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정하나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정하나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2.21 19:02
  • 수정 2019.12.23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 #적극적고용개선조치제도
정하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 정하나 활동가
정하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 ⓒ 정하나 활동가

벌써 연말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번 주, <참여와혁신>이 주목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이 주의 인물 ‘14호’ 언박싱, 함께 열어볼까요?

지난 18일, 민주노총에서는 ‘성차별 고용관행, 개선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연구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시행 중인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AA, Affirmative Action)’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결국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채용성차별의 사례가 계속 나타난다는 것인데요, 이날 토론회에서 지정토론자로 참여한 정하나 한국여성노동자회 활동가의 얘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정하나 활동가는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먼저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먼저 한국여성노동자회는 1987년에 창립한 성평등 노동가치 실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이 불꽃처럼 일어나던 시기에 여성노동자의 요구와 목소리를 가지고 활동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촉구해야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채용성차별 철폐 공동행동은 노동 시장 진입의 첫 단계인 채용 상에 성차별을 철폐하고자 하는 청년‧노동‧여성 사회단체 및 정당의 연대체로 지난 2018년 금융권 채용성차별 건에 대한 공동대응을 시작하며 발족했습니다. 채용성차별이 관행이 아니라 여성의 시민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대사회적으로 인식시키고 변화를 견인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활동하면서 들었던 채용성차별 사례는 어떤 것이 있나요?

저희가 온라인으로 제보를 받고 있어요. 가장 많은 사례가 여성지원자에게 결혼 여부나 계획, 출산 계획, 남자친구 여부 등을 묻는 것인데 이를 저희는 ‘결남출’ 질문이라고 부릅니다. 사실 결혼, 연애, 출산, 육아 모두 혼자하는 게 아니라 여남이 같이 하는 건데 여성지원자에게만 묻는 거죠. 이게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을 돌봄전담자로 보는 시각이 만연하다는 의미인 거죠.

저희가 개별 면담과정에서 들었던 사례 중에는 반지를 끼고 있으면 너무 결남출 질문을 받으니까,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빼고 들어간 사례도 있었어요. 또 40대인 여성지원자에 “나이가 40대인데 결혼 안 하셨나봐요?”라는 질문을 면접에서 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 지원자는 이혼한 상황이었는데, 사실을 말하니까 “이혼한 여자는 성격에 문제가 있다던데, 같이 일하기 어렵겠네요”라고 면접관이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최근에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여성지원자들에게만 “이 업무는 여성이 하기 힘든 업무인데, 시간을 조금 더 줄 테니까 여성임에도 이 업무를 잘 할 수 있는지 생각해서 얘기해보라”고 했다는 사례도 온라인을 통해 제보 받았죠.

그럼 왜 채용성차별 관행은 사라지지 않을까요?

채용성차별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고 관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채용성차별이 근절되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은행권에서 채용성차별 문제가 대두됐을 때 저희가 단계별 합격자 성비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일단 지원자가 합격, 불합격한 이유를 공개하고 단계별 합격자 성비를 공개해야 채용 과정 중에 발생하는 성차별을 예방하기 위해서 요구했던 것이에요.

근데 저희의 요구에 대해 김영주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이 단계별 합격자 성비 공개나 채용성차별 전수조사 등은 은행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채용성차별이라는 범죄를 희석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은 어차피 곧 그만둘 거라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여성을 덜 뽑는 건 당연한 것 아냐?’라는 인식이 관행으로 여겨지면서 근절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죠.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론회에서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했던 얘기인데, 한국에서 고용 상 성차별을 규율하는 법은 남녀고용평등법이 유일해요. 이 법 안에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가 포함된 건데, 이 제도 밖에 없는 것 같다고 고용노동부 관계자도 말을 하더라고요.

사실 채용성차별이 심각하고 어느 하나의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하는 건데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는 사업자를 규율하고 벌을 주고, 개선하게 하는 적극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는 제도 자체가 아니에요. 이 제도는 그냥 여성의 고용율과 관리자 비율을 보여주는 제도인 거예요.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권고하는 거지 강제력은 없어요. 공시제도인 거죠.

여기에만 기대고 있다는 게 통탄할 일이고 토론회에서도 남녀고용평등법 안에서 채용성차별 개선을 위해 강력한 처벌과 시정, 개선을 불러올 수 있는 강력한 제도가 큰 축으로 있고 그것을 보완해줄 수 있는 제도로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죠.

또 적극적 고용개선조치 제도가 지금은 남녀 고용비율, 관리자 비율만 보여주게 돼있는데, 여성이 낮은 직급이나 직률, 혹은 비정규직 등으로 들어가고 있는 현황이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할 수 있어요. 최소한 남녀의 고용형태만이라도 공시에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노동계와 노동조합은 채용성차별 철폐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채용성차별에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것은 다 개별적이고 미조직된 개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조직된 노동자의 힘, 시민의 힘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노동조합은 채용단계에서의 성차별이 나중에 누적된 결과로 승진 등에 차별을 겪다가 임금을 포함한 근로조건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집단적인 대응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또 성별임금격차의 문제 등 노동 안에서의 성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성평등 노동가치 실현이라는 큰 원칙 속에서 노동조합의 활동이나 노동운동의 대원칙이 정해져서 같이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채용성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예비노동자의 문제지만 모든 문제는 채용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인식 속에서 채용과정에서 문제가 있지 않은지 점검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