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용산참사와 경향신문 사건
[손광모의 노동일기] 용산참사와 경향신문 사건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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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아마 ‘우리동네’ 친구들에게 용산 참사는 ‘오래된 미래’일 것이다. 올해 1월의 일이다. 지방 일간지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 나는 오래전부터 재개발 예정지로 소문났던 우리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우리에게 용산참사는 분명 10년 전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휩쓴 ‘재개발’ 광풍은 2009년 용산 4구역에 그치지 않고 지방 구석구석까지 불어 닥쳤다. 단지 지방과 서울이 20년 격차가 나는 만큼 시간이 더디게 가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동네에도 지난 몇 십 년간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재개발 판’의 이전투구가 꾸준하고 격렬하게 벌어져 왔음을 나와 친구는 목격했다. 우리동네 친구들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용산참사를 우리에게 닥칠 예언과 같은 미래로 여겼던 것 같다.

친구는 올해 초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아 이곳저곳을 취재했다. 용산을 때렸던 바람이 늦었지만 확실하게 지방 재개발 현장에도 찾아왔다. 사람 잃은 집을 찾아가 집 잃은 사람을 만났다. 그 곳에서 허물어진 벽 한쪽에 빨간 락카 스프레이로 커다랗게 쓰여 있던 문구를 나 또한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곳은 제2의 용산이 될 것이다.”

하지만 친구의 노력은 제대로 된 기록으로 남지 못했다. 당일 2면 톱으로 나갈 예정이었던 기사는 뒤편으로 밀려났다. 분량도 줄었다. 그날 저녁 우리동네의 오래된 술집에서 친구와 나는 속상함을 나눴다. 진상은 뻔했다. 돈이었다. 특히 지역 언론사들에 건설사의 입김은 셌다. 재개발 광풍을 어떻게든 더 키워보려는 건설사들은 알음알음 언론사들을 광고비로 길들여 왔다. ‘집값 떨어지는’ 용산참사 10주기 소식은 차마 그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인정(人情)상’으로도 받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동네의 오래된 미래가 흔들림 없이 견고한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금 다시 올해 겨울의 일이 기억나게 된 건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경향신문 13일 자 1면과 22면에 게재 될 기사를 내리는 조건으로 한 기업에서 거액의 광고비를 약속했다. 경향신문 사장은 기자와 편집국장에게 동의를 구했다. 편집국장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기자는 사표를 냈다.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가 22일 성명서를 통해 전달한 사실이었다.

미디어오늘의 23일 자 기사는 좀 더 자세한 속내를 알렸다. 기사를 내려달라는 기업의 요청에 경향신문 사장은 “기사 내리려면 기존 금액의 10배를 내라. 기사를 어떻게 내리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답했다. 그러나 기존 금액의 10배 정도는 거대 기업이 지불할 수 있었고, 5억 원이라는 돈은 특히 진보 성향 언론사엔 큰 액수였다. 이틀이 지난 현재까지 경향신문의 내홍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듯 보인다.

그 돈을 받았어야 했는가 아니면 받지 말았어야 했는가. 동료들 사이에서도 의견은 분분했다. 경향신문보다 영세한 우리로서는 5억 원은 실로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그래도 언론사의 장기적인 전망에 따라서 받지 말았어야 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돈 받고 기사가 잘리는 곳에서 어떻게 일을 하겠고, 또 앞으로 언론사의 신뢰도를 어떻게 보장할 건가였다. 반대 입장에서는 열악한 언론사의 재정 문제를 말했다. 분명 잘한 일은 아니지만, 싸잡아 욕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맞고 틀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후자에 가까웠다. 회사가 아닌 기자 개인에게 5억 원이라는 돈을 쥐어줬다면 어떻게 됐을까. 나라면 감히 거절할 수 있을까. 경향신문이 탐욕적으로 애먼 돈을 밝힌 건 아니지 않았나.

재개발이 극에 달하면 두 종류의 사람이 남는다. 한 몫 든든히 챙기는 사람과 그곳을 떠날 수 없는 사람이다. 옛말로 하자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적당한 돈’을 받고 아직 광풍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다시 떠난다. 소시민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회사’인 언론사와 ‘월급쟁이’ 기자도 여기 어디쯤에 속할 것이다.

물론 독야청청하고 올곧은 이는 어느 곳에서든 항상 빛난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고 해서 미워하지는 말자. 김훈 선생이 말하듯 “가난뱅이의 악덕”도 있지 않은가. 아무쪼록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만을 바란다. ‘용산참사’라는 '오래된 미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