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정규직 갈등은 왜 제자리걸음일까
비정규직-정규직 갈등은 왜 제자리걸음일까
  • 박완순 기자,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1.08 00:02
  • 수정 2020.01.08 0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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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로 증폭되는 비정규직-정규직 갈등
간담회와 토론회에도 감정 대립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2년, 연대는 어디에?❷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갈등

분당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과 정규직 전환 대상자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기존 정규직들이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다. 소위 말해 ‘그냥 정규직이 되는 전환’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공정성 시비는 분당서울대병원만의 특별한 사정은 아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미 진행한 공공기관 사업장에서도 보였던 모습이다. 해당 사업장들은 정규직 전환은 완료했지만 공정성 시비의 불씨가 아직 남아있기도 하다. 서울교통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철도공사 등의 사례를 통해 갈등은 어떻게 확산되고 어떻게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알아봤다. 그리고 공정성 문제 너머에 자리한 불평등 문제까지 생각해봤다.

Ⓒ 인천국제공항보안검색대노조
Ⓒ 인천국제공항보안검색대노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현재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비중은 계속 증가했다. 민간부문뿐만 아니라 공공부문까지 비정규직은 늘었다. 비정규직 양산은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발전했다. 저임금은 물론 사회의 차별적 시선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양산된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에 정치권도 동의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2011년, 서울시 산하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2,800여 명을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고 2018년 3월 기준, 1만 명 이상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부 역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2017년 7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올해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 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고용노동부는 2019년 6월 기준, 2년 동안 15만 7,0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2만 8,000명의 정규직 전환이 결정됐다고 밝혔다.

갈등의 시작, ‘공정성 시비’

지난 2016년 5월,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소년이 작업 중 사고로 숨졌다. 이 사고를 계기로 서울시는 ‘지하철 안전업무 분야 직영전환’을 추진했다. 유성권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 쟁의지도국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박원순 시장이 2017년 7월에 ‘무기계약직도 차별이 심하니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고 “당시 2000년대 사번 공채 정규직 사원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1호 사업장’, 인천국제공항 역시 비슷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대통령이 방문하고 6개월이 지난 2017년 11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에 대한 공청회가 진행됐다. 이날 공청회 자리에는 정규직 노조인 한국노총 공공노련 인천국제공항공사노조(위원장 장기호, 이하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각각 손 피켓을 들었다. 정규직 노조는 ‘결과의 평등 NO, 기회의 평등 YES, 무임승차 웬 말이냐 공정사회 공개채용’이라는 문구로 손 피켓을 만들었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신입직원은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촌에서 공부했지만 번번이 좌절했고 이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사에 입사했다”며 “원칙을 배제한 채 대규모 직접고용을 하는 것은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반발했다. 같은 갈등을 겪고 있는 분당서울대병원노조 관계자 역시 “단지 협력업체 소속으로 들어왔다는 이유로 우리 병원 정규직을 쉽게 얻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가짜뉴스로 확산되는 갈등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이 종잡을 수 없이 확대된 이유에는 가짜뉴스가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성행하는 가짜뉴스 중 대표적인 것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으로 취업준비생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유성권 쟁의지도국장은 “(서울교통공사 2000년대 사번 정규직이) 헌법소원을 낼 때 ‘1,200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채용인원이 잠식돼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입사를 못한다’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많이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하지만 “당시에 1만 6,000명에서 정원이 1,200명 더 늘어난 거다. 정원 자체가 1만 7,200명이 됐다”고 그들의 입장이 사실이 아니었음을 전했다.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이른바 ‘T/O’를 잠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서울교통공사노조는 “‘해마다 퇴직자가 있는데, 그 자리에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돼 들어간 것이면 T/O를 잠식한 것이 맞고 잘못된 것이지만 비정규직이 정원 외로 있던 부분은 정원에 합산해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소문을 해명했다.

이외에도 ‘금전적인 손해가 생길 수 있다’는 가짜뉴스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경평성과급이다. 공공기관은 모두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이 지급되는데, 성과급은 한정돼 있고 정원이 늘었으니 이를 나눠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인천국제공항보안검색대노조 관계자는 “지금 공사 정원이 1,600명인데 정규직 전환 절차가 완료되면 3,000명이 더 증가한다. 전환 후 1년이 지나면 경평성과급을 전환된 사람들과 함께 나눠야 해서 공사 정규직이 받는 성과급이 줄어든다고 들었다”며 “공사에서 정규직 전환 과정 논의 중에 경평성과급을 언급했기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소방대노조 관계자 역시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은 아니었다.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노조는 “기존 직원들의 경평성과급이 줄어드는 등의 영향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계정이 나눠져 있다”고 설명했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에서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복리후생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막연한 우려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가짜뉴스는 예측 불가능성에서 비롯한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노조 관계자는 “단순히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거부감이 아니라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인가를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다”며 “현재 제도적으로 정비된 상황도 아니고 정규직에 일방적으로 양보하라고 요구하고 있지 않나. 그런 부분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담회와 토론회도 무용지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일어난 갈등을 겪은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철도노조는 가짜뉴스를 없애고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간담회와 토론회를 열었다.

취지와는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감정 대립만 커졌다. 유성권 쟁의지도국장은 당시 간담회를 아프게 기억하고 있었다. 간담회에서 기존 정규직 중 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도 식당 다니시는데 우리 어머니가 정규직 전환된다면 나는 반대한다”고 이야기했다. 서울교통공사는 후생관(직원 식당) 비정규직 급식조리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 중이었고, 후생관 비정규직 급식조리노동자는 간담회 자리에 참여했다. 감정 섞인 말들이 오가는 간담회 자리를 계속 이어나갈 수 없었다.

기존 정규직들은 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감정적으로까지 반대하는 것일까. 나아가 가짜뉴스 속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기존 정규직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노동조합 간부들은 공통적으로 “간담회에서 가짜뉴스를 하나 둘 풀고 나면 남는 것은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대”라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신이 겪었던 채용절차를 거치지 않는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강정남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철도노조 청년국장은 “정규직이라는 위치를 획득하기 위해 자기가 투자하고 소비한 많은 시간, 감정, 노력에 비하여 무임승차하듯 획득하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정남 청년국장은 “원래 정규직 업무였던 것을 외주화했으니 내부화한다는 의미는 알겠지만, 업무만 가져오면 되지 왜 사람까지 같이 와야 하냐”며 “그 업무에 대해서는 새로 채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업무의 정규직화이지 사람의 정규직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의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경로로 정규직 노동시장에 들어서야 한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자기와 같은 경로를 거치지 않고 정규직이 됐을 때는 본인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 곽재석 서울교통공사노조 청년국장은 기존 정규직으로부터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좋은데, 기존 정규직에게 금전적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교통공사노조 토론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프다고 말씀하셨는데 땅을 돈 주고 사셨습니까? 저희는 돈을 주고 정규직이 됐지요.”

구조적 담론 이야기 지금 해도 될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주장들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정희 의료연대본부장은 “누구나 다 자기 입장에서 공정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나는 죽도록 공부해서 탈락의 고배를 몇 번이나 마시면서 여기에 들어왔는데 누구는 나와 똑같은 위치에 무혈입성했다는 것만 보면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요즘 유행하는 세대론 관점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정남 청년국장도 “모두가 워낙 불평등한 사회에 살다보니 모두가 자기 이익을 중심으로 고민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정규직 전환을 두고 마치 청년 세대의 문제처럼 생각하는데 그건 현상적인 것이고, 선배 세대의 경우는 임금피크제를 두고 자기 이익 중심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비정규직-정규직 갈등의 가장 밑에 자리한 불평등 문제를 서로가 인식해야 서로 간의 반목을 멈출 수 있다. 분노의 대상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 강정남 청년국장은 “현장 조합원들 만나서 불평등을 이야기하기에는 거대담론이라 ‘그래서 내 인생과 무슨 상관인데’라는 반응이 돌아온다”며 당장 풀기 힘든 문제라고 토로했다. 이러한 어려움은 사회구조적 모순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 접근이 막히는 한 다시 갈등에 대한 논의는 절차적 공정성에 매몰될 확률이 높아진다. 논의가 제자리걸음을 치면 감정 대립도 반복된다. 상황은 복잡해진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좀 더 나은 논의를 해보고자 했던 노동조합 간부들 역시 답이 뚜렷하지 않아 답답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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