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저항세력을 흔들어라
개혁 저항세력을 흔들어라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8.09.03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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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in Issue 공공 전선 이상 없나 ⑥ 직격진단2
노동조합이 내부 개혁과 감시 주체로 나서야
‘반MB 정서’ 방패 삼아 조직 지키기 안주 경향

공기업 선진화 방안을 둘러싼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 이후 여러 실책을 범하면서 정책 수행 지지도가 바닥을 해매는 과정에서 ‘반MB’ 정서가 강하게 형성된 것도 요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즉 ‘MB가 하는 일은 뭐든 싫다’는 안티 세력이 급증한 것이다.

더구나 전기, 가스, 수도, 건강보험 등 4대 공공요금이 폭등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것도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 대한 거부감을 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분명 정부의 무능력함이나 말 바꾸기가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공기업 개혁이 필요 없는 걸까. 혹시 공기업 당사자들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것은 아닐까.

공기업 개혁을 위한 표적 감사?

기획재정부는 1차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배경에 대해 “과다한 임금ㆍ복리후생으로 ‘신의 직장’이라는 지적도 받았으며 동일 산업 분야에 지원기관이 다수 존재하여 기능 중복에 따른 비효율도 문제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공기업 개혁을 주장하는 근거로 항상 제기되는 것이 방만한 경영, 구성원의 모럴헤저드다. 이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공무원 혹은 공기업 개혁이 신정부의 개혁과제 중 하나로 등장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MB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이번 대선 기간 공기업 민영화 공약을 주요 핵심개혁과제로 내세웠다. 정부 출범 후 감사원과 검찰은 이를 반영하듯 공공기관에 대한 감사와 조사를 다각도로 진행했다.

특히 감사원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작년 12월 19일 이후 ‘지방공기업 경영개선실태’ 감사를 시작으로 8개월 동안 무려 45차례의 공기업 감사를 실시했다. 이중 36차례의 감사가 6~8월에 집중 배치되고 있다.

이는 촛불집회를 통해 확산되었던 공기업 민영화 반대여론이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던 시기와 일치한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이기 위해 표적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했다.

공기업의 모럴헤저드 심각

그러나 감사원과 검찰의 발표는 공기업의 모럴헤저드가 심각하다는 사실 또한 보여주었다. 감사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한국전력공사는 지난해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성과상여금의 기준이 되는 연봉월액을 실제보다 높게 책정해 1177억 원의 인건비를 추가 지급했고, 신용보증기금은 2005∼2007년 인건비를 쓰고 남은 돈과 관련해 ‘특별업무 추진 시간외근무’ 명목의 사후 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45억9800만 원을 부당 지급했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은 지난 7월 24일 전국 40개 공기업 비리 수사에 나서 104명을 인지, 이 중 37명을 구속 기소하고 6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한국도로공사 직원의 경우 성매매가 포함된 고가의 해외여행을 무면허 공사업자로부터 제공받았으며 근로복지공단 하급직원의 경우 3년간 15억여 원을 빼돌려 주식투자, 경마·경륜, 로또 복권 구입 등으로 전부를 탕진했는데도 자체 적발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공기업에서는 노조가 각종 납품, 인사 등 회사업무에 개입해 금품을 수수하는 등 노조간부의 이권 개입 사례도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낙하산 인사와 방패막이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대체로 일치했으나 그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존재한다.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이재기 정책실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기업 관련 부분은 항상 도마에 오르곤 했다”며 “공기업과 관련해서는 3공 때부터 이어져왔지만 개혁의 질을 따져야 하는데,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말로만의 개혁이었지 실질적인 개혁의 과제를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동의했다.

반면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연맹 윤춘호 선전국장은 “문제점이 있으면 문제점을 고치면 된다”면서도 “비리는 노동자들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기관장이나 임원이 저지른 것이고 대한민국에 비리가 있다고 해서 대한민국 전체가 썩은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 공기업 비리가 기관자체의 비리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했다.

공기업의 비리와 방만한 경영의 원인에 대해서는 낙하산 인사와 이에 영합하는 노동조합의 잘못이 지적됐다. 공공부문사유화저지공동행동 김영호 대표는 “공기업 기관장들을 보면 기업경영에 대한 경험이나 지식이 없고 분야별로 보더라도 특정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비전문가이자 친정권적인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낸다”며 “정치권력을 쫓아다닌 사람들은 대부분 건달이다. 밥 사주고 돈 내고 술 사주고 해서 낙하산 받은 거다. 그래서 경영이 방만해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공기업 노조들도 낙하산 인사를 자기들의 방패막이로 쓰는 경향이 있다”며 “처음에는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다 이들과 짜고 기업을 방만하게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기업 민영화를 찬성하는 한국경제신문 안현실 논설위원도 “공기업 인사가 절반의 개혁을 담당한다”며 낙하산 인사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어 “인사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경우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조합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고 노조와 양립하려는 이면합의가 진행되게 된다”며 일본 우정공사 개혁과정을 예로 들었다.

안 위원은 일명 ‘우정족’이라 불리는 우정국 출신의 정치인, 관료, 우정공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연합해 우정공사를 불건전한 기업으로 만들었다며 “대한민국 공기업도 이것과 똑같다.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이나 지식경제부 산하 공기업도 일본의 ‘우정족’과 마찬가지로 정치인, 관료, 기업이 한 몸으로 뭉쳐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공기업 방만 경영의 책임은 경영진이 져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상당수의 노동조합은 공기업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공기업의 틀에 안주하면서 기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측면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오명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공공부문 노동계가 더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수세적으로 조직을 보호하는 정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점들을 공론화시키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역할을 노동조합이 해야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