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적이지 않은 경제 상황, 하역 노동자 갈 길은?
낙관적이지 않은 경제 상황, 하역 노동자 갈 길은?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12.08 06:39
  • 수정 2019.12.08 0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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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 신뢰 회복과 항운노련 위상 제고

[인터뷰] 최두영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위원장 최두영, 이하 항운노련)은 지난 9월 26일 경주 더케이호텔에서 정기대의원대회를 열고 임원선거를 진행했다. 이번 선거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한 최두영 위원장은 전체 대의원 221명 중 21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95.2%(200명) 지지를 얻어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그동안 조합원들이 많은 부산항운노조 출신이 항운노련 위원장을 맡아왔는데, 항운노련 출범 70년 만에 처음으로 인천항운노조에서 위원장이 선출돼 의미가 남달랐다.

항만·철도·연안·농수산시장·창고 등 하역 물류 관련 노동조합의 전국적인 연합체인 항운노련을 3년간 이끌게 된 최두영 위원장을 만나 항운노련의 현실과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최두영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최두영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

최두영 위원장은 항운노련 출범 이후 처음으로 인천항운노조 출신 위원장이 당선된 이유에 대해 “많은 조합원이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었다”며 “그동안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그에 부응하지 못한 모습들에 대한 실망감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거에서 구체적인 공약을 내세운 것은 아니지만 지역 단위노동조합들이 원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지원하는 역할을 해내겠다는 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항운노련 위원장 선거는 경선보다는 단독 후보로 출마하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최두영 위원장은 처음부터 항운노련 위원장을 생각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항운노련의 가장 큰 조직인 부산항운노조와 여러 핵심적인 조직에서 ‘분위기를 바꿔보자’며 위원장 출마를 제안했지만 몇 차례 거절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항운노련 위원장 선거가 진행되기 전인 지난 5월, 인천항운노조에서 위원장으로 당선됐다. 인천항운노조가 안고 있는 현안도 많은데, 항운노련 위원장을 수행하며 두 가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한다.

항운노련에서 신임을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최두영 위원장의 지난 발자취를 살펴보면 가늠해 볼 수 있다. “지난 1999년 연맹에서 쟁의 국장으로 활동하며 실무적으로 일을 풀어가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그 부분에 대한 평가를 높이 해 준 것 같다”며 “그런 점이 항운노련 위원장으로서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하게 된 것 같다”고 최 위원장은 조심스럽게 밝혔다.

최두영 항운노련 위원장 프로필

1992년 인천항운노조 가입

1999년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쟁의국장

2003년 인천항운노조 쟁의부장

2013년 인천항운노조 부위원장

2019년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항운노련에 주어진 과제, 해결방안은

최두영 위원장은 하역노동자들의 특징을 ‘파동성’이라고 정의했다. 일반 제조업처럼 라인화돼 있거나 규격화돼 있는 작업이 아니라 대기 상태에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물량이 많을 때는 며칠간 집에 가지 못하고 일을 할 때도 있지만, 물량이 없으면 2~3일씩 집에서 쉬는 경우도 생긴다. 이런 특징을 가진 하역노동자들을 ‘자유 노동자’와 같다고 말했다.

항운노련은 노동조합 중 유일하게 클로즈드 숍(closed shop)을 채택해 운영하고 있다. 클로즈드 숍은 조합원일 것을 고용 조건으로 해 모든 노동자를 조합에 가입시키는 노사 간의 협정을 뜻한다. 이처럼 하역노동자들은 모두 항운노련 소속 조합원인 셈이다.

경제 상황이나 기후환경으로 인해 물량이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상황에서 기업에서 상용직을 채용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인력을 확보해놓고, 기업에서 인력이 필요할 때 노동자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노동조합에 비해 폐쇄적인 구조이다 보니 여러 문제도 발생한다.

항운노련의 채용 비리는 고질적인 문제로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다뤄지고 있다. 최두영 위원장은 “이제는 조합원들도 자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일부에서 조합원을 사칭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규약 개정을 하는 등 강한 제재 수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정된 통로로 인력이 들어오는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부산에서는 노동조합을 제외하고 해양수산청, 물류협회 등에서 공채개념의 채용도 진행한 바 있다”며 “앞으로 이런 시스템이 확대된다면 채용 비리 문제는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클로즈드 숍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수노조 체제로 개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최두영 위원장은 복수노조 체제가 항만에 들어오게 되면 생길 수 있는 문제점들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복수노조를 허용하게 되면 조합원들은 생존권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며 “일반 업종처럼 조직적인 변화가 아니라 일자리 수가 한정돼 있어 조합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서 “복수노조가 생기게 되면 하역시장에 교란이 생길 우려도 존재한다”며 “새로운 노동조합이 들어오게 되면 임금을 깎아 경쟁력을 확보하려 시도할 것이고, 이것이 지속된다면 결국 공멸할 위험성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IMF와 2009년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항만의 물동량은 줄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 경기 흐름은 물동량도 줄어 하역노동자들에게도 큰 위기다. 최두영 위원장은 “한국은 수출입 의존도가 심한 국가인데, 최근 수출입 물동량이 줄어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 크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북경협’이 돌파구로 보인다”고 밝혔다.그러면서 “대북경협이 이루어지면 상대적으로 항만이 발달하지 않은 북한을 상대로 항만을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다”며 “노동조합도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항운노련이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은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안정성을 주는 것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기술이 발달하면서 항만에도 영향을 끼쳤다. 조합원들의 일자리는 더욱 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최두영 위원장은 “정부에서는 고용 감소 없는 스마트 항만을 만들겠다고 하지만 이는 모순에 가깝다”며 “사람을 줄이지 않고 무인 시스템 도입이 가능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자리가 감소할 경우 보완할 수 있는 노동정책이나 다른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는 실업 보장과 같은 대책 없이 자동화를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현장의 노동자들도 4차 산업혁명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지만,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조합원들의 신뢰 회복, 항운노련의 위상 공고히 할 것

3년간 항운노련을 이끌면서 인천항운노조도 살펴야 할 최두영 위원장에게 주어진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경제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조합원들의 노동조건 향상을 요구하기란 쉽지 않다.

최두영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먼저 경제가 발전되고 안정을 찾으면 물동량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항만에도 안정이 찾아올 것”이라며 “물동량에 대한 부분은 노사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도와주면 좋을 것 같다”고 소망했다. 그러면서 “항운노련 자체적으로 단위노조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에 대해서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안정적인 노동 여건을 만들기 위해 사용주들과 의견을 나누거나 대정부 건의를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볼 예정”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최두영 위원장은 “안으로는 연맹이 정말 믿고 ‘의지할 만하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조합원들의 신뢰를 견고하게 만들고 싶다”며 “대외적으로는 정부나 사용주들이 연맹의 목소리를 신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