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화 갈등의 축소판, 분당서울대병원 이야기
정규직화 갈등의 축소판, 분당서울대병원 이야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08 00:02
  • 수정 2020.01.08 0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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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견된 비정규직-정규직 갈등
전면파업 33일… 비정규직 투표로 ‘직접고용’ 선택

비정규직 정규직화 2년, 연대는 어디에?❶ 분당서울대병원 이야기

지난해 12월 10일부터 사흘 동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특별한 투표가 진행됐다. 1,300여 명의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의 ‘직접투표’로 정규직 전환 방식을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는 본관 로비 농성 79일, 33일간 전면파업, 10일간 병원장실 로비 점거 농성을 벌였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었는데도 노사 갈등은 만만치 않았다. 갈등은 노사관계에서뿐만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기존 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 대해 채용 절차의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투표 결과는 나왔다. 1,070 대 157. 투표결과는 직접고용이 자회사를 압도했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분당서울대병원 갈등 과정을 이야기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11월 25일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가 집회를 개최했다. ⓒ 기자 손광모 gmson@laborplus.co.kr
11월 25일 분당서울대병원 로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분당서울대병원분회가 집회를 개최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9년 9월 3일,
서울대병원 ‘직접고용’ 정규직 전환 합의

“우리도 정규직 되는 거야?”

노동조합 카카오톡에 올라온 소식을 보고 복도를 청소하던 완선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가 말하는 정규직은 ‘자회사’라는 군더더기가 붙은 게 아니었다. 완선은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청소를 하지만 소속 회사는 ‘(주)대건기업’이었다. 소위 말하는 용역,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서울대병원은 9월 3일 완선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 840여 명을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하지만 840명 안에는 분당서울대병원 하청 노동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분당서울대병원과 서울대병원은 동일 법인이었지만 운영방식이 ‘태생부터’ 달랐다. 2003년 설립 당시 분당서울대병원은 ‘비정규직 최대 활용’을 기조로 삼았다. 그렇다 보니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비정규직은 많고 다양했다. 24개 직군, 1,500여 명에 달했다. 특히 환자이송, 원무 같은 일은 서울대병원 본원에서는 정규직이 담당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비정규직으로 고용됐다. 이름만 같을 뿐이지 다른 병원처럼 운영됐다.

노동조합도 달랐다. 서울대병원 본원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모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에 소속해 있다. 여태까지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싸워온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는 상급단체 없이 운영됐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민주일반연맹 공공연대노조 소속이었다. 정규직 노조와 접점은 없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의 소식에 완선은 기대를 품지 않을 수 없었다. 4년 전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 처우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종종 청소일 한다는 이유로 하대를 당했다. ‘청소 아줌마’라는 호칭이 한국사회에서 완선의 위치였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일한다’가 아닌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청소한다’고 말해야 하는 완선은 어디까지나 (주)대건기업 직원이었다.

#2019년 11월 6일,
민주일반연맹 분당서울대병원분회 전면 파업 돌입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데. 무임승차는 안 되지.”

다솔은 1년 전 분당서울대병원에 입사했다. 이제 겨우 새내기 티를 벗었다. 다솔도 여느 직원처럼 ‘인턴 시절’을 거쳤다.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정식 채용 이후에도 4개월 동안 인턴을 거친다. 인턴기간 1차 직무평가를 받고 거기서 일정 점수 이상을 넘지 못하면 2개월 더 인턴으로 일해야 한다. 그 후 2차 직무평가를 치르는데 여기서도 일정 점수를 넘지 못하면 정규직에서 ‘탈락’된다. 물론 선배들은 정말 큰 사고를 치지 않는 이상 떨어질 일은 없다고 했지만, 다솔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채용 절차도 만만치 않았다. 서류전형부터 최종면접까지 다섯 단계나 됐다. 서류전형 이후 온라인으로 조직적합성진단과 역량진단을 거쳤다. 다른 기업의 인성검사와 비슷했지만 더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예년 결과를 보면 역량진단과 조직적합성진단에서 탈락자가 번번이 나왔다. 인성검사라는 게 정답은 없지만 그래서 더 어려웠다. 최대한 분당서울대병원이 추구하는 인재상 ‘따뜻한 마음으로 혁신하는 스누비안’(SNUBHIAN, 스누비안은 ‘분당서울대병원人’으로 분당서울대병원의 약자 SNUBH에 IAN을 붙여 만든 말이다)에 맞게끔 답을 해야 했다.

면접은 더 떨렸다. 여타 병원은 채용 시 개인면접을 잘 보지 않는다. 난생처음 면접스터디를 해보기도 했다. 2대1 심층면접을 해내고 나니 다대다 최종면접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솔은 정말 자신이 분당서울대병원의 인재상에 꼭 맞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생각처럼 다솔은 당당히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2019년, 7.75대1의 경쟁률이었다.

누구보다 묵묵히 일하는 다솔이었다. 그럼에도 ‘청소하시는 분’들의 파업은 견디기 힘들었다. 물론 그분들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건은 달랐다. 아무런 절차도 없이 정규직화라니? 다솔이 알아보니 2017년 5월 이후 오신 분들을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몇 개월 일하지도 않고 쉽게 들어와 쉽게 정규직 자리를 꿰차는 격이 아닌가. 험난했던 채용과정의 고생을 생각하면 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지난 9월 서울대병원의 정규직 전환도 다솔은 분명히 다른 경우라고 생각했다. 본원에서 청소하는 분들은 20년 전에 정규직으로 채용됐지만 IMF 때 비정규직으로 바뀐 것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애초에 비정규직으로 뽑았다. 채용 절차 없이 일괄적으로 고용을 승계한 적도 분당서울대병원에서는 없다고 했다. 물론 같은 업무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다솔은 일정한 채용 절차를 밟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직접고용이든 자회사든 말이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2019년 12월 9일,
자회사 대 직접고용 투표 전환 결정

“그래도 자회사는 안 되지.”

은애가 용역업체 사무실이 아닌 병원 로비로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은 지 33일이 지났다. 드디어 농성장을 철거하게 된 것이다. 은애는 서울대병원 전환 이후 몇몇 국립대병원들이 정규직 전환 소식을 알려 파업이 금방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외로 파업이 장기화되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국무총리가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 교육부 관계자가 뻔질나게 분당서울대병원에 들락날락하더니 전환방식을 투표로 결정하기로 한 것이라 은애는 생각했다.

은애의 선택지는 구체적으로 채용 절차와 정년에 차이가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자회사로 갈 경우 채용 절차를 기존 5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하고, 정규직 전환 대상자 모두 고용을 보장한다고 했다. 정년도 만65세에서 3년까지 늘릴 수 있었다.

반면, 직접고용의 경우에는 채용절차가 4단계로 더 까다로웠다.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는 제한 경쟁을 거쳐 고용이 보장되지만, 이후 입사자는 공개채용 방식을 거쳐야 했다. 정년도 분당서울대병원의 정년인 만60세에 맞춰졌다. 청소일은 고령자 친화 직종이라 만65세까지 일할 수 있었지만, 여태까지 용역업체들이 촉탁제를 운영해왔기에 만65세 이상인 분들이 드물지 않았다. 직접고용 돼봐야 기껏 1년이 최대인 사람들이었다.

은애는 2017년 5월 이전 입사자였고 아직 정년까지 많이 남기도 하여 크게 걱정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은애의 소개로 일하게 된 은희를 생각하니 미안함이 앞섰다. 회사에서 구인 광고를 했지만, 지원자가 없어 평소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은희를 알음알음 꼬셨던 것이다. 공개채용 시 6개월 단위로 경력이 인정돼 은희도 가산점을 받을 수 있지만, 탈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이런 걱정을 하다가도 은애는 이게 ‘채용 비리’라는 말을 들으니 허탈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만 채용 비리도 저지를 수 있는 줄 알았던 은애였다. 은애는 채용 비리 때문에 채용 절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무리 생각해도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2019년 12월 13일,
투표 결과, ‘직접고용’

1,070 대 157. 압도적으로 많은 분당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에 표를 던졌다. 객관적으로 자회사와 직접고용을 비교했을 때 자회사 방식의 이점이 컸다. 임금 수준과 복리후생에서는 차이가 없었고 채용 기회에서는 직접고용이 불리했다. 직접고용 시 가산점을 부여하긴 하지만 탈락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은애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가 아닌 직접고용을 택했다.

투표 결과에 대해 웅성웅성 말을 나누던 청소노동자들 사이에 완선도 있었다. 완선은 지난 11월 1일 정규직 전환된 서울대병원 본원 청소노동자의 말이 떠올랐다.

“용역업체라는 훈장을 뗀 거지.”

말을 떠올리며 떨구었던 고개를 다시 드니 저편에 은애가 있었다. 투표를 하기 전 은애와 투표 결과에 대해 걱정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은애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은애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일 청소하던 화장실을 지났다. 화장실에서 또 다른 웅성거림이 들렸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정규직 시켜주면 이거 너무 공정하지 않은 거 아냐? 우리는?”

완선의 가슴이 뛰었다. 빠르게 화장실을 지나쳤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가 묻고 싶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대화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투표 전에도 들었고, 투표 후에도 들었고, 앞으로도 들을 이야기라 더 빨리 화장실을 지나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