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의 지속가능성, 단체는 고민하고 있나요?
활동가의 지속가능성, 단체는 고민하고 있나요?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08 00:03
  • 수정 2020.01.08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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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는 노동자? 주저하는 활동가들 … ‘사용자’ 지칭 어려운 구조
‘개인적 감수’ 택할 수밖에 없는 활동가 … 조직 차원 접근 필요해

[리포트] 활동가의 권리는 누가 지켜주나요?

‘민한홍 열사’를 기억하는가? 한국노총 화학노련에서 조사교육부장으로 일하던 민한홍 열사는 2005년 10월 22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민한홍 열사는 조사교육부장뿐만 아니라 다른 직함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노동조합 내 노동조합’인 경인지역 화학일반노조의 부위원장이었다.

경인지역 화학일반노조는 2005년 5월 설립됐다. 민한홍 열사는 부위원장을 맡으며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9월 15일 해고를 당했다. 9월 29일 징계 재심에서도 끝내 결과가 뒤집히지 않았다. 민한홍 열사는 한국노총 앞에서 보름 동안 1인 시위로 해고의 부당함을 알렸지만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일주일 후 민한홍 열사는 자택에서 비극적 선택을 하게 된다.

민한홍 열사가 1인 시위를 그만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일주일 동안 자택에서 두문불출했다고 한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기에 민한홍 열사가 삶과 죽음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막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질문을 던져 볼 수는 있다. 활동가에게 활동을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무게인가? 어떤 순간에 활동가는 목숨과도 같은 활동을 포기할 생각을 하는가? 활동가에게 활동과 활동 이외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 민한홍 열사의 비극 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비단 ‘과거의 역사’로 남길 수는 없다. 민한홍 열사가 가졌던 ‘활동과 삶’ 사이의 고민은 현재의 활동가들에게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이 겪은 고충을 익명의 제보를 통해 공유하는 페이스북 채널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게재된 게시물. ‘희생정신도 한계’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띤다. ⓒ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활동가들이 겪은 고충을 익명의 제보를 통해 공유하는 페이스북 채널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에 게재된 게시물. ‘희생정신도 한계’라는 기사 제목이 눈에 띤다. ⓒ 시민사회활동가 대나무숲

활동가가 그냥 임금 받는 노동자는 아니지 않나?

민한홍 열사의 죽음 이후 경인지역 화학일반노조 제2대 위원장을 맡은 심재호 화학노련 정책실장은 당시 활동가 노조 결성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 안의 채용 전문직들, 소위 활동가들이 자기 권리를 자기가 찾는다는 의미도 좋긴 했죠. 하지만 노동조합을 지도하고 지원하는 상급단체에 있으면서 나 자신이 조합원이 아닌 게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임준택 선배(1대 위원장)가 제안해서 좋다고 했죠.”

하지만 노조 설립에 대해 세간의 시선은 따가웠다고 심재호 정책실장은 회고했다. 노동조합을 만들어도 되냐는 반응에서부터 표 싸움을 위한 전략이라는 억측까지 다양했다. 경인지역 화학일반노조는 2006년 단체협약까지 맺었지만 민한홍 열사의 죽음 이후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노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노조 내 노조’를 쉽사리 수용할 수 없었던 분위기는 물론, 노동조합 활동가 스스로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지 않았던 경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2005년 10월 11일 부당해고 1인 시위 12일차인 민한홍 열사의 모습. ⓒ 한국노총
2005년 10월 11일 부당해고 1인 시위 12일차인 민한홍 열사의 모습. ⓒ 한국노총

심재호 정책실장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가 활동가냐 아니면 직원이냐 이런 논쟁이 끊임없이 있었다”면서, “활동가라도 적어도 생활이 가능해야 한다. 젊은 활동가를 착취해서 조직이 운영되면 안 된다는 지론이 있었다”고 말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도 활동가 사이에서 생각이 분분하다고 지적했다.

“노조 활동가 사이에서도 오래된 토론 거리 중 하나죠. 활동가로서 정체성이 굉장히 강하기 때문에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보다 전체 사회적 과제, 노동조합이 해야 하는 과제를 우위에 두고 감수해야 한다는 흐름이 있죠. 또한 전체 노조 조직률이 낮다 보니까 활동가의 노동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해도 현실적으로 해결이 어려워요. 그래서 활동가가 그냥 임금을 받으러 온 노동자는 아니라는 측면이 더 강하게 작동하는 거죠.”

실제로 아직 활동가들은 자신을 노동자라고 규정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다. 지난 11월 인권재단 사람에서 발표한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이하 <활동가 조사>)를 보면, 설문에 응답한 71개의 비영리 인권단체 중 43곳(60.6%)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여력이 없거나 상근 활동가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제외하면, 활동가 중심의 단체로서 고용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14곳)하는 이유가 가장 많았다.

활동가는 ‘노동자’… 그럼 ‘사용자’는 누구?

하지만 활동가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와 별개로 활동가는 ‘객관적으로’ 노동자다. 권오성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주관적인 인식이 다르더라도 사용종속관계가 맞다”며, “활동가는 아니지만 종래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았던 사찰에서 보살님이라든가 교회에서 봉사하는 분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쟁송이 없어서 그렇지 법적으로는 노동자가 맞다”고 지적했다.

다만, 소규모로 단체가 운영되는 경우는 법적으로도 모호한 지점이 있다. ‘법적인 사용자’를 특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현실적으로 처우 개선을 요구할 사용자’를 지칭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권오성 교수는 “일단 종속됐다고 보면 노동자가 맞다. 그런데 절대로 일반론을 만들 수 없다. 개별 사례별로 단체의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며, “법적으로 법인으로 등재가 되면 그때는 사용자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2~3명 소규모 단체의 경우 돈 받고 일하는 게 아니라 동지적 결합으로 일하는 것이라면 근로관계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민법상 공동의 사업을 벌이는 조합 형태로 여겨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활동가 조사>에 따르면, 71개 인권단체 중 사단법인은 6곳(8.5%)에 불과하다. 비영리민간단체가 31곳(43.7%), 아무런 법적 등록이 안 된 임의단체가 34곳(47.9%)이다. 또한, 71개 단체 중 14곳(19.7%)에는 상근/비상근 활동가가 없었고, 나머지 57곳 중에서도 1~2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56.3%에 달했다. 10인 이상으로 운영되는 경우는 단 6곳(8.4%)에 불과했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는 “연말에 내년도 활동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마지노선은 당연히 우리의 재정 능력”이라면서, “돈이 없으니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가 최저임금도 받지 않는데 최저임금을 지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최저선을 넘도록 애를 쓰고 있다. 사장이 없기 때문에 재정을 좀 더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을 적극적으로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소규모 단체의 활동가들은 노동자이면서 사장이기도 한 것이다.

더불어 규모가 있어 법인으로 운영되는 단체도 동지적 관계인 ‘활동가 선배’가 ‘사용자’가 되는 어색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조은 참여연대노동조합 초대 위원장은 지난 2017년 참여연대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자 “냉정하게 사측과 노동자로 나눠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사측이 된 선배 활동가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기색이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태운 화섬식품노조 아름다운가게지회 지회장은 지난 11월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에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많은 선배님이 희생과 봉사로 가게를 키워오셨는데 노동조합이 생기면 그 가치가 부정당할까봐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며, “공교롭게 사측이 되는 분들이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활동가들

활동가는 스스로 노동자로 규정하기를 머뭇거린다. 또한, 활동가의 권리를 책임질 ‘누군가’를 특정하기에도 어렵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활동가의 권리보장은 조직 차원에서 논의되기보다는 전적으로 활동가 개인에게 전가되는 경향이 크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감수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조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히 아니”라며, “풀어나가려고 하지만 제기되는 과제나 해야 할 일에 비해서 인력이 부족한 상태여서 개인이 감수하는 문제로 되는 게 현실이다. 지금 민주노총에서는 구속당하거나 육아휴직 등 특별한 경우의 제도적 지원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활동가의 심리적 어려움을 상담하는 하효열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조직 안에 조직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굉장히 많이 차이가 난다”면서, “조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으면서 관계를 잘 풀어내는 활동가가 있으면 조직은 굉장히 잘 굴러간다. 그런데 재수 없게 조정도 잘 못하고 권위주의적인 사람이면 난리 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직 차원의 관리가 아닌 중간 관리자의 개인 역량에 따라 단체의 안정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대개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욕구를 가지고 20~30대 활동가들은 처음 일에 뛰어든다. 하지만 조직의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경로’와 ‘속도’가 다름을 느낀다. 당연한 과정이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상처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응어리진 상태에서 쫓기듯 일하는 경우가 잦다. 더욱이 업무량보다 보상은 턱없이 적다. 하효열 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활동가는 기본적인 보상이 적고 약간 ‘열정페이’를 하죠. 더군다나 시민사회 운동은 굉장히 목적 지향적이고 이성적인 운동이에요. ‘이러이러한 것이 타당하다’고 하면서 자꾸 사람들 감정을 ‘조절’해야 될 어떤 것이 아니라 ‘처리’해야 될 어떤 것으로 생각해요. 활동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이 중요한 만큼 취급을 안 해줘요.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수용하는 게 아니라 처리하라고 계속 압력을 넣는 거죠. 활동가들이 사회적으로 압력을 넣는 단체잖아요? 동료들한테도 똑같이 하는 거죠. 그런데 보상은 적고.”

또한, 활동가들은 미래에 대한 항시적인 불안과 함께 활동한다. 고 박종필 감독 2주기 추모포럼 ‘사회운동 활동가의 건강권을 묻다’에서 나영 성과재생산포럼 활동가는 이렇게 지적했다.

“소위 ‘활동판’ 전체에서 상근활동비를 받는 비율도 높지 않고, 안정적인 후원을 통해 운영되는 단체도 매우 적어요. 그 때문에 장기적인 전망에서 활동하기보다는 매해 성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활동에 치중하게 되죠. 그렇게 5년, 10년이 지나고 30대 중후반을 맞이했을 때, 활동하면서 쌓인 기획 및 실무역량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전망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공허한 마음과 함께 잔뜩 소진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죠. 교육비를 지원받거나 휴직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거나 퇴직금이라도 받는다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 단체는 그럴 역량이나 여유가 없어요. 결국 많은 활동가들이 힘들어도 그대로 버티거나 별다른 지원 없이 혼자서 다른 길을 찾게 됩니다.”

또한, 활동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실제 현실 속에서 괴리감을 토로하기도 한다. 최명선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렇게 말한다.

“사실 그런 게 당연한 법적 권리잖아요? 모든 조직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몇 년 이상 오래 했으면 연수 휴가를 주거나 6개월 정도 안식월제를 하는 조직이 늘어나고는 있어요. 그렇긴 한데 아직 그 정도 수준이죠. 또 지금 현실이 누가 연수 휴가나 육아휴직을 가면, 어떻게 대체할 것이냐. 이게 답이 없는 상태죠. 다른 직장과 마찬가지로 동료의 일을 다 나눠서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최근 몇 년 사이에 단기간이라도 대체 인력을 뽑는 추세지만 완전히 해소되지는 못하죠.”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서

“흔히 말하는 독립운동이다.” 권오성 교수는 활동가들의 열악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하효열 통통톡 운영위원장은 이러한 열악함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월급을 많이 주고 일 적게 시키면 제일 좋다. 그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활동 단체의 태생적 특성상 재정 안정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물론 활동가도 큰돈을 기대하지 않는다. 활동가들은 확실한 보상이 아닌 불확실한 보람을 쫓는 ‘특이한 사람’들이다. 취재에 응한 이들은 활동가들이 열악한 현재 처우와 불안정한 미래를 감수하는 이유로 ‘개인의 신념’을 꼽았다.

권영은 반올림 활동가는 “추상적인 단어로 자긍심이 될 것 같다. 동료와 관계에서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고, 금전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사회적인 인정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성취가 될 수 있다”며, “활동이 지속가능하려면 어떤 부분에서 자긍심이 채워져야 될 것 같다. 최저가 안 되면 문제이지만 최저만 되면 감수할 이들이다. 그런 자존감이나 자긍심이 훼손됐을 때는 많이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 ‘최저’가 지켜지지 않아 활동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활동가 조사>에 따르면 125명의 활동가를 대상으로 5년 후에 인권 활동을 지속하고 싶은지 여부에 대한 질문에 11.2%가 그렇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저 그렇다(12.8%)는 응답을 포함하면 24%가 활동에 회의적인 응답을 보여줬다. 앞서 말한 ▲경제적 어려움 ▲과도한 노동시간 ▲장기적 전망 부재 등이 모두 이유였다.

ⓒ 한국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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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주관적 결단을 통해 운영되는 조직은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활동을 조직차원에서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까? <활동가 조사>는 결론에서 활동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과 네트워크 확대, 조직 문화 점검 필요성 등을 제시했다. 15년 전, 민한홍 열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심재호 화학노련 정책실장은 ‘그래도 가능한 부분’을 조직차원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의감만 만날 들면 어떻게 만날 다니고 있겠어요? 하여튼 한홍이 형 일 있고 많이 개선된 것 같아요. 의사소통이나 노동조건에 있어서요. 아마 사람이 비슷할 거로 생각해요. 직장에 계속 다니는 이유가 하나는 돈을 엄청나게 많이 주든가 아니면 의사소통이 잘 되는 거죠. 적어도 우리 같은 단체는 태생적으로 돈을 많이 주는 구조는 아니에요. 그렇다면 최소한 의견은 잘 반영돼야 해죠. 구조적으로 금전이나 의사소통의 한계는 있을 수가 있어요. 그래도 가능한 부분이 있다는 거죠. 몇 번 이야기 했는데 잘 안 되면 입을 닫게 되잖아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