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아니, 벌써?
[임동우의 부감쇼트] 아니, 벌써?
  • 임동우 기자
  • 승인 2019.12.27 16:18
  • 수정 2019.12.27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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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벌써? 새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2019년도 얼마 안 남았다. 아침공기는 차가웠고, 명백한 12월이었으며, 푸시킨의 시처럼 삶이 나를 속인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라? 돌아보면 출퇴근길 내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있었고, 주변을 관찰하기보다 손 안에 작은 스크린에 집중했다. 많은 것들이 스쳐지나갔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폰은 잠시 넣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작년 겨울을 떠올렸다.

아마 무궁화호였을 것이다. 나는 철로를 느린 심박으로 달리는 옛 열차를 좋아한다. 창밖으로 앙상한 것들이 지나갔고, 햇살 좋은 날이었다. 히터는 얼굴이 후끈거릴 정도로 작동했다. 포근했고 아늑했다. 그러다 열차가 조치원을 지날 무렵, 두고두고 패배감을 느끼고 싶을 때 꺼내 읽는 시집을 떠올렸다.

<입 속의 검은 잎>이었다. 기형도는 ‘조치원’이라는 시를 썼다. 시는 서울에 올라왔다가 좌절하여 낙향하는 사내를 그린다. 기차 안은 한겨울 히터 고장으로 젖은 기침 소리가 들려오고, 어두운 조명이 깜빡거린다. 열차에서 계란 하나를 꺼내는 사내는 서울이 분노를 가르쳐주는 곳이라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좁은 의자에 앉아 ‘좀 더 편안한 생을 위해 사투리처럼 몸을 뒤척’인다. 그렇게 겨울은 사내가 말하는 서울만큼 인정 없이 춥다.

작년 겨울처럼, 같은 길을 달리면서 다른 열차에 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우리가 집중하길 바란다. 나는 그간 휘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관찰하는 습관을 내팽개쳐뒀다. 집중의 순간 동안 많은 것들이 그 겨울의 앙상한 나무처럼 스쳐지나간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무얼 놓쳤을까, 지나간 것들 속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매일 같은 출퇴근길은 낙향의 길인가, 아니면 여행의 길인가.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연말이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