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소기업이 칠순잔치를 고민하는 이유
요즘 중소기업이 칠순잔치를 고민하는 이유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1.09 00:23
  • 수정 2020.01.09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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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많은 중소 제조기업
복잡한 문제 해결의 시작, 일터혁신

커버스토리 ① 프롤로그

아름다운 공장을 다녀오다

지금의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터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기업과 비교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일터혁신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터혁신에서조차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터혁신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일터혁신은 말 그대로 일하는 곳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데, 일터혁신을 기술혁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기계화 내지는 자동화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동시에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게 일터혁신의 정의라면 일터혁신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칠순잔치 #더러운화장실 #미스매치 #일터혁신

곰곰 궁리해봐도 쉽게 연결 짓기 어렵다. 힌트가 필요해 보인다. 앞부터 셋은 우리나라 중소 제조기업이 처한 복잡한 현실을, 마지막은 그 상황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방법을 의미한다. 알 듯 말 듯 하다. 그래도 여전히 동떨어져 보이는 이 단어들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칠순잔치 고민하는 중소기업

요즘 중소 제조기업의 복지이슈로 ‘칠순잔치’가 떠오르고 있다. 누구의 칠순잔치일까? 직원 부모님은 물론, 범위를 넓혀 친척도 아니다. 정년 이후에도 촉탁직으로 재고용한 숙련 노동자가 그 주인공이다. 일흔 살 노동자의 생일을 회사가 복지 차원에서 챙겨주느냐 마느냐가 새로운 고민거리라는 이야기다.

단순히 생각해 보자. 100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일흔을 맞은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고 칠순잔치까지 회사에서 챙겨준다. 바람직한 변화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일흔 살 노동자의 칠순잔치’는 중소 제조기업이 처한 복잡한 현실을 담고 있는 문제다.

중소 제조기업은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산업단지 입주 기업 4곳 중 1곳이 생산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한국산업단지공단, 2014). 규모가 작고 노동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입사한 노동자들은 금방 나온다. 평균 근속연수로 따져보면 중소기업이 4.4년인데 그중 제조업은 2.8년에 불과한 실정이다.

게다가 생산현장에서는 주요 기능들이 주먹구구로 전수되는 일이 빈번하다. 이 또한 체계적으로 숙련을 관리할 여력이 없어서다. 사람 구하기 어렵고 숙련관리가 부재한 중소 제조기업 입장에서 일흔 살 숙련 노동자는 그래서 칠순잔치까지 챙겨주고 싶을 만큼 소중한 존재다.

지저분한 화장실에 놀라는 청년

물론 중소 제조기업도 청년을 구인하고 싶다. 그렇지만 청년은 아무리 구직이 어려워도 머뭇머뭇한다. 이 같은 구인난과 구직난이 동시에 존재하는 일자리 미스매치가 발생하는 이유는 보통 세 가지다. 보상, 숙련, 정보다. 청년 눈높이에 맞는 ‘보상’을 기업이 제공하지 못해서, 기업이 요구하는 ‘숙련’ 수준을 청년이 못 따라가서, 청년이 기업의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해서 미스매치가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 ‘환경’ 미스매치다. 중소 제조기업은 대부분 외곽에 떨어져 있다. 오래된 산업단지 내에 있는 경우 길이 어둡고 낙후돼 출퇴근길이 무서울 정도다. 작업환경도 마찬가지다. 최근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 직업계고 학생들을 인터뷰한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학생들이 작업현장에 가면 지저분한 화장실을 보고 충격 받는다. 열악한 공장 기숙사에서 부모님께 울며 전화한 일도 있었다”며 “청년이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건 환경이 가장 기본”이라고 말했다. 2016년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도 청년의 산업단지 취업고려 요인 중 1위는 임금보다 근로환경으로 나타났다. 칠순잔치부터 지저분한 화장실까지, 중소 제조기업은 얽히고설킨 여러 가지 문제를 떠안고 있다.

복잡한 문제 해결의 시작, 일터혁신

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일터혁신이다. 2000년대 중반 힘들게 일하기(work hard)에서 똑똑하게 일하기(work smart)로 나아가자는 노동문화 개선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일터혁신은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조금 더 좁혀 들어가면 ‘일터’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작업장을, ‘혁신’은 무언가를 바꾸는 걸 뜻한다.

그럼 작업장에서 무엇을 바꾸는 걸까? 작업장 바꾸기의 대상과 방법은 다양하다. 일터혁신은 일터의 청결, 정리정돈,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환경 바꾸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한다. 그 다음으로 중·고령 인력을 배려한 작업공정 배치, 공정 최적화, 품질관리 방식 개선 등 생산시스템과 작업방식 바꾸기로 경로가 이어진다. 이 긴 과정의 결과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노동의 질 개선이다. 외부환경 변화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뿐 아니라 새로운 인력을 유인해야 할 노동조건 개선,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중소 제조기업에게 청소부터 시작하는 일터혁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