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혼자라서 좋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혼자라서 좋지 아니한가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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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인터뷰] 장우규 디자이너

해군장교였던 그가 전역한 후 찾아갔던 곳은 사디(삼성디자인교육원)였다. 그리고 2015년, 패션전공으로 졸업한 그는 다양한 전시에 참여하며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어쩌다 들어간 패션회사에서 전시기획사로, 그러다 프리랜서가 된 그에게 여동생이 했던 말은 “통신사는 10년 동안 안 바꾸면서 직업은 왜 이렇게 쉽게 바꾸냐”였다. 전시 도슨트를 하면서 문득 “나도 작간데, 왜 내가 남의 이야기를 해주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그는 지금 꾸준히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은 배지에 담아내고 있어 즐겁다.

장우규 디자이너의 취미는 박물관 탐방이다. 19일 오후 주문한 커피를 기다리며 ‘시간이 날 때마다 무엇을 하냐’고 묻자,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박물관에 가요”라고 말한다. 박물관이라고? 미술관을 잘못 말한 건 아닐까? 아니다, 박물관이 맞다. 그는 특히 고궁박물관에 자주 들른다. 장우규 디자이너의 말을 듣고 나는 칙칙한 카페 천장을 올려다보며 과거를 회상했다. 언제였더라? 아버지께서 목마를 태우셨던 10살이었나? 자신이 제작한 <대한제국 이화문양 참고자료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그는 “저는 관찰을 잘 하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한다.

오랜 고민은 나의 무기

2015년 사디(삼성디자인교육)를 졸업한 당시 그는 고민이 많았다. 문래동에서 열렸던 전시를 출발점으로 다양한 곳에서 창작활동을 이어나갔지만, 다른 작가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만한 소재를 찾지 못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무엇에 대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주어져야만, 던져져야만 그리는 나의 습성이 어쩌면 디자이너와 가까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패션회사에 취업하여 6개월을 일하다가 문득,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전시 기획사로 회사를 옮겼다.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전시를 두 번이나 총괄 기획했던 그는 팀원들과 함께 웹툰, 카드뉴스, 굿즈, 스타일링 소개, 실무 디자이너 인터뷰까지 다양한 종류의 마케팅을 논하면서 새로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찾았다. 일을 하면서도 ‘2017 중앙 패션 디자인 콘테스트’에 나가 금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그는 한마디로 ‘물 만난 고기’였다.

코래픽, 프리랜서의 시작

긴 호흡으로, 꾸준히 하고 싶은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은 건 ‘중앙 패션 디자인 콘테스트’에서였다. 당시 주제는 ‘경복궁 문창살’이었다. 그는 고궁 외부와 내부의 문창살 패턴이 다르다는 걸 착안하여 옷에 적용시켰다. 코트에는 가장 외곽에 있는 근정전 문창살 문양을 넣고, 코트 안쪽 옷에는 궁궐 안 문창살 문양을 넣어, 옷을 벗을수록 궁 안으로 들어가는 이미지를 연출한 디자인은 그에게 금상을 안겨주었다. 수상과 함께 그는 ‘문양’과 ‘심볼’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고, 이는 그가 운영하는 ‘코래픽’의 출발점이 됐다.

장우규 디자이너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는 이번으로 벌써 10번째다. 그는 ‘상처받은 숭례문의 단청을 기억해요’라는 첫 번째 프로젝트를 통해 전소 이후 복원된 숭례문의 단청이 박락되고 있으며, 원가 절감을 위해 수입 시료를 쓰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단청 배지를 제작했다.

이후에도 오얏꽃 배지와 한글배포 500주년 기념우표 디자인으로 제작된 한글날 배지가 큰 인기를 끌었다. 장우규 디자이너는 ‘잊고 있거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심볼을 찾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장우규 작가는 현재 태극기의 원류인 ‘좌독기’ 배지로 펀딩을 진행 중이다. 그는 현재 태극기가 특정 집단의 전유물로 사용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하다가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충,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우규 디자이너는 프리랜서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임금’과 ‘계약서’를 유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언젠가 그는 지인의 소개로 회사와 3개월 구두 계약을 한 적이 있다. 첫 번째 달에는 생각보다 일이 너무 많았고, 마지막 달인 셋째 달에는 일이 너무 없었다. 그때 회사는 협의 없이 계약기간보다 일찍 업무종료를 통보하고 제시했던 임금의 반만을 그의 통장으로 지급했다.

“초창기에 프리랜서로 시장에 뛰어들 때 멋모르고 다 하는 경우가 생겨요. 과다한 업무를 받고 할당량만큼 임금을 받지 못하다보면 의욕마저 상실하게 됩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이제 회사가 계약서에 없는 내용을 추가하여 요구하는 걸 대비하여 업무 제외사항을 명기하여 계약서를 작성한다. 이어서 그는 “프리랜서는 시간싸움이다”이라며 “외주 주는 회사가 내부 의견도 모아지지 않아 명백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거나 자신의 역량 이상이라면 똑 부러지게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협력을 위해서는 사공이 한 명이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암묵적인 중압감 때문에 진정 원하는 걸 선택할 자유를 겪어볼 기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만화가가 될래요’ 라고 했는데 친척들이 반대했어요. 대신 그림 그리는 걸 취미로 삼고 있는 의사 얘기를 하면서 의사가 어떻게 집안을 일으켰는지 말했죠. 15년 지난 후, 친척들은 저보고 ‘웹툰 안 그리냐’고 묻더라고요. 어른들의 조언을 참고는 하되,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하는 자유와 용기를 자꾸 경험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게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했던 사람들은 그 말에 책임을 지지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