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투 중소기업 일터혁신
하우투 중소기업 일터혁신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1.09 00:24
  • 수정 2020.01.09 00: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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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혁신은 모멘텀이 긴 과정
노사정 모두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커버스토리④ 결론

아름다운 공장을 다녀오다

지금의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키우고 양질의 일자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일터혁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대기업과 비교해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은 일터혁신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일터혁신에서조차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터혁신에 대한 오해는 여전하다. 일터혁신은 말 그대로 일하는 곳에서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데, 일터혁신을 기술혁신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기계화 내지는 자동화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노동자가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드는 동시에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게 일터혁신의 정의라면 일터혁신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중소기업은 대한민국 산업의 근간이다.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노동자의 83%는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반면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60%, 연간 복지수혜금은 18만 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 평균 근속연수가 4년에 그치는 이유다. 아름답고 강한 중소기업 인페쏘 같은 사례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눈치 없이 잘난 강소기업을 소개하고 일터혁신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이 국내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아무리 예산을 풀어도 ‘9983’을 차지하는 중소기업 전체를 살릴 수는 없다. 외부 도움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 스스로 바꿔나가는 일터혁신이 경쟁력을 갖추는 최선의 길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소기업 일터혁신의 수준은 어느 정도이고 우리는 일터혁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 일터혁신의 오늘

국내 중소기업의 일터혁신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 기업의 일터혁신 수준은 OECD 29개 국가 중 그리스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다(배규식·이장원, 2017). 이 중에서도 300인 미만 중소기업 일터혁신은 더 낮은 수준일 것으로 예상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노세리 외, 2018)이 강소 제조기업 6,61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일터혁신 관련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기업은 약 30%였다. 중소 제조기업 중 나름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강소기업도 일터혁신 도입 수준이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일터혁신 수준이 낮은 이유는 중소기업이 혁신을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혁신을 추구할 자원의 한계 탓이다. 노세리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이 뭔가를 잘못해서가 아니다. 태생적으로 자원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라며 “일터혁신 과정에서 노동자의 자발성은 조직 몰입과 직무 만족에서 나오는데 중소기업은 그러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중소기업에 혁신을 도모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은 오히려 작업장의 작은 변화부터 시작하는 일터혁신을 통해서라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일터혁신,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일터혁신은 현장 노동자들이 일하면서 습득했던 개념, 지식, 기술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 생산시스템과 작업방식, 궁극적으로는 일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참여-숙련-보상’이라는 원리가 작동한다.

“반장님, 이 공정 좀 바꿔야겠는데요.”

참여는 현장 노동자 또는 숙련 노동자가 “난 이 작업과정이 좀 불편한 것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해요?”라고 하는 것처럼 일에서 발견한 문제점을 말하고 해결 방법을 제안하는 과정이다.

“이론이랑 다른데, 이 방향이 맞지 않나?”

제안을 하려면 뭔가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가 교육훈련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숙련체계를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가 교육받은 내용과 작업장에서 경험이 접목되면 새로운 개선 아이디어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참여 왕에게 인센티브를”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일터혁신에 참여하고 싶은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보상체계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원리로 작업장은 바뀌는데 변화의 목표는 우선 생산성 향상이다. 불량률이 감소하거나 작업시간이 단축됐다면 성공적인 변화의 시작이다. 이를 바탕으로 궁극적으로는 ‘우리 회사에서 일하기 좋아졌어’라는 조직에 대한 만족과 ‘내가 하는 일은 의미 있어’라는 직무에 대한 만족이 동시에 달성되는 근로생활의 질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노사정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① 중소기업

중소기업은 노동자에게 일터혁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숙련체계를 만들어 노동조건을 개선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CEO의 강한 의지다. 생산성 향상 측면에서 일터혁신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의사결정이 경영자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는 CEO의 기업가정신이 일터혁신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노세리 부연구위원도 “일터혁신에 성공한 중소 제조기업을 인터뷰해 보면 기업가정신을 갖춘 CEO의 의지가 정말 중요하다”며 “그다음으로는 키맨(key man)이 필요하다. 혁신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끌고 나갈 수 있는 깨어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약 CEO뿐만 아니라 키맨도 일터혁신을 할 의지는 확실한데 현실적으로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재정이 들지 않는 정부 지원 등 외부 소스를 모색하는 방법이 있다. 대표적인 정부의 지원은 고용노동부의 일터혁신 지원사업과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컨설팅 지원사업 등이 꼽힌다.

② 노동자

노동자 입장에서는 작업장에서 변화를 예고하는 일터혁신이 탐탁지 않을 수 있다. 변화가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터혁신의 시작이 현장 노동자의 참여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노동환경의 질 개선인 만큼 피하기보다 노동자가 변화의 방향을 설정하는 주체가 될 필요가 있다.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은 일터혁신이 주로 사용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일터혁신의 주요 주체가 노동자”라며 “노동자가 혁신의 과정을 함께했을 때 변화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된다”고 이야기했다.

중소기업에서 조직률이 10%도 안 되는 현실이지만 노동조합도 일터혁신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황선자 부원장은 “노동자 입장에서 노조가 함께하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일터혁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며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피할 수 없는 만큼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노동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측과 이견을 조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 대기업

대기업의 역할도 빠질 수 없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원·하청 관계에 놓여있어서다. 중소 제조업체의 경우 2/3가 대기업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다.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곧 대기업의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일종의 생태계 구조인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은 주기적인 품질점검 방문이나 일터혁신 기법을 전수하면서 중소기업 일터혁신에 마중물을 제공할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은 자율적으로 협력업체의 제조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자동차가 2003년, 삼성은 2004년, LG전자와 포스코는 2008년부터 중소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제조혁신을 돕고 있다. 김동배 인천대학교 경영대학 경영학부 교수는 “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제조혁신 지원사업 이전부터 대기업은 자율적으로 협력업체의 제조혁신을 지원하고 있었다”며 “지원 동기는 이기적 이타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모기업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협력업체의 경쟁력 강화라는 취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 대기업은 ‘이기적 이타성’을 넘어 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 노세리 부연구위원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하에서는 자생력을 키워 중소기업을 위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다”며 “현재 구조의 책임에서 대기업도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사회적 책임 차원으로 중소기업을 돕고 위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차원에서 대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중소기업 일터혁신에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다.

④ 정부

마지막으로 정부는 중소기업의 일터혁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시장에서 위치가 불안해 자체적으로 혁신할 여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생산성 향상 등 일터혁신 성과가 대기업의 하청단가 인하 압력 등으로 쏠리지 않도록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역할도 다해야 한다.

아울러 일터혁신 지원사업(고용노동부), 중소기업컨설팅 지원사업(중소기업진흥공단) 등 정부 정책의 한계도 보완해나가야 한다. 희망제작소 객원연구위원 임주환 변호사는 <일터혁신의 정책과제>(2018)에서 “일터혁신 지원사업은 실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한다기보다 인사·노무 관리에 집중되는 한계를 갖고 있으며 중소기업컨설팅 지원사업은 현장 근로자에 대한 보상이나 유인책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라 혁신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 되어버린 현장 근로자들이 저항감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고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 바 있다. 임주환 변호사는 정부 지원 방향이 “‘산업(현장)이 소거된 일터혁신과 사람(노동)이 배제’된 제조혁신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터혁신은 모멘텀이 긴 과정

일터혁신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일터혁신 과정에서 중요한 노동자가 주체로 참여하려면 노동자의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역량강화도 이뤄져야 한다. 장기적 관점으로 오랜 기간 투자할 수밖에 없다. 노세리 부연구위원도 “혁신은 1년 안에 이뤄지지 않는다. 5년, 10년 단위로 성과를 보는 기업이 많다”며 “부진한 과정이지만 일터혁신은 결과적으로 조직이 단단해지고 좋은 결과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일터혁신은 노사가 모두 작업장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지점부터 시작해 나가면 된다.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은 “한국GM은 청소부터 시작했다. 청소를 비롯해 중노동이 요구되는 공정이 있으면 기술 자동화 등도 시도해볼 수 있다”며 “일터혁신은 노사가 서로 필요가 맞아떨어지는 부분부터 찾아 바꾸면 된다”고 조언했다.

노사가 함께 조금씩 일터를 바꿔나가다 보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던 변화가 쌓인다. 그러면 위기로만 느껴지던 외부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혁신이라는 결과가 어느새 따라붙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