되어서 대회 출신들이 랩을 잘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허클베리피와의 인터뷰

본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힙합뮤지션 허클베리피는 갑작스럽게 천막을 열고 들어온 기자를 반갑게 맞이했다. 본선이 곧 시작하니 짧게 부탁드린다는 기념관 관계자 말에 “저는 길게 해도 괜찮아요”라고 여유를 보였다.

우리는 파란색 편의점 의자에 앉아 집 앞에 마실 나온 듯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계기에 대해 묻자, 평상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디스 배틀이 힙합의 한 모습이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LOVE, MOVE, UNITY’ 주제로 가사를 쓰고 동영상을 올리고 심사를 하는 힙합음악제가 별로 없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본선 시작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집회는 행진 시작과 함께 거세졌고, 천막 속의 이야기는 그만큼 무르익었다.

힙합에는 그보다 전문적일 수 없을 테니, ‘노동’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아날로그소년의 <현장의 소리> 앨범을 들으며,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고, 개선의 목소리도 쉽게 묻힌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 전태일기념관

그 사이 사람들은 하나둘 몰려들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도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드러냈다. 요즘 힙합이 스웨그(자기 과시)와 플렉스(돈 자랑) 위주로 흘러가는 것에 허클베리피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옛날에는 내가 스스로 얻어낸 성취에 대해 자랑하는 걸 터부시하는 문화였는데 이런 걸 드러내 준 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힙합이 그렇게 많이 비춰지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를 갖는 것 같아요. 어떤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으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다보면 …”

허클베리피 왼쪽 손목에 타투가 보였다. 노란색 리본. 그는 공교롭게도 전태일 힙합문화제 본선심사를 보는 광화문 광장에서 3년 전인 2016년 12월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집회 힙합공연으로 목소리를 냈다. 그는 “제 몸에 딱 하나 있는 타투예요. 더 이상 타투를 새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LOVE, MOVE, UNITY

본선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사람 대 사람으로 먼저 생각하는 것이 사랑과 연대의 시작”이라는 말로 허클베리피와 인터뷰는 마무리됐다. 그리고 제1회 전태일 힙합음악제가 시작됐다. 딥플로우의 여는 공연에 관객들은 추위를 모르고 무대로 다가갔고, 이후 진행을 맡은 힙합뮤지션 MC메타는 “사랑과 행동 그리고 연대, 세 가지가 아마 우리 청년들의 꿈과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며 참가자를 소개했다.

12명의 참가자는 다채로운 소재로 힙합을 노래했다. 어머니의 가발, 열정페이, 사회적 성공과 현실 등에 대해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본 가사가 마음을 울렸다. 가끔은 바리케이드 옆으로 행진음악이 들려와도 그들은 마치 저항이라도 하듯 꿋꿋이 노래했다.

‘우리 모두 신나게!’를 외치던 한 참가자는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어깨가 들썩거렸고, 그중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도 있었다. 추운 날씨로 주머니에 숨어있던 손들이 응원을 위해 머리 위로 올랐다. 앉아있던 이들은 일어나서 박자에 맞춰 발을 굴렀다.

힙합계에서 내로라하는 심사위원 셋도 박자를 탔다. 3인용 탁상에 나란히 앉아 패딩으로 부푼 몸을 움직이는 심사위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취향저격’.

ⓒ 전태일기념관

참가자 중 혼성 힙합 듀오 GPS는 자작곡 <그는 죽은 것일까, 그를 죽인 것일까>에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열정페이에 대해 노래했다. 무대에서 내려온 GPS의 멤버 김민혜 씨에게 소감을 부탁하자, “사실 전태일 열사에 대해 잘 몰랐으나, 책을 읽고 공부하면서 역사를 랩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좋았다”며 “힙합으로 사람들이 쉽게 역사를 알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보였다.

관객들은 참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기대어 위로를 주고받았다. 음악제에 참여한 모두가 각자의 마음속에 숨겨둔 펜을 꺼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날이 차지고 어둠이 깊어질수록, 입구에서 받았던 LED 봉이 밝게 빛났다.

힙합의 또 다른 모습을 보다

참가자 12팀의 무대가 끝났을 때는 해가 지고 바람이 더욱 거세져 있었다. 뒤늦게 손을 녹이기 위해 꺼낸 손난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힙합뮤지션 허클베리피와 팔로알토는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마무리하는 축하 공연을 펼쳤다. 허클베리피는 “추운 날씨와 혹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멋진 무대를 펼쳐줘서 감사하다”며 “무대를 함께 즐긴 관객들에게도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 팔로알토도 “만약 경연에 참여했다면 참가자들만큼 잘할 자신이 없다”면서 “이번 음악제에 참여해 심사위원을 하게 된 경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전히 광화문 광장 한 편에서는 상당한 음량을 자랑하는 보수집회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무대를 하게 된 허클베리피와 팔로알토도 익숙지 않은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무대 매너로 추운 날씨에 떨고 있는 관객을 후끈하게 달궈줬다. 유명 가수의 공연이 펼쳐지자, 길거리를 걷고 있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무대 앞으로 모여들었다.

경연 무대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수상자를 호명할 때이다. 수상자를 호명하기에 앞서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무대에 올라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만들어준 기획자와 심사위원들, 참가자들과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한, 참가자 12팀을 위한 특별한 선물도 준비했다. 전태일기념관은 참가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 팔찌를 제작해 전달했다.

왼쪽부터 신진 줍에이 지푸 . ⓒ 전태일기념관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허클베리피, 딥플로우, 팔로알토는 최종 3인에게 상금을 전달하며 기념사진을 남겼다. 최종 3인으로 ▲신진-‘예술가’ ▲안형주(랩네임_줍에이)-‘난 이미 성공했지’ ▲오진명(랩네임_지푸)-‘무제’가 선정됐다. 치열한 경쟁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이들에게 수상소감을 들어봤다.

예술가라면 / 욕심내 사랑을 / 깨닫지 못하는 씨앗들

부끄러워해라 제발 / 모두를 다 안고 싶으니

그래 난 지분이 없지

신진 “예술가” 中

신진(24)은 처음부터 전태일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광주민주화운동과 6.25 참전용사들, 독립운동가처럼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에 관심과 존경이 있어 이번 ‘전태일 힙합음악제’에 고민 없이 참가하게 됐다고 밝혔다.

기존 힙합 경연과 다른 주제에 대해 “원래 힙합은 흑인 빈민 음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안에 연대와 형제애 등이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가사를 작성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경연에서 부른 음악에 대해 “예술의 마지막 단계는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현실은 사랑을 기반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며 “모든 예술 중 가장 솔직하다고 여겨지는 힙합을 통해 진실하게 사랑을 노래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 이미 성공했지 / 난 이미 다 이뤘지

음악 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으니

난 다 이뤘지 obviously //

근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 / 더 많은 욕심을 부리래

난 그저 음악할 뿐인데 / 난 그저 랩이 내 꿈인데

안형주(랩네임_줍에이) “난 이미 성공했지” 中

안형주(23)는 수상자 중 가장 어린 나이로, 현재 대학 재학 중이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래퍼 MC메타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접하게 됐다. “돈이나 자동차에 관해 얘기하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참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긴장하는 모습 없이 능숙하게 무대를 진행한 그의 노래 제목도 특이하다. ‘난 이미 성공했지’. 안형주는 “삶을 솔직하게 말 할 수 있는 게 힙합이기 때문에 살아온 삶을 그대로 담았다”며 “평소에도 음악 하는 게 꿈이었는데 원하지 않는 경쟁을 해야 하는 현실과 사회에서 말하는 성공에 맞추지 않고 살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금껏 이시대의 변화는 누군가의

목소리부터 그 싸움으로 다음 세대들은

새 꿈을 꿔 그렇다면 진짜 내 선택은 무엇?

이젠 느껴져 혁피의 무언가가

중요했던 거지 주변상황보다

오진명(랩네임_지푸) “무제” 中

오진명(30)은 본 무대에 서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실제 공연 시작은 오후 5시였지만, 참가자들은 오후 1시 30분부터 모여 리허설을 시작했다. 마이크가 잘 나오는지, 음악이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야 할 시간에 보수집회의 엄청난 음향 출력으로 인해 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과시하거나 누군가를 공격하는 모습이 힙합 일부분이기도 하지만 힙합의 본질적인 부분은 사랑과 행동, 연대에 관한 내용이 많다”며 “이번에 가사를 쓸 때도 ‘전태일 힙합음악제’ 주제를 따로 떨어진 단어로 해석하기보다는 ‘사랑’을 하게 되면 ‘행동’하게 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연대’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청년 노동자, 전태일

참가자 접수부터 본선 무대까지 2달 동안 달려온 제1회 ‘전태일 힙합음악제’가 막을 내렸다. 노동운동의 대표자 전태일과 2030 세대의 대표 음악 장르 중 하나인 힙합의 만남은 언뜻 봤을 때 생소하게 느껴질 만하다. 우려의 시선과는 달리 참가자들의 수만 400명이 넘었고, 총 3번의 심사를 거쳐 최종 3인이 가려졌다.

1970년대 후반, 뉴욕 맨해튼 부근의 브롱스와 할렘 지역 빈민가에서 생활하던 흑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된 사회적 억압과 시선에 대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전태일은 척박한 노동환경 속에서 일하는 어린 여성 노동자들을 안타까워하면서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힙합과 전태일은 동떨어져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 의미를 살펴보면 맞닿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관장은 이번 경연을 통해 “전태일 정신을 가사에 녹여내기 위한 노력을 통해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전태일을 생각하고 만나볼 기회였다”며 “전태일이 젊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로 다가갈 수 있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고 밝혔다.

ⓒ 전태일기념관
ⓒ 전태일기념관

이번 기회를 통해 젊은 세대들도 전태일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 기존에 전태일은 어쩐지 무겁고, 노동조합과 깊은 연관 고리가 있어 젊은 자신들과 관계가 깊지 않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이날은 ‘전태일 힙합음악제’ 안에서 힙합을 노래하고 좋아하는 래퍼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는 2020년이면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해 전태일기념관에서는 특별한 행사를 또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유현아 전태일기념관 문화사업팀장은 “문화예술인들이 모두 함께 모이는 프로젝트를 기획 중”이라고 귀띔했다.

노동 운동을 대표하는 ‘전태일’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지만, 청년 노동자였던 전태일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다. 청년이었던 전태일이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를 사는 청년들과 만날 방법은 무엇일까. 이번 전태일 힙합음악제를 통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