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똥이라도 싸자
[정다솜의 다솜] 똥이라도 싸자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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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똥이라도 싸자."

이번 주 내내 머릿속을 맴돈 말인데 발단은 이렇다. 

지난주 목요일 저녁, 동료기자와 기사 하나를 같이 쓰기로 했다. 어느 법안에 관한 기사였다. 해당 법안을 두고 같은 업계 노동자들이 각각 조직된 두 노동조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두 출입기자가 내용을 같이 정리해보자는 취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와 동료기자는 드러난 갈등에 쉽게 덤벼든 지난주 목요일을 후회했다. 금요일, 주말이 지나 월요일, 화요일 저녁까지 사안을 계속 쫓아가 봤지만 기사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알면 알수록 복잡했다. 속성으로도 소화하기 힘들었다. 해당 산업구조와 노동환경, 텍스트 너머 콘텍스트를 충분히 공부해놓지 않은 탓이었다.

상황은 기자의 성향과 결합돼 악화됐다. 매일 글을 쓰지만 기자는 글쓰기를 무척 두려워한다. 글의 힘을 믿고 그 힘을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지금 적는 문장이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미친다고 상상하면 단어 하나하나 떨며 자판을 짚게 된다. 기사를 송고한 뒤에도 계속 깍아내고 다듬고 싶은 욕망에 안절부절못한다. 그러다 보니 현재 부족한 상태가 실력인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조금 더 완벽할 수 있을 거란 집착으로 일을 느리게 한다.  

시간이 흘러 화요일 저녁 8시, 해당 사안을 붙들고 기자는 망부석처럼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다행히 앞자리엔 함께 기사를 쓰기로 한 동료기자가 앉아 있었다. 마찬가지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그는 "똥이라도 싸야 돼. 내일 더 나을 것 같아? 오늘 똥이라도 싸고 가자"고 단호하게 말했다.

다소 더러운 말이었다. 그래도 그것뿐이었다. '똥이라도 싸자'를 붙잡았다. 속으로 '똥이라도 싸자'를 되뇌며 2시간 뒤 기사를 마감했다. 여전히 아쉬운 지점은 많다. 

가늘게 먹고 가는 똥을 싸고 살면 좋겠다. 그렇지만 계획대로 가늘게만 먹을 수 없는 현실이 문제다. 버겁고 어려운 사건이라도 어떻게든 소화해 기사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니 그 결과물이 똥일지라도 자신의 수준을 확인하고 다음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똥을 안 싸는 것이 이상이겠지만 당분간은 조금 더 '똥이라도 싸자'를 붙들어 보려 한다. 모든 마스터피스는 똥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그 근거다. 지금도 진지하게 자판을 짚고 있지만 독자의 실소가 들리는 듯하다. 실력이 부족한 탓에 소화를 못해 똥글을 써놓고 자기위안을 하겠다는 다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