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문제다!
갈등은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문제다!
  • 박완순 기자,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1.08 00:02
  • 수정 2020.01.10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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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정규직 갈등, 서울대병원 사례로 본 해결의 키
갈등 극복한 힘은 일터 민주주의로

비정규직 정규직화 2년, 연대는 어디에?❸ 갈등 해결, 그리고 일터 민주주의

대한민국 일자리 상황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비정규직 비중이 나온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36.4%가 비정규직이다. 748만여 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도 상당하다. 비정규직 삶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숙제로 오랫동안 존재했다. 해결의 일환으로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각 사업장에서는 복병을 만났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들의 절차적 공정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갈등이 촉발됐다. 정규직 전환이 완료된 사업장은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의 여진이 계속 남아있다. 전환이 진행 중인 사업장은 이미 다른 사업장이 겪은 문제를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진짜 공정일까? 그리고 이 갈등을 발전적으로 풀어나갈 수는 없을까? 물음을 던져봤다.

9월 3일 김진경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지부장과 김연수 서울대병원 병원장이 정규직 전환에 대표 합의했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9월 3일 김진경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지부장과 김연수 서울대병원 병원장이 정규직 전환에 대표 합의했다.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가짜 같은 진짜 정규직화

서울대병원 노사는 지난해 9월 3일 파견·용역 노동자 모두를 직접 고용하는 데 합의했다. 자회사 형태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추진하던 국립대병원 중 자회사 설립안을 철회한 첫 사례였다. 게다가 정규직과 차별 없는 조건까지 갖춘 전환이었다. 노사 합의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들은 기존 정규직 단체협약을 똑같이 적용받고 복리후생도 차별받지 않게 된 것이다. 가짜 같은 진짜 정규직화였다. “차별 없는 정규직화 시행하라!” 허공에 흩어질 수도 있었던 노동조합의 구호는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었을까?

Key1. 비정규직 당사자의 끈질긴 투쟁
서울대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기관 파견·용역노동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정규직 전환 투쟁에 들어갔다. 2018년 10월 전면파업에 돌입한 뒤 원·하청 공동파업도 진행했다. 지난해 5월에는 노사합의 당일까지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돌입했으며 8월 22일부터는 무기한 파업투쟁에 들어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년 동안 끊임없는 파업과 투쟁을 이어갔다.

Key2. 정규직-비정규직 한 목소리
특히 투쟁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이 뭉쳐 하나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병원 정규직-비정규직은 2018년 9월 원·하청 공통파업으로 ‘일방적인 자회사 설립 저지’ 약속을 얻어냈다. 그런데도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초까지 청소, 주차, 시설관리 등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맡은 업무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직접고용 대상으로 제시한 생명안전 업무에 해당하지 않으며 직접고용에 따른 비용 부담이 크다는 등의 이유로 자회사 설립 통한 정규직화를 고수했다. 이에 서울대병원 정규직 노조인 의료연대본부 서울지부 서울대병원분회는 다른 국립대병원 노조와 2년여 동안 6차례 공동파업으로 대응했다. 정규직화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대립하는 이해 당사자가 아닌 두 주체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움직인 것이다.

축적의 시간이 만든 ‘함께’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을 이야기하는 우리는 두 번째 열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병원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뭉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시간의 축적이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는 1999년부터 외주화에 맞서 시설관리, 청소, 식당, 주차관리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조직해 함께 투쟁을 해왔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 사이 갈등을 이미 경험하면서 극복해 왔기에 2019년 정규직-비정규직 구분 없는 정규직화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구조적 특징도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2006년부터 서울지부 아래 분회 형태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모두 조합원으로 모았다. 예를 들어 원청노조는 서울지부 서울대학교병원분회, 하청노조는 청소노동자들이 조직된 서울지부 민들레분회 같은 형태였다. 또한 노동조합비를 일원화했다. 민들레분회가 파업할 때는 정규직 비정규직 구분 없이 서울대병원 노동자들이 낸 조합비를 썼다. 또한 대의원대회 등 조합원 행사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했다. 지역지부 아래 서로 벽을 허물고 이해하는 계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나간 것이다. 현정희 의료연대본부장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대 병원 하청노동자도 우리 지부 조합원이니까 같이 투쟁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기업별 조직이 아니라 지역 조직으로 만든 것이 정규직-비정규직 구별 없는 투쟁의 관건이었다”고 설명했다.

요행은 없다
작은 만남부터 쌓는 신뢰

서울대병원은 20년간 정규직화 투쟁을 해온 데다가 그 과정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럼 축적된 시간도 적고 산업별노조도 아닌 사업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행은 없지만 길은 있다. 낮은 단계의 스킨십부터 대화의 시간을 쌓아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서울대병원도 20년 동안 열심히 부딪혔다. 조합비로 비정규직의 투쟁을 지원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업무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 간의 갈등이 발생하는 사례에서, 정규직화의 세부 방안에 대한 여러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노동 무임금을 감당하면서 비정규직을 위한 파업을 하기까지 부서별 간담회, 비정규직 대상 간담회, 전 조합원 간담회 등 수많은 대화의 장이 만들어졌다. 같은 지역지부 아래 낮은 수준 교류부터 이어진 진지한 토론을 통해 서울대병원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낮은 수준의 교류
현장에서 가능하다

이러한 일상적 대화와 교류 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있었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교조이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나 스포츠강사는 교사처럼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들은 입직경로가 다르다(=임용시험을 치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어야 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노동조합 지도부끼리 ‘서로 이해합시다’라는 선언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교육공무직본부와 전교조는 지역 분회 단위의 일상적 만남을 시도하고 있다. 회의도 하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는 등 일상적 교류를 하며 정서적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다. 안명자 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은 “전교조, 공무원노조,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가 상층부터 현장 조합원까지 서로 입장 차이를 확인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운동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마음이 생겨야 사회적 운동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갈등 때문에 사회적으로 주목받았던 공공운수노조 서울교통공사노조는 토론회, 간담회 등 터놓고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오히려 빛은 의외의 공간에서 발했다. 유성권 서울교통공사노조 쟁의지도국장은 서로 섞여서 같이 근무를 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고 봤다. 유성권 쟁의지도국장은 “일할 때는 말을 섞어야 한다”며 “같이 일하다 보면 서로 쌓였던 오해가 풀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차량 정비의 경우 협업이 중시되기 때문에 갈등 해결의 문이 조금은 쉽게 열렸다.

친분이 쌓이니
서로 사실에 대해 확인하더라

서로 친분이 조금이라도 쌓인 뒤에는 어떤 단계로 넘어갈까. 서로 정서적 거리가 좁혀진 후 서로에게 직접 가짜뉴스에 대한 사실을 묻는 단계로 넘어간다. 서울교통공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전환 대상자와 기존 정규직들의 갈등은 공사 익명게시판인 ‘소통한마당’에서 심하게 벌어졌다. 서로에 대한 가짜뉴스와 오해들이 난무하며 인격적인 모독으로도 이어졌다. 서로에 대한 사실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의 사실을 찾아보려는 노력을 가로막았던 것은 서로 간 관계 형성의 부재였다. 곽재석 서울교통공사노조 청년국장은 “연락하고 지냈던 청년조합원이 있었는데, 그 조합원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처음에는 극렬하게 반대했다”며 “그래도 관계가 있다 보니 계속 나에게 이 사실이 맞느냐 물었고 정확한 사실로 대답했는데, 좀 이해하려고 하더라”고 과정을 설명했다. 유성권 쟁의지도국장도 “전환자와 기존 정규직이 서로 섞여서 일하다 보니 나중엔 서로 급여명세서까지 보여주면서 오해를 풀더라”고 말했다.

비정규직-정규직 반목
결국은 ‘을’들의 다툼

갈등의 원인을 파악해야 갈등을 해결하거나 갈등을 넘어 발전적인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대화의 분위기만 바꾸고 갈등의 본질적 원인을 파악하지 않으면 갈등은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정규직 전환자들과 기존 정규직들 갈등의 심연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정규직 전환자들과 기존 정규직들이 했던 대표적인 말과 선택으로 알아볼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 중 노사전협의체는 전환 대상자들에게 직접투표를 진행했다. 총 1,350명의 정규직 전환대상자 중 1,070명이 직접고용 방식을 택했다. 자회사 방식에는 157명만이 동의했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분당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이 전체 비정규직에서 400여 명을 차지하는 것에 비춰봤을 때, 비조합원의 대다수도 직접고용 방식의 정규직 전환을 선택한 투표 결과다. 주목할 또 다른 지점은 자회사가 직접고용에 비해 3년 더 일할 수 있음에도 직접고용 정규직을 택한 것이다. 이들의 투표 결과로 유추할 수 있는 의미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규직이 가지는 위치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조건 좋은 자회사 방식도 포기할 만한 자리이며, 노조 가입 여부를 떠나 비정규직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자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정규직들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반발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들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정규직이 된 과정을 전환 대상자들이 밟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정규직을 획득한다는 것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한 공정성 문제제기이다. 이것이 안고 있는 뜻은 정규직은 되기 어렵고, 되려면 많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왜 그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길을 걸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 있는데, 답은 간단하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정규직이 가지는 의미는 경제적으로든, 사회문화적으로든 대단하기 때문이다. 계층의 정점에 정규직이 존재한다. 비정규직이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든 정규직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와 기존 정규직 간에 일어나는 갈등은 겉으로는 두 주체 간의 대립으로 보이지만, 밑바탕에는 정규직이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사회구조적 이유를 공유한다. 현정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본부장은 “왜 누군가는 힘들게 공공기관을 들어와야 했는지, 왜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랜 기간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노동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야 했는지. 두 가지 왜에 대한 뿌리는 다른 뿌리가 아니다”라며 “그러나 누구나 다 자기 입장에서 공정성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역설적으로 정규직 전환 대상자와 기존 정규직이 통과한 사회역사적 맥락이 같기 때문에 서로에게 화살을 돌린다. 구조를 바꾸자는 선언은 너무 거대한 담론이고, 공공기관 정규직이라는 유일한 경로이자 각자도생의 생존 방식을 문화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에 시선을 사회로 돌릴 여유조차 없다. 결국 을과 을의 전쟁이 택하기 가장 쉬운 답안이다.

비정규직-정규직
서로 이해 쌓이면 사회 변화시켜

그렇다면 을과 을의 전쟁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내리막길 위의 트럭일까. 트럭을 멈출 수 있는 희망이 아예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유성권 쟁의지도국장은 “전환에 반대하는 분들이 어떤 경쟁 속에서 살아왔는지 안다”며 “제가 IMF 터진 시기에 직장을 다녔는데, 지금을 보면 덜 어려웠다고 할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직원은 “억울할 수는 있긴 한데, 그것이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가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서로가 처한 환경을 만든 사회구조적 원인이 같다고 생각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서로가 그렇게 행동하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이해한 발언들이다.

이해의 과정은 지난할 수 있어도 쌓이고 쌓이다 보면 사회구조를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국립대병원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20년 동안 경험한 현정희 의료연대본부장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사업장 노동조합이)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인내를 가져야 한다”며 “지금 2030세대 중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많은데, 자신의 처지가 어려울수록 소통만 잘하면 역지사지가 훨씬 쉬워서 감정의 격동기가 지나고 나면 오히려 더 끈끈해질 것”이라고 사회구조가 바뀔 힘이 생길 가능성에 대해 긍정했다.

정규직 전환 갈등 막이 내리면
일터의 민주주의 막 오른다

2016년을 생각해보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들은 당연한 일이다. 2016년 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힘을 느꼈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권력에 시민의 주권을 행사하였고, 자칫 혼란할 수 있었던 광장에서도 질서를 만들어 움직였다. 하지만 촛불은 일터에서 켜지지 않았다. 광장의 민주주의가 일터의 민주주의로 바뀌지 않았다. 어제 저녁 시민들은 민주주의 학습의 축제장 가운데 서 있었다면 오늘 아침은 각자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 게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어제 광장에서 남을 배려할 수 있었다면 오늘 일터에서는 나만 배려할 수밖에 없다. 만 3년이 지난 현재 상황도 같다. 광장에서 느낀 민주주의를 자기 삶에 가져오기란 힘든 법이다. 곽재석 청년국장은 “예전부터 비정규직 철폐 집회를 함께 갔던 정규직 조합원이 있었는데, 막상 정규직 전환이 자기 앞의 일로 다가오니 극렬하게 반대하고 지금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미 예견된 미래였을 수도 있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서 발생하는 갈등 역시 일터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래서 아직 진행 중이고 문제가 공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대로 생각한다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가 일터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