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금융권 비정규직, 처우개선 가능할까?
제2금융권 비정규직, 처우개선 가능할까?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0.01.07 08:02
  • 수정 2020.01.07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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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금융우분투재단, 6개월간 비정규직 조사 진행
비정규직 문제 해결,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리포트] 제2금융권 비정규직 실태조사

노동계에서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비정규직 감축 및 처우개선’과 ‘노동존중사회’를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 실제 취임 첫 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에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해 노동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공공부문에서 시작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통해 민간영역까지 확대하고자 했지만 아직 민간영역에서 성공적인 비정규직 제로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사무금융우분투재단(이사장 신필균)은 비정규직 격차 해소를 위해 2019년 초부터 제2금융권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기획했다. 7월 들어서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위원장 김현정, 이하 사무금융노조)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원장 이창곤)이 공동으로 사무금융권 전반에 걸친 실태조사를 진행해 결과를 발표했다.


최초로 진행한 제2금융권 망라하는 비정규직 조사

‘제2금융권 비정규직 노동자 실태조사’ 연구책임자였던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은 “제2금융권에 대해 입체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전에는 사업장별로 비정규직이 몇 명 정도인지 조사한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조사는 공공금융기관, 카드사, 저축은행·캐피탈·신용정보, 생명보험·손해보험, 증권, 협회·조합, 지역본부 등 제2금융권 대부분의 업종을 망라해 진행됐다. 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용형태, 업종, 종사 직군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또는 FGI)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전에 진행한 조사와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사무금융노조 간부들과의 심층인터뷰를 통해 비정규직 이슈를 바라보는 비정규직 당사자와 노조 간부들의 인식 차이도 살펴볼 수 있었다. 실태조사 결과를 기초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모든 업종을 망라했기에 설문조사를 구성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 한귀영 센터장은 “이전의 조사는 콜센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경우가 많아 설문조사가 단순한 편이었다면 이번 조사는 업무형태와 고용형태가 굉장히 다양했다”며 “제2금융권의 보편적인 비정규직 현상을 다루려고 하다 보니 개별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을 최대한 자제하고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340명이 설문에 응했고, 이 중 285명이 최종 문항까지 답변을 완료했다. 노조 간부는 92명이 설문에 응했고, 이중 87명이 최종 문항까지 답변을 완료했다.

심층인터뷰 응답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24명, 노조 간부 22명으로 총 46명이다. 한귀영 센터장은 “개별적으로 1명, 많으면 3명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심층인터뷰의 경우 최소 2시간 정도 진행한다”며 “전체 인터뷰 진행자가 50명에 가까운 것을 생각해보면 굉장히 품이 많이 들어간 조사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자회사 노동자도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조사대상에 포함했다. 사무금융권 특성상 업무 혹은 직군을 분리(콜센터, IT, 추심 등)해 자회사를 설립해 위탁하거나 용역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회사나 무기계약직으로 고용이 안정돼 있다 하더라도 임금이나 처우 등에서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무금융노조는 96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비정규직 현황을 취합했고, 이 밖에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300인 이상 사업장의 ‘고용형태 공시정보’와 금융감독원의 금융통계,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금융감독원 전자시스템을 통해 부족한 자료를 보완했다. 회사의 공개 의지나 제도적 방침이 없으면 무기계약직 수를 확보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은 사무금융노조 소속 제2금융권 사업장의 고용형태별 인원 현황을 살펴보면 ▲정규직 37.49% ▲기간제 계약직 5.34% ▲특수고용 40.18% ▲파견, 용역 및 도급 11.94% ▲자회사 2.71% ▲무기계약직 2.35% 등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안고 있는 문제
고용, 임금, 처우

제2금융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고용 ▲임금 ▲업무 만족도 ▲복지 및 처우, 차별 ▲조직문화 ▲안전망 ▲노동조합 활동 ▲정부정책 등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임금 ▲복지 및 처우, 차별 부분에서 문제를 겪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많았다. 조사결과를 살펴보면 ‘평소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라는 문항에 69.8%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35.4% ▲다소 그런 편이다 34.4%)고 응답했다. 심층인터뷰에서도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았다.

캐피털사에서 기간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30대 남성은 “그 기대(정규직 전환)를 하고 여태까지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것 같다”며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회사가 사정에 따라 어느 해는 되고, 어느 해는 되지 않으니까 기대가 많이 줄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조 간부 중 한 명은 “정부나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공공금융기관의 모든 자회사는 100% 수의계약을 하는데 매년 11월 모회사의 도급 계약 갱신 과정에서 경쟁 입찰 방식으로 가게 되면 자회사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고 자회사의 특성을 지적하며 고용안정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했다. 연구에 함께 참여한 최재혁 사무금융노조 정책부장은 “비정규직들 같은 경우는 임금 부분에 대해서 오랜 기간 상승한 경험이 없다 보니 자포자기한 경우가 많다”면서도 “2년마다 직장을 구해야 하는 환경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임금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업무량과 비교해 급여 수준은 적정하다’라는 질문에 73.7%가 그렇지 않다(▲별로 그렇지 않다 56.5% ▲전혀 그렇지 않다 17.2%)고 응답했다. 심층인터뷰에서도 업무량보다 임금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이어졌다. 보험회사 콜센터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여성은 “최저시급으로만 따지면 기본급여가 170만 원 정도가 돼야 하는데 기본급에 영업 수당을 포함하니 기본급여가 올라간다”며 “통상임금 소송을 하려고 하면 그 기간이 7~8년 정도 걸리니 회사에서는 버티면 그만이다”고 밝혔다.

또 다른 보험회사에서 민원처리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 30대 남성은 “기본급이 처음에 180만 원에 성과급 50만 원으로 시작했는데 6년간 급여가 비슷해서 240만~260만 원 정도”라며 “성과급 테이블이 정해져 있는데 들어오지 않는 건수를 최대 인센티브 구간으로 설정해놔 결국 회사는 안 주겠다는 것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재혁 정책부장은 “계약체결에 따른 실적 경우도 규모는 고려하지 않고 건수로만 계산한다”며 “예를 들어 1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해도 1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사람과 똑같이 건수로만 계산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기업에서는 계약직군들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고용안정을 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고용이 안정됐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벽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귀영 센터장은 “제2금융권의 경우 자회사들이 기존의 직군을 별도로 분리해 설립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독립된 매출구조와 회사 구조로 돼 있기보다는 모회사에 종속된 경우가 많다”며 “모회사가 자회사에 업무를 주지 않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회사 정규직들도 고용불안을 호소하게 되고, 임금 처우에 대한 불만과 차별을 느낀다는 응답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처우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질문에 66.7%가 그렇다(▲매우 그렇다 26.0% ▲다소 그런 편이다 40.7%)고 응답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느끼는 차별은 크게 ▲자원 활용에서의 차별 ▲금전적 차별 ▲기회의 차별로 나뉘었다.

공공금융기관 자회사 노조 간부는 “모회사에 일하는 노동자 절반이 서울대 나오고 대단한 사람들인 것을 알기에 같은 (수준의) 임금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면서도 “같은 사무실에 일하면서 정규직들 책상, 의자, 책장은 다 바꿔주는데 자회사 직원들은 의자 다리가 나가서 기대앉지를 못해도 몇 개월째 바꿔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공공금융기관 장애인 사무보조 30대 여성은 “정규직은 내부 인트라넷을 이용할 수 있는데 우리는 이용할 수도 없고 아이디조차 주지 않는다”며 “사무보조지만 사무 관련 문서를 보지 못하게 막아놓아 업무 수행할 때 두세 번 다른 경로를 거쳐야 해 불편하다”고 밝혔다.

사무금융노조 소속 사업장 노동조합 간부를 대상으로 비정규직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지 물어본 결과 관심이 있다는 응답이 83.9%(▲매우 관심이 있다 35.6% ▲비교적 관심이 있다 48.3%)로 매우 높게 나왔다. 이 같은 결과에 김성희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교수는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지지가 이렇게 높게 나온 적은 없었는데 관심이 있음이 확인됐으니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실태 파악을 계기로 비정규직 당사자의 주체화가 필요하고, 정규직 노조가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노조 간부들의 관심도는 매우 높으나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실행력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관련 활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49.4%가 없거나 모르겠다고 답했다. 실제 이뤄지고 있는 활동으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26.4%)이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조 간부들이 비정규직 이슈에 관심은 있는데 이해가 매우 낮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결과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한귀영 센터장도 “기업별 노조의 경우 임기가 2~3년으로 한정돼 있고, 재선을 위해서는 정규직 조합원들의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다”며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큰 과제에 신경 쓸 여력이 현실적으로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산별노조의 힘 필요

처음으로 진행된 제2금융권 비정규직 전반을 다루는 조사였지만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설문조사에 응답한 인원은 280여 명이었다. 한귀영 센터장은 “노동조합을 통해 여러 차례 조사해 온 바 있는데 노조가 움직이면 조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었다”면서도 “이번 조사는 4개월 가까이 걸렸음에도 응답자 수가 적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노동조합과 함께 조사를 진행했음에도 참여자가 적었던 이유에 대해 “정규직 노조에서 비정규직과의 소통과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비정규직 조사가 매우 힘들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같은 회사에 있으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같은 노동자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이번 조사를 통해 그동안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들과의 교류가 부족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무금융노조는 지난해 1월 진행한 2019년 대의원대회에서 임금인상 요구(안) 기준으로 경제성장률 2.7%와 물가상승률 1.7%를 제시하며 사업장 내 비정규직(직접, 간접, 파견, 도급 등)의 정규직화와 외주화된 사업 부문을 다시 모회사로 편입할 경우 임금 동결 방침을 세운 바 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이슈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서 상대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드러났다.

한귀영 센터장은 “현재 구조하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이 양보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돼 을과 을의 각축장으로 가버렸다”며 “그라운드를 좀 더 넓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더라도 정규직들이 손해 보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정감을 줘야 정규직들도 찬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 문제를 각 사업장 노조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금숙 사무금융노조 사무처장은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 문제를 크게 내세우기 싫어하고 괴롭다고 한다”며 “사업장 단위노조가 할 수 없는 것을 산별노조와 민주노총이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금숙 사무처장은 이어 제2금융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직접고용과 같은 장기적인 과제보다 휴게 공간 확보와 유급휴일을 준수하는 등 큰 재원이 들지 않지만,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목표에 집중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낮은 수위의 실천, 작은 성과를 통해 노조의 의지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번 조사를 토대로 사무금융노조도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한 실현 가능한 행동에 돌입할 예정이다. 최재혁 정책부장은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재원이 적게 들고 조합원들 간 논쟁의 여지가 크지 않은 실현가능한 사업을 임단협 요구안에 넣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생각”이라며 “우분투재단은 ‘모여라, 콜센터노동자’라는 지원 사업을 직장갑질119와 함께 진행해보려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