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반도체 방사능 피폭사건,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다
서울반도체 방사능 피폭사건,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08 15:14
  • 수정 2020.01.08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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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피폭 확인에도 과태료 및 과징금 고작 4,050만 원
‘하청업체 일’ 선긋기 … 안산시흥 네트워크, “적극적인 사과와 재방방지대책 필요해”
8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열린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 현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지난해 7월 서울반도체 사내하청업체에서 발생한 방사능 피폭사건에 대해 12월 24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원청의 꼬리 자르기와 솜방망이 처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반도체 및 전기전자업종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안산-시흥지역 네트워크(이하 안산시흥 네크워크)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는 8일 낮 11시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사고 문제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해 7월말 서울반도체 사내하청업체인 SI세미콘에서 하청업체 노동자 7명이 방사능에 피폭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방사능 설비 사용에 대한 적절한 안전교육을 받지 못했고, 방사능 차단 설비를 인위적으로 열어 두고 작업을 하라고 지시받았다. 방사능 피폭 노동자 중에서는 신안산대학교에서 장기현장실습으로 참여한 실습생도 있었다.

이후 안산시흥 네트워크는 대대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서울반도체를 산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서울반도체 방사능 피폭 사건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청업체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지적됐음에도 동일 사고의 재발가능성을 줄일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사능 피폭 사건은 서울반도체 사내하청업체인 SI세미콘에서 발생했다. 현재 서울반도체 사내하청업체 SI세미콘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원안위는 12월 24일 제112차 원자력안전위원회 의결을 통해 원청업체인 서울반도체에게 4,050만 원의 과태료 및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서울반도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서울반도체는 반도체 검사 장비의 관리책임이 있을 뿐 운영주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문제가 된 방사선 설비 사진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정현철 안산시흥 네트워크 공동집행위원장은 “SI세미콘의 업무도 원래 서울반도체에서 하던 것이다. 2012년부터 서울반도체는 반도체 공정을 7개 정도로 쪼갰다. 공정상 하도급으로 나눌 수 없는 공정”이라며,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요소가 짙다. SI세미콘보다 서울반도체에서 훨씬 더 책임감 있게 나서야 하는 이유”이라고 지적했다.

박정훈 한국노총 금속노련 서울반도체노동조합 위원장은 “재발방지대책 피해자 보상계획을 공문과 실무자 대화로서 수차례 요구했지만 간단한 답변만 있었을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원안위 발표 이후 입장을 발표하겠다고만 답했다”며, “하지만 12월 24일 원안위 발표 이후에도 올해 1월 31일 고용 노동부가 안전보건 지침 이행을 완료한 후 피해자에 대한 입장 계획을 발표한다고 했다. 아무리 하청업체 잘못이 크다 한들 원청의 잘못이 있다”고 비판했다.

미덥지 못한 원안위 규제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원안위의 행정처분으로도 사고 재발을 막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12월 24일 원안위가 발표한 ‘서울반도체(주)에 대한 행정처분안’에 따르면, 서울반도체는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변경신고 불이행’ 명목으로 과징금 3,000만 원, ‘방사선발생장치 취급 기술기준 미준수’ 명목으로 과태료 450만 원(50% 가중치), ‘방사선장해방지조치 미준수’ 명목으로 과태료 600만 원(50% 가중치)으로 총 4,050만 원을 처분 받았다. 하지만 서울반도체의 연매출은 약 1조 원에 달한다.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원안위가 신고대상 방사선설비 관리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왔다. 현재 원안위의 규정에 따르면, 분석과 생산용으로 사용되는 산업용 방사선 설비 혹은 최대전압 170kV 이하 용량의 설비는 허가가 필요 없다. 사용 신고만 거치면 된다. 현재 원안위에 신고 된 방사능 설비는 7,000여 대에 이른다.

이상수 반올림 활동가는 “허가대상 설비는 정기적으로 검사 의무가 있으나 신고대상 설비의 경우 검사대상에서 제외돼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인다”며, “서울반도체에서 신고 없이 임의로 설비를 이동시키고(2대), 다른 회사로 보내고(3대), 해외로 수출까지 했지만(1대) 사고가 발생한 후에야 원안위가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이상수 활동가는 “이번 사고와 같이 안전장치를 손쉽게 해제할 수 있는 설비의 경우 신고대상으로 분류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이후, 안산시흥 네트워크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서울반도체 방사선피폭사고 동일, 유사장비 폐기' 서명운동지를 전달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날 기자회견에 모인 이들은 ▲서울반도체는 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및 피해자 보상안 마련 ▲고용노동부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 대책 수립 ▲서울반도체 위장하도급, 불법파견 문제 적극적 조치 시행 ▲원안위는 서울반도체 방사선 피폭 사고를 일으킨 동일-유사 장비 85대 즉각 수거, 폐기 ▲교육부와 노동부는 장기현장실습제도 운영 관리 감독 등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