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고공농성 184일차, 농성 200일 전 땅 딛을 수 있을까
삼성 고공농성 184일차, 농성 200일 전 땅 딛을 수 있을까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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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 6월 10일 강남역 CCTV철탑 농성 시작
12월 26일 ‘200일’ 앞두고, 김용희 공대위 “문제 해결 촉구”
12월 10일 강남역 CCTV 철탑에 올라가 있는 김용희 해고노동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12월 10일 강남역 CCTV 철탑에 올라가 있는 김용희 해고노동자.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변한 것은 날씨밖에 없었다. 24년 전 삼성에서 해고된 김용희 노동자가 지난 6월 10일 폭염을 뚫고 강남역 CCTV 철탑에 올라갔다. 약 6개월이 지난 지금 무더위는 온 데 간 데 없고 뿌연 미세먼지와 살을 에는 추위만이 가득하다. 여전히 김용희 노동자는 철탑을 지키고 있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김용희 공대위)는 12월 10일 낮 12시 강남역 8번 출구 삼성 고공농성장 앞에서 ‘고공농성 200일이 되기 전에 땅으로!’라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강남역 CCTV 철탑 아래에서 함께 천막농성 중인 이재용 삼성중공업 해고노동자도 함께했다.

김용희 노동자는 1982년 6월 삼성항공에 입사했다. 노조설립을 시도하다가 1991년 해고를 당했다. 이후 대법원까지 가는 해고 무효를 둘러싼 법적 공방을 벌였다. 결심공판을 앞둔 1994년 김용희 씨는 복직이 됐다. 하지만 원직이 아닌 삼성건설(현 삼성물산)이었다. 이후 러시아 지부로 발령된 김용희 씨는 1995년 한국에 돌아왔다. 그러나 김용희 씨가 삼성에서 일할 수 있는 자리는 없었다. ‘해고 조치’ 없이 해고된 김용희 씨는 올해 7월 10일 만 60세 정년을 맞았다.

이재용 씨는 1986년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입사 후 '삼성동지회'를 조직해 노조설립을 추진했다. 1997년 회사와 갈등을 빚은 끝에 '열병합발전 설비 설치현장 발령'을 거부하다가 해고를 당했다. 이후 이재용 씨는 전국해고자복직투쟁위에서 활동했다. 2013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는 이재용 씨를 민주화 유공자로 선정하고 삼성에 복직권고를 한다. 하지만 삼성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2018년 8월 이재용 씨는 김용희 씨의 소식을 듣고 강남역 8번 출구에 농성장을 차렸다. 이재용 씨도 올해 12월 31일이 되면 만 60세 정년이다.

12월 10일 낮 12시 강남역 고공농성장에서 '김용희 공대위'가 개최한 '고공농성 200일 전에 땅으로!'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김용위 공대위는 부당해고,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복직을 주장하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거나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해선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이라고 이유를 덧붙였다.

전지윤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실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량한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하겠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고통 속에서 살다가 마지막으로 한 선택이 고공철탑에 갇혀있는 것”이라면서, “200일이 다 돼 가는데도 삼성은 반응이 없다. 김용희 노동자는 위에서 죽어서 내려오겠다고 한다. 김용희 노동자가 죽을 때까지 삼성이 그렇게 보고 있을 것인가.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복직시켜야 김용희 노동자가 땅에 발을 디딜 것 같다. 그것 없이는 한 치도 내려올 생각 없다”고 비판했다.

김용희 공대위는 기자회견 이후 ▲이재용 부회장 엄중처벌 촉구 탄원서 온-오프라인 서명운동 ▲서초동 삼성본관 일대 점심-저녁 시간 릴레이 1인 시위 ▲매주 수요문화제 진행 ▲12월 21일 토요일 3시 대규모 집중집회 ▲12월 23일 개신교 대책위 및 NCCK 공동 기자회견 등을 계획한다고 알렸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이후 김용희 공대위는 삼성본사를 찾아 ‘삼성문제해결촉구서한’을 전달하려 했으나 전달하지 못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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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회견 이후 김용희 공대위는 삼성본사까지 행진 시위를 이어나갔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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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본사 앞에서 전비담 한국작가회의 시인이 '김용희 이재용 삼성해고자 문제해결 촉구 서한'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재용 해고 노동자의 뒷모습.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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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 촉구서한은 결국 삼성에 전달되지 못했다. 항의의 뜻으로 김용희 공대위는 서한을 찢어 삼성본사 안으로 던졌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