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산업이 늙어간다
대한민국 산업이 늙어간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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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실업·연금재정 ‘시한폭탄’
노동구조 고령화, 지역별 격차 심화


 

 

산업현장에 패인 주름살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지난 7월 통계청이 발표한 ‘연령별 경제활동인구’ 자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2358만5천명 중 40대가 27.0%를 차지, 30대의 27.2%에 육박했다. 특히 취업자 수로만 보면 40대가 624만9천명에 달해 624만6천명에 그친 30대를 추월했다.

통계청이 연령별 경제활동인구를 처음으로 집계한 것은 84년 7월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지금 경제활동 구조는 피라미드형에서 종(鐘)형으로 구성 자체가 바뀌었다.

지난 2000년에 이미 고령화사회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비중 7%)로 진입한 우리 사회는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19년 고령사회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비중 14%)로 접어들게 된다.

 

30년 안에 연기금 고갈 우려
2001년 IMF는 <한국경제의 주요이슈>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빠른 고령화로 연금수급자 수가 늘어나면서 앞으로 30년 안에 재정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사회보건연구원 최병호 사회보장실장은 “국민연금 보험료와 연금지급액을 현 상태로 유지할 경우 2044년 경이면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OECD는 2000년 한국경제보고서에서 이 고갈시점을 2039년으로 예측했다. 연금의 불안한 미래를 예고하는 보고서는 이들 말고도 부지기수다. 한국개발연구원은 공무원연금의 적자가 갈수록 불어나 2030년 경이면 적자 규모가 207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연금을 부담해야 하는 세대와 수급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유럽 각국에서 사회불안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

고 있다. 2003년 7월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유럽을 극도의 혼란에 빠뜨린 일련의 파업사태의 중심에는 모두 연금과 퇴직문제가 있었다.

 

주력산업ㆍ대기업 고령화 ‘속도위반’
고령화에 따른 연금 및 의료보험 재정파탄 문제는 우리사회에서도 심각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의 진전이 가져올 노동구조의 변화에 대한 논의는 아직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고령화 사회가 가져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생산과 노동구조의 변화에 있다.
 

 

고령화의 한 원인인 출산기피 현상은 생산가능 인구(15세~64세)를 줄인다. 대한상공회의소는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유지되면 2050년에는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 인구가 55% 내외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0년에는 노인인구 1명을 생산가능인구 10명이 부양했는데 2025년에는 4명이, 2050년에는 2명이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활동 참가율의 저하는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노동가능 인구 자체의 고령화다. 상의는 생산가능인구 중에서도 고령노동자가 급속히 증가해 2050년이 되면 50~64세 노동자의 비중이 37.6%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 철강, 조선, 화학 등 주력제조업과 대기업의 고령화는 진전 속도와 규모가 매우 빠르다. 이들 기업은 1990년대 들어 직원들의 평균 나이가 30대 후반을 넘어선 뒤 외환위기 이후 신규인력 충원 부족으로 고령화가 더 빨라지는 추세다.


 

늙어가는 속도가 가장 빠른 섬유산업은 1994년에 비해 평균 연령이 4.7세나 증가했다. 수출 주력산업으로 우리 경제의 효자 역할을 하고 있는 자동차와 조선업종도 1994년에서 2000년 사이 취업자의 평균 연령대가 2~2.8세 가량 증가했다.
전통제조업에서 40~45세 사이의 노동자는 가장 숙련된 기술을 갖고 있는 고급 기술자들로 현재로서는 생산성 저하를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의 숙련된 기술을 전수할 젊은 인력이 없고,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증가하는 연공급체계 때문에 머지않아 임금이 생산성을 추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동아대학교 경제학부 강신준 교수는 “일부 업종에서는 이미 생산성과 임금간의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며 “오일쇼크까지 예고되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생산성과 임금의 괴리를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에 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립 및 기계 조작직 더 빨리 늙어
고령화는 산업별 노동구조뿐 아니라 직종별 노동구조도 변화시킨다. 노동부의 임금구조 기본통계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들어 기계조작 및 조립업의 취업자 평균연령이 처음으로 30대 중반을 넘어섰다. 반면 사무직 및 판매직은 30대 초반에 머물러 이들 직종간 연령차가 5.9~6.7세로 벌어졌다.


사무직의 경우 2003년 현재 청년층(15~29세)이 전체 취업자의 38%, 30대 취업자가 36%를 차지하고 있어 40세 이하의 취업자 비중이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기계조작 및 조립직은 청년층(17.3%)과 30대 취업자(29.6%)를 합쳐도 전체 취업자의 절반에 못 미친다.


LG경제연구원 양희승 박사는 “젊은층의 제조업 기피 및 IT·서비스업 선호 현상으로 인해 당분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기계조작 및 조립은 전통제조업의 핵심 경쟁력이어서 이들의 노동력 소실을 최소화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별 고령화 대책 미흡
지역간 고령화 격차도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현재 대부분 지방의 고령화 지수는 국민 전체의 고령화 지수를 훨씬 넘어선다. 가장 ‘빨리 늙는’ 지역은 전남이다. 2003년 말 전남의 고령화 지수는 14.6%로 전국 평균의 두 배에 이르렀다. 65세 이상 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시·군도 7개나 된다. 전국적으로 고령화 지수가 가장 높은 도시는 광주, 부산, 대구 순이다. 지역별 노동구조의 차이는 결국 지역별 경제성장과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경남 김해상공회의소의 한 관계자는 “경기침체에 따른 고용부진 심화로 김해지역의 성장을 견인하는 기계, 금속, 조선기자재, 화학 등 주력 제조업의 고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고령화는 원활한 기술이전과 지속적인 기술개발 등의 저해로 김해지역 경제성장 잠재력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젊은 인력들이 IT 및 첨단산업으로의 취업기회를 잡기 위해 서울·경기권의 대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지방의 제조업체들은 심각한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충남 금산에서 농공업용 필름을 생산하고 있는 경동화학(주) 이상우 대표는 “우리 같은 지방의 전통제조업은 인력자원이 힘인데 앞날이 캄캄하다”면서 지방의 인력자원 육성 없이는 지역발전도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지역균형 발전을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지역의 제조업체들은 경쟁력 향상은 커녕 경쟁력 유지도 어려운 실정이다.

 

고령화, 이젠  발등의 불
고령화가 노동시장 구조와 고령노동자들에게 미칠 파급에 대한 경고가 이어지면서 노동계도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은 ‘노동시장의 고령화와 노동운동의 대응’이라는 주제로 주력 제조업 중심의 실태 조사와 대안 마련을 위한 연구사업에 착수했다. 이 연구를 책임지고 있는 서윤정 연구원은 “고령화의 매를 가장 먼저 맞는 것이 노동자들인데도 노동계에서는 실태조사조차 없는 상태”라며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령화에 따른 노동인구의 노령화는 이제 ‘강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고령화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정치·사회·문화적 대변동의 중심에는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변동에 따른 ‘경제의 빅뱅’이 자리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양희승 박사는 “선진국이 이미 경험하고 있듯 노동인력의 고령화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전제하고 “노동구조 고령화 속도를 조절하기 위한 대응도 중요하지만 중장년 및 고령층 노동인력의 직무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령화는 세계적으로 막을 수 없는 대세지만 ‘어떻게 늙어갈 것이냐’는 우리의 선택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