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순 지부장,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이 뭘 원하는지 병원장이 알아야 해요”
허경순 지부장,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이 뭘 원하는지 병원장이 알아야 해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24 13:19
  • 수정 2019.12.26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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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비정규직지부 파업 15일차 집단삭발 및 단식 거행
10개 국립대병원 ‘직접고용’ 전환 결정 … 부산대병원은 ‘감감무소식’ 연내 직접고용 촉구

[인터뷰] 허경순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비정규직지부 지부장

허경순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 지부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난 여름, 부산대병원의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정재범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 지부장과 손상량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 시설분회 분회장이었다. 단식 15일 차인 7월 11일 손상량 분회장은 저혈당 증세로 단식을 멈췄고, 정재범 지부장은 홀로 15일을 더 버텼다.

이들은 단식으로 부산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의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정규직 전환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두 계절이 지난 올 겨울 부산대병원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또 다시 파업과 집단 삭발 및 단식투쟁에 나선 배경이다.

보건의료노조는 파업 15일 차인 12월 24일 낮 10시 부산대병원 로비에서 ‘부산대병원 비정규직 무기한 집단단식 돌입 및 집단삭발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보건의료노조는 “교육부가 나서서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조속히 정규직 전환하라는 방침을 수차례 밝히고 국립대병원 발전협의회까지 만들어 발전방안과 지원방안을 약속했다. 서울대병원, 경북대병원 등 10개 국립대병원이 자회사 전환을 배제하고 직접고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도 부산대병원은 2019년 연말이 다 되도록 여전히 직접고용을 거부하며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판했다.

왜 이토록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어려울까. 삭발 및 단식을 하루 앞둔 12월 23일 오후 5시 경, 부산대병원 병원장실 앞 차가운 복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허경순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을 만나 속내를 들어보았다.

12월 24일 오전 10시 부산대병원 로비에서 열린 '부산대병원 비정규직 무기한 집단단식 돌입 및 집단삭발식' 현장. 허경순 부산대병원비정규직지부 지부장(중간)의 머리띠를 조합원이 고쳐메어주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간단한 자기소개와 부산대병원 비정규직지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부산대병원에서 일한 지는 5년이 넘었고요. 2017년 4월 비정규직지부가 결성됐어요. 본원과 양산 합쳐서 비정규직이 500명 정도예요. 그 중에 조합원은 450명 정도고요.

지부장을 맡은 게 쉽지 않은 선택이셨을 텐데 어떻게 마음을 잡으셨나요?

2016년에 노조를 만들려다가 실패한 적이 있어요. 용역업체에서 너무 완강하게 나와서요. 이후 부산대병원 정규직 노조와 함께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투표를 통해 지부장에 당선됐어요. 이번에도 처음엔 용역업체에서 압박이 있었죠. 유언비어도 뿌리고 다니고요. 그래도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밀고 나갔어요. 사람들이 정규직화가 되면 좋다는 걸 차츰차츰 인식하면서 활동하는데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처음에 27명으로 시작했는데 현재는 미화 분회만 해도 100명이 넘었어요.

지부장님께 정규직화는 어떤 의미인가요? 2017년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잘 됐다’, ‘비정규직 없는 직장을 다닐 수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투쟁을 더 해야겠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네요. 말만 던져놓고 정부에서는 행동이 없어요. 우리가 싸우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대할 게 없어요.

부산대병원도 예전에는 비정규직이 없었어요. IMF 이후에 비정규직이 많아졌는데. 정말 형편이 안 좋은 곳만 비정규직을 고용하면 되지 왜 여기까지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기업들도 임금 줄 형편이 되는데도 옆에서 주지 않으면 따라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병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직접고용 해도 되는데요. 우리가 정규직 한다고 해서 정규직 직원 7급 8급처럼 올라간다는 것도 아니잖아요? 별도 직군을 만드니까요.

12월 23일 오후 4시로 약속된 부산대병원장과의 면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원장실 앞에서 보건의료노조 부산대병원지부 조합원들이 부산대병원 원장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부산대병원에서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진통이 큰 것으로 압니다. 자회사 전환을 추진하려고 한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병원에서 어떻게 제시하고 있나요? 그리고 병원의 안에 대해 지부장님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병원은 안이 없어요. 병원은 우리 보고 자꾸 직접고용이 아니면 말도 못 꺼내게 한다고 해요. 그래서 저희가 자회사든 뭐든 안을 제시해보라고 하면 '없다'고 말해요. 방침이 없어요. 어이없는 거죠. 병원장은 지난 여름 정재범 부산대병원지부장(정규직)님이 단식 농성할 때도 단식을 그만 두면 이야기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아무 것도 없어요.

이번에도 병원장이 ‘아프다’, ‘입원할지도 모른다’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어요. 금요일(20일)에는 교수들과 이야기 해보라고 하고요. 사실 교수님들이 이 문제를 결정하고 싸인하지는 않잖아요? 그래도 금요일에 교수들과 간담회하고 주말에는 농성장을 비우고 단체로 영화를 봤어요. 그리고 오늘(23일) 4시에 병원장과 이야기해보는 걸로 약속이 잡았는데 갑자기 또 안 오는 거예요.(* 인터뷰 당시는 오후 5시 반) 병원장으로서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해요.

세간에는 ‘기회의 평등’을 말하면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지부장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청소하는데 무슨 시험이 필요해요? 같은 직군, 같은 월급 달라고 합니까? 그런 건 없다고요. 시설 같은 경우에는 자격증이 필요하니까 우리도 자격증을 따고 있어요. 미화 같은 경우는 자격증 필요 없이 충실히 하면 되잖아요? 물론 거부반응도 있는 거 이해를 해요. 우리가 정규직 정규직 하니 비슷한 수준인 줄 알고 그러는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계신데,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그렇죠. 노는 날인데. 그런데 부산대병원 정규직지부에서 저렇게 힘쓰고 있으니까. 우리도 쉴 수 없죠. 크리스마스도 여기 나와서 지켜야죠.

내일(24일) 삭발식을 앞두고 있어 심경이 복잡할 것 같아요

우리가 머리까지 자르면서 정규직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이걸 한다고 될 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해요. 오기로 버티는 거죠. 없는 사람, 약한 사람이 뭘 원하는지 병원장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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