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사업장 겨울나기] 일진다이아몬드 서울 농성장의 겨울
[투쟁사업장 겨울나기] 일진다이아몬드 서울 농성장의 겨울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12.20 18:24
  • 수정 2019.12.23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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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파업 179일… 추운 겨울 뒤로 하고 “내년에는 공장으로 돌아가고파”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 앞에는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가 설치한 천막 3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3개의 천막 중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최정섭 조직부장이 천막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기자를 이끈 곳은 본사 건물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세 번째 천막이었다. ‘10년 근속도 최저임금! 일진그룹 주머니는 빵빵!’ 현수막을 뒤로하고 천막으로 들어섰다.

전면파업 179일째, 서울 농성장의 겨울

천막 안에 들어서자 조합원 5명이 기자를 반겼다. 연차는 4년차부터 10년차까지. 모두 30대 젊은 청년들이었다. “우리 공장이 30~40대 젊은 층이 많아요. 연차가 20년도 거뜬한 50대 조합원도 있지만 그분들은 음성공장을 지키고 있어요. 보통 서울에서 농성하는 조합원은 젊고 팔팔한 친구들 위주로 돌아가요.” 최정섭 조직부장의 설명이다.

5명 모두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 부서에서 일했다. 생산된 다이아몬드가 상품으로 적합한지 빛깔과 강도 등을 테스트하는 일이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원래도 사이가 좋았던지라 서울 본사와 음성공장을 오가는 투쟁이 고되지만은 않다. 날이 점점 추워져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할 만한 것 같다”며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지회장 홍재준, 이하 지회)의 전면파업은 올해 무더위가 오기 전 시작했지만 반년 넘게 이어져 어느새 겨울을 맞이했다. 12월 21일 자로 179일째다.

일진다이아몬드 노사는 올해 2월 7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에 들어갔으나, 별다른 진전 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지회는 사측의 불성실한 교섭 태도를 비판하며 지난 6월 26일 무기한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교섭의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일진그룹 본사에 면담과 집중교섭을 요구하며 본사 앞 천막농성에 돌입한 지는 136일째다.

일주일 단위로 적게는 10명, 많게는 20명의 조합원이 돌아가면서 서울 농성장을 지킨다. 두 달에 한 번씩은 서울에 올라가야 하는 로테이션이다. 이들이 서울 농성장을 지키는 동안 나머지 조합원들은 음성공장을 지킨다. 서울에서는 아침 출근길, 오후 점심시간, 저녁 퇴근시간 하루 세 번 선전전을 통해 시민들에게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 있다.

지회는 지난 10월 31일 32차 교섭을 마지막으로 교섭중단을 선언했다. 홍재준 지회장은 더 이상 사측의 교섭해태를 지켜볼 수 없어 내린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회사가 7월에 낸 제시안으로 실무교섭을 통해 어느 정도 의견접근도 했었는데 10월 32차 교섭에서 사측이 협의 내용을 뒤집었어요.” 교섭은 중단됐지만 대화의 통로는 열어두고 있다. 현재 노사는 간담회 형식으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교섭이 아니더라도 대화의 장을 계속 유지하자는 게 간담회 목적이다.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 앞에 설치된 천막과 현수막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의 일진그룹 본사 앞 천막농성은 오늘로 138일을 맞는다. 조합원 10여 명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서울 마포구 일진그룹 본사 앞에 설치된 천막과 현수막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의 일진그룹 본사 앞 천막농성은 오늘로 138일을 맞는다. 조합원 10여 명이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천막을 지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동희 기자 dhlee@laborplus.co.kr

상여금 ‘돌려막기’로 임금은 매년 제자리

공업용 다이아몬드를 생산하는 일진다이아몬드 음성공장에 노조가 만들어진 건 지난 2018년 12월 29일이다. 5년째 오를 생각이 없는 월급에 홍재준 지회장을 비롯한 몇몇 노동자들이 회사에 노조 깃발을 꽂았다.

회사는 상여금을 기본급에 포함하는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무력화시켰다. 2015년 상여금 600% 중 200%를 능률향상수당으로 변경했으며, 이어 2016년 능률향상수당을 기본급에 포함했다. 2018년에는 남은 상여금 400% 중 200%를 기본급으로 변경하기에 이른다. 상여금으로 최저임금 인상 금액을 ‘돌려막기’하는 방법으로 인해 일진다이아몬드 노동자들의 임금은 2015년 이후 동결 상태를 유지했다.

김진환 씨(38)는 음성공장에서 10년을 일했다. 주변에서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면 일진다이아몬드에서 일한다고 당당히 말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쌓여가는 연차에 비해 월급은 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 일에 대한 애착도 있었죠. 근데 연차가 쌓여도 매년 똑같은 월급에… 주변에서는 그러죠. ‘너 이제 좀 벌겠다’라고. 어디 가서 말을 못 하는 거예요. 내 월급이 5년 전 그대로라는 걸.” 입사 4년차 홍대한 씨(31)도 옆에서 말을 거들었다. “친구들이 너는 맨날 잔업하냐, 맨날 특근하냐, 돈 많이 벌겠다 하는데 막상 월급 받아보면 그렇지 않은 거죠.”

“가입할게요” “저도 할게요” 조합원들은 노조 가입에 망설임이 없었다. 지회는 2019년 1월 7일 노동조합 설립 보고대회 3일 전부터 조합원을 모집했다. 조심스러운 작업이었지만 모집 3일 만에 200명이 넘는 가입자가 몰렸다.

노동조합 새내기들의 어색했던 팔뚝질도 이제는 익숙해졌다. 유제열 씨(31)는 “노조는 텔레비전에서만 봤었다”고 말했다. “노조를 가입할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노조를 하게 됐잖아요. 그때는 왜 사람들이 노조에 가입해서 싸우는지 몰랐죠. 근데 겪어보니 사람들이 왜 노조에 가입하고 힘들게 노조를 하고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노조가 이런 거구나, 몸으로 겪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어요. 이제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 사람들은 우리 마음을 몰라줄까?”

전면파업에 들어간 이후 주변 사람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도대체 언제 끝나냐’라는 걱정이다. 김진환 씨는 공장 밖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몸은 힘들지만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는 끝까지 하라고 해요. 대신 어머니가 걱정이 좀 많으시죠. 날이 추워지니까.” 박종운 씨(32)도 아내의 응원을 받고 힘을 내고 있다. “얼마 전 아내가 투쟁하는 곳까지 와서 발언도 해줬어요. 압박 없이 마음 편하게 파업에 임할 수 있어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요. 아버지도 일진그룹이 만만치 않은 자본이니까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힘을 주셨고요.”

“2020년, 웃으며 현장으로 돌아가고파”

조합원들은 ‘임단협 체결’을 2020년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교섭이 지지부진했던 올해와는 정반대의 일만 생겼으면 하는 게 이들의 소망이다. 송승현 씨(31)는 “올해는 노조에 가입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의 한해였다.(웃음) 처음으로 팔뚝질도 해보고 단결이 중요하다는 걸 많이 느꼈는데, 내년에는 지금의 조직력이 쭉 이어져 단협이 빨리 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홍대한 씨 역시 “집에서 가족들 걱정이 크니까 얼른 덜어드리고 싶다”며 임단협 체결을 소망했다.

179일째 전면파업을 이어가고 있지만 누구보다 공장으로 돌아가길 희망하는 건 조합원들이었다. 홍재준 지회장은 지난 1년간 함께 부딪히며 싸워온 조합원들에게 “지금의 고난의 시간을 혼자가 아닌 동지들과 함께했기에 그 무게도 아픔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줄어들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계획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동지들과 함께 해야죠”라는 웃음기 어린 답변이 돌아왔다. 지회는 조합원 모두가 함께 보낼 수 있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는 조합원 내부 토론을 거쳐 결정된 내용이다. 매주 돌아가면서 맡는 천막농성으로 크리스마스에 쉬지 못하는 조합원들이 생기니 차라리 다 같이 보낼 수 있는 연말을 계획하자는 의견이 모였다. 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의 겨울나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