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일하지 않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2.07 04:01
  • 수정 2019.12.07 0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시간 단축 = 일하지 않는 시간 확보
일하는 ‘나’는 다양한 ‘나’ 중 하나일 뿐

커버스토리⑥ 일하지 않는 시간을 생각하다.

주52시간 상한제 X 중소기업

우리 사회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매번 진통을 겪어왔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앓는 소리와 현장의 혼란 더욱 크다. <참여와혁신> 12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2020년 1월 1일 50~299인 사업장 주52시간 상한제를 앞두고 중소기업의 이유 있는 앓는 소리를 모아봤다. 또한, 선제적인 논의와 노사 합의로 이미 주52시간 상한제를 시행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펴봤다.

대한민국은 장시간 노동 공화국이다. 2018년 기준 1,967시간으로 OECD 국가 중 장시간 노동 3위이다. OECD 발표에 의하면 1위 멕시코, 2위 칠레, 3위 대한민국이다. OECD 평균인 1,673시간에 비하면 294시간을 초과한다. 단순하게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잡았을 때, 313시간은 약 37일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한 달하고 일주일을 더 일터에서 보낸다.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인 자연력은 똑같다지만, 노동환경에 따라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52시간 상한제 안착을 넘어 노동시간 단축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노동시간 8시간의 의미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하루 8시간 노동을 권고한다. 많은 나라들이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두고 있기도 하다. 하루 노동시간 8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 이전에 하루 8시간 노동은 왜 나왔을까? 8시간 수면, 8시간의 자기 시간, 나머지 8시간의 노동이라는 삼박자 구성이라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현재 딱히 하루 8시간 노동을 세계적으로 채택한 정확한 이유는 없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세계 보건 기준에 하루 8시간은 자야 한다고 나와 있고, 8시간은 이동하고 식사하고 재충전도 가지고, 그러니까 8시간 이상 일하면 안 되는 것”이라며 “8시간 이상 일하게 되면 다른 것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스갯소리 같은 간단한 셈법이지만 수면과 식사만으로 인간은 충전되지 않고, 수면과 식사 외의 삶을 살 시간이 필요하다는 중요한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다.

김형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노동시간센터장은 “사회적으로 결정하는 것 아닐까”라고 하루 8시간 노동의 이유에 대해 질문으로 답했다. “옛날 14시간 노동할 때 10시간으로 줄이자고 했고, 현재는 6시간 노동 실험도 있다”며 “8시간이 답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시간은 사회역사적인 변화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의미다. 사회역사적 변화 과정에 따라서 노동시간의 개념과 노동시간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당 주체들의 사회적 결정이 하루 노동시간을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근본적인 바탕에는 인간의 시간 활용을 둘러싼 고민이 함축돼 있다는 점이다. 인간의 시간 활용은 크게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일하는 시간과 일하지 않는 시간의 역학 관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없다?!
일하지 않는 시간 사용자들에게도 중요해

일하지 않는 시간에 대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가 없으면 일하는 시간을 늘려도 된다. 인간의 건강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노동시간을 유지하면 된다. 하지만 인간의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다.

실제로 노동시간을 줄여오면서 우리 사회에 조용하게 닥친 문제가 있다. 노동시간 단축 대상자인 노동자들 스스로가 일하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른다는 문제였다. 주6일 근무제에서 주5일 근무제로 변했을 때 일터로 출근한 노동자들이 꽤 됐다. 그럼에도 점점 변화는 있었다. 김형렬 센터장은 “두원정공이라는 자동차 부품사의 교대제 개편을 통한 노동시간 단축을 조사했는데, 생활 변화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었다”며 “주간연속 2교대제 개편 전에는 취미 생활 100가지 정도 중 90%의 노동자가 10개 정도의 취미 생활 개수 범위에 들어온 반면 주간연속 2교대제 개편 1년 후 취미 생활 개수 범위가 몇 십 개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무엇을 할지 노동자 스스로 여러 시도를 하고, 일회성에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유지하는 취미로 발전했다는 뜻이다. 또한 남성 노동자의 가사 노동 참여도 양적으로 높아진 동시에 질적 수준의 변화도 감지됐다.

한 마디로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의미가 있었다. 일하지 않는 시간에 행했던 것들은 다양한 나로 살게 하면서 인간의 삶을 다채롭게 하고 타인에게 긍정적 영향도 미쳤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하는 ‘나’만 있지는 않다. 책을 읽고 싶은 ‘나’도 있고, 운동하고 싶은 ‘나’도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나’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부모로서 ‘나’도 있고, 자식으로서 ‘나’도 있으며 배우자 혹은 연인으로서 ‘나’도 있다. 다양한 ‘나’들의 총체인 인간이 그 합을 모두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일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시간은 사용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요즘 CEO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영역까지 관심을 갖는다. 김형렬 센터장은 “사용자들이 자기 노동자가 생활영역에서 엉망으로 살아 건강이 나빠져서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영역에서도 굉장히 잘 살아가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직무 스트레스만 관리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 스트레스에도 관심이 많고, 그러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경영체계를 만들려는 게 최근의 움직임이라고 김형렬 센터장은 설명했다. 사용자 입장에서도 자신의 사업체가 일정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일정한 생산력을 유지하는 게 기본 목표일 것이다. 연관해서 기업들은 노동자가 일하지 않는 시간에 필요한 교육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업무와 관련한 교육과 자기 개발 프로그램이라면 궁극적으로 회사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모두에게 중요한 시간이다.

일하지 않는 시간을 확보하라
얼마만큼 단축돼야 하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문화적 지원도

노동시간 단축이 가능해야 일하지 않는 시간이 만들어진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인간 개인에게, 사회에게 소중한 시간이다. 그러면 얼마나 노동시간이 단축돼야 하는 것인가? 하염없이 줄어들기만 할 것인가? 기우에 가깝다. 노동시간 단축은 사회역사적 결정이다. 사회역사적 결정의 주체 중 가장 큰 축을 담당하는 두 집단은 노동자와 사용자이다. 노사의 중간 지점 찾기로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가 흘렀지만 노동시간 제로의 역사로 귀결되지 않을 확률이 다분하다.

논의를 좁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까? 많은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경험해보자고 답했다. 사실 주52시간 상한제도 근로기준법에 대한 왜곡된 행정해석을 바로 잡은 ‘정상화’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의 규모에 비해 장시간 노동 시대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얼마만큼 단축해야 하냐고 묻기 전에 조금이라도 단축을 경험해보자는 게 중론이다. 그래서 주52시간 상한제 안착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정상화에서 한 발 더 나아가면 단축이지만 한 발 더 뒤로 가면 금방 역행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노동시간 단축이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공공분야에서 문화 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저변이 확대돼야 한다. 우리 사회는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공공이 지원하는 문화 토양이 넓지 않다. 게다가 지역 간 문화서비스 격차도 크다. 공공 도서관, 공공 체육관, 공동체 활동을 조직할 수 있는 공적 지원을 통해 일하지 않는 시간에 일터 밖으로 나온 인간들을 위한 공간 구축이 중요하다. 또한, 일하지 않는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여가거리를 찾아다니는 일이 또 하나의 굉장한 비용부담이라면 노동시간 단축의 의미가 어떠하든 노동자는 일터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

폴 라파르그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에 이렇게 썼다. 아무리 봐도 이러한 시간은 노동하지 않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 가능한 것들이다.

“우리에게는 ‘가만히 멈추어 서서 바라볼 시간’이 필요하며, 무슨 사건에 참여할 때는 어느 정도 긴장감도 느껴야 한다. 우리는 혼자 있을 시간이, 타인과 깊숙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간이, 집단의 일원으로서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자신의 일을 몸소 창조적으로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 외부에서 주어지는 즐거움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모든 근육과 감각을 사용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라건대, 많은 사람이 동료들과 함께 정말 건전한 세상을 만드는 방법을 기획할 시간이 필요하다.”

취재를 했던 권혁찬 에쓰피씨팩노동조합 위원장도 비슷한 일화를 들려줬다.

“선배한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선배님은 자식도 잘 키우고 집도 장만하시면서, 주말 특근하고 맨날 출근해서 그렇게 했는데, 여유 없던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했더니 ‘아, 그거는 (무엇으로도) 대체가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아쉬운 거예요. 일만 해서 평생 산 것에 대한 후회가 든 거죠.”

아무리 봐도 일하지 않는 시간에 가능했던 것을 하지 못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일화이지 않았을까. 일하지 않는 시간에 실현할 수 있는 ‘나’들을 위해 노동시간 단축 사회로 다가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