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 되는 ‘말’ 타는 이들의 노동건강권
‘말’ 안 되는 ‘말’ 타는 이들의 노동건강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12.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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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경마기수 노동조건 실태 조사 발표
마사회 불합리 구조 기수 안전과 생활 위협으로 이어져
아파서 결근하거나 참고 출근하는 비율 매우 높아
고 문중원씨의 모습이 담긴 팻말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고 문중원씨의 모습이 담긴 팻말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1월 29일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경마기수 문중원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산경남경마공원 2005년 개장 이후 7번째 죽음이다. 경마기수 4명과 말관리사 3명 모두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유서는 하나같이 마사회의 불합리 구조와 과도한 업무 부담을 지적했다.

2017년 말관리사 박경근·이현준 씨 죽음 이후 마사회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위원장 최준식, 이하 공공운수노조)는 문제로 지적된 마사회 불합리 구조와 과도한 업무 부담 개선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바뀌지 않은 채 문중원 씨 죽음으로 돌아왔다.

공공운수노조는 11일 오전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마사회에 형성된 노동자 죽음의 구조를 다시 밝히기 위해서였다. 해당 조사는 지난 4일 공공운수노조가 진행했다. 전국 전체(서울·부산경남·제주 경마공원) 기수 총 125명 중 75명이 조사에 참여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 약 60%가 조교사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중 85%는 부정한 지시임에도 따르지 않으면 말을 탈 수 없다고 답변했다. 부당한 지시의 내용은 ‘해당 말의 100%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 ’다리 안 좋은 말 기승‘, ’1군 말을 늦게 들어오게 해 2군에 머물게 하는 승군 착순위‘ 등이다. 경마 승부를 조작한다는 의혹이 발생하는 대목이다. 조교사들은 부당한 지시가 아니라 작전이라고 설명하지만, 조사에 따르면 부당 지시와 작전이 명확하게 구분 가능하다고 80% 가까이가 응답했다.

현재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절반이 ‘건강이 나쁘다’고 응답했다. 경마기수들은 말에 채이거나 말을 제어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근육을 쓰는 경우가 많아 근골격계 질환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경마기수들은 ‘건강이 나쁘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평균인 50%보다 높은 61%였다. 실제로 건강문제로 인한 결근일도 서울·제주경마공원에 비해 부산경남경마공원이 높았다. 3일 이상 결근일은 전체 응답자 중 50%에 육박한다. 2017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산업에서 건강 문제로 인한 1일 이상 결근일 수준은 10~15%이다.

몸이 아픈데도 나와야 하는 경우를 출석주의라고 하는데, 경마기수의 경우 아파도 말을 타러 나온 날이 하루 이상인 비율이 90%에 달했다. 2017년 안전보건공단 근로환경조사에 따르면 아플 때 일한 적 있다고 가장 높은 응답 비율을 보인 산업은 농업, 임업 및 어업으로 24.2%이다. 경마기수의 출석주의 관행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

경마기수의 노동조건과 건강권이 열악한 이유는 경마산업의 무한경쟁 구조 때문이다. 경주 성과인 순위에 따른 상금이 경마산업 안에 있는 노동자들의 주수입원이다. ‘마주-조교사-경마기수 또는 말관리사‘로 구성된 다단계 구조가 결합돼 가장 하위에 있는 경마기수 혹은 말관리사의 수입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순위 경쟁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다. 조교사들도 작전이라고 하는 부당지시를 경마기수 혹은 말관리사에게 내릴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혜진 전국불안정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기본적 생계비를 축소하고 상금 범위를 확대해 경쟁을 확대하고 하위 순위의 경우 퇴출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며 무한 경쟁이 가능해진 이유를 밝혔다.

또한, “마사회가 말관리사·경마기수를 마사회에서 직접고용했지만 (1993년 이후) 개인마주제로 바뀌고 간접고용형태가 만들어졌다”며 “(말관리사와 경마기수를) 특수고용노동자로 만들어 마사회에 구조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마사회는 훈련시간, 경마일정, 상금비율, 기수 징계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도 비판했다. 사실상 경마산업에 전반적 영향력을 미치는 마사회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데, 특수고용관계로 인해 마사회에 법적인 관리감독 책무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경마산업이 성과주위에 매몰된 무한경쟁 시스템을 개선하고, 경마기수들의 노동자성을 인정 받아 마사회 혹은 조교사 협회에 관리감독 책무를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기자회견 말미에 공공운수노조는 ▲비경쟁성 상금인 부과순위상금 신설 ▲건강권 보장 ▲표준 기순계약서 작성 ▲조교사 협회와 기수지부 간 임단협 체결 ▲마사대부 심사 개선 등을 해결책으로 발표했다. 더불어, 오는 14일에는 부산경남경마공원과 교섭을 진행할 계획이다.

11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11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열린 '경마기수 노동건강 실태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