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손해배상 100억 …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쌍용차 손해배상 100억 …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19 18:03
  • 수정 2019.12.19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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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최종 판결만 남아 … 47억 손배액 지연이자 붙어 ‘100억 원’
국가인권위, “노동3권 행사 위축되지 않도록 심리-판단 필요해”
12월 19일 오전 11시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열린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09년 여름, 저는 힘든 처지에 내몰린 동료와 함께 하기 위해 공장 안에 있었습니다. 당시 공장에서 동료들과 서로를 위로하고 아픔을 함께 견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손해배상가압류는 나누는 감정마저 위험한 것으로 만들었고. 타인의 어려움을 철저히 외면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사람이 되도록 강요했습니다. 악랄하게 인간성을 파괴시켰고. 지금도 저를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2009년 여름, 77일 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점거농성에 함께 했었던 채희국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의 말이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은 한국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해 쌍용차 해고노동자 119명이 순차적으로 복직되면서 상처가 치유되는 듯 했지만 100억 원 대로 불어난 ‘손해배상소송’은 여전히 남아있어 쌍용자동차 노동자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지부장 김득중, 이하 지부)와 국가 손해배상 청구 대응 모임(이하 손배대응모임)은 12월 19일 낮 11시 대법원 앞에서 ‘국가폭력 피해 10년, 쌍용차 노동자 괴롭힘 이제 멈추자’라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손해배상으로 계속되는 쌍용차의 아픔

쌍용자동차는 1999년 대우그룹 파산 이후 기업회생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2004년 쌍용자동차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에 ‘헐값’에 매각됐다. 매각 당시부터 ‘기술 먹튀’에 대한 의심이 끊이질 않았다. 그 의심은 2008년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에 대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기정사실이 됐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쌍용자동차는 2009년 4월 8일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했다. 총인원의 36%에 달하는 노동자 2,646명을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부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평택공장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농성이 시작된 2009년 5월 22일부터 8월 6일까지 77일 간 평택 공장에서 일어난 일은 흡사 전쟁과도 같았다. 공권력이 투입되는 끝에 결국 지부는 구조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후 2018년 7월까지 쌍용차 해고노동자 33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유남영)는 2018년 8월 ‘쌍용자동차 사건’에서 경찰청의 공권력 과잉행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더불어 2018년 9월 14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중재로 복직 대상 해고자 119명을 단계적으로 채용하겠다고 노사가 합의 했다.

그런데 경찰은 과오를 인정했지만 손해배상청구소송은 취하하지 않았다. 2009년 점거농성으로 인해 ▲경찰관 부상 ▲헬기와 중장비 파손 등 손해를 봤다며 경찰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조합원 등에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3년 11월 29일 1심에 이어 2016년 5월 13일 2심까지도 경찰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지부는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이며 손배배상금액은 20%에 달하는 지연이자로 현재 21억 원이 넘어섰다.

경찰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도 금속노조 및 파업참가 조합원 개개인에게 약 100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법원은 여기서도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1월 약 33억 원을 보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2019년 11월 15일 2심에서도 항소 기각을 선고 받았다. 금속노조는 12월 3일 상고를 신청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손해배상금액은 지연이자가 붙어 약 80억 원을 넘어서고 있다. 두 사건을 합쳐 100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금액이 걸려있는 것이다.

12월 19일 기자회견 중에 열린 상징의식. 법의 신 디케를 형상했다. 저울 한쪽에는 100억 원 모형으로 반대편에는 국화꽃과 쌍용자동차 작업복이 옷걸이에 걸려있다. 쌍용자동차 국가폭력 무게를 시각화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해배상 청구는 노동3권 가로막는 일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대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국가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소송으로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이 위축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당시 파업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부당하고 위법한 공권력을 행사했음이 최근 자체진상조사에서 밝혀지는 등 여전히 상처가 아물고 있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경찰이 진압과정 당시 위법-부당한 강제진압을 자행하여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사태를 악화시킨 책임이 있음에도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를 대상으로 생존권을 위협하는 가압류가 수반된 거액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는 행위는 정당성이 상당히 결여됐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송상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총장은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강제 진압 그 이후에 10년 계속되고 있는 소송의 본질은 한마디로 국가폭력이라고 생각한다”면서, “10년 간 1심, 2심 법원은 본질인 국가기관의 폭력에 대해서는 검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민사소송 법리를 적용했다. 대법원은 엄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는 피고인인 노동자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노동자가 과연 가해자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헌법이 규정한 노동3권에 따라 쟁의를 했음에 불구하고 ‘구조조정으로 인한 쟁의’는 불법이라는 이유로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면 이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겠나”면서 “국민들은 쌍용차 문제가 잘 해결됐다고 인식한다. 하지만 국가가 노동자 상대로 대법원까지 가서 다투겠다, 잘못을 묻겠다는 게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인가”라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회견문에서 “내년이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모두 공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100억 원의 무게에 짓눌릴 수 있는 현실 앞에 기뻐할 수조차 없다”면서 “대법원에 강력히 요청한다. 정의로운 판결을 통해 ‘헌법이 무엇보다 우위에 있는 가치임을 경찰과 기업에 분명히 하라. 노동3권을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을 우선하고, 국가의 공권력 남용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다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