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노동운동 외길 달려온 고진곤 한국노총 군산지부 의장
30년 노동운동 외길 달려온 고진곤 한국노총 군산지부 의장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15 19:50
  • 수정 2020.01.15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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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부터 군산지부 의장 맡아와 … 변함없는 지지로 ‘10선’ 성공
고진곤 의장, “어용으로 매도당하는 일 있어도 옳은 말을 해야 해”

[인터뷰] 한국노총 군산지역지부 고진곤 의장

2018년 2월 22일 한국노총 군산지역지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고진곤 한국노총 군산지부 의장이 발언하고 있다. ⓒ 한국노총 

지난 14일, 향후 3년 간 한국노총 군산지역지부를 책임질 제13대 의장을 뽑았다. 당선자는 1992년부터 한국노총 군산지역지부 의장을 맡고 있는 고진곤 현 의장이었다. 참석대의원 44명의 만장일치였다. 10선 연임,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달성한 고진곤 의장은 어떤 사람일까.

고진곤 의장은 1978년 세풍제지에 입사했다. 약 10년 가량 현장 노동자로 생활하다가 1987년 노태우 정부의 6.29선언 이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민주노조운동’에도 앞장섰다. 1987년 전국민주노동조합연합회(전민노련, 이후 전라북도노동조합연합회로 변경)의 전북지역 초대 의장을 맡았다. 이후 1988년 4월 28일 한국노총 화학노련 전북지역본부를 결성하면서 적을 옮겼다. 초대 화학노련 전북지역본부 의장을 맡았고, 현재도 군산지역지부 의장직과 함께 겸직하고 있다. 이후 1992년 고진곤 의장은 한국노총 군산지역지부 의장으로 선출됐다.

고진곤 의장은 지난 30여 년간 노동 문제뿐만 아니라 새만금 문제, 교육 문제 등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군산지역지부 의장으로서 30년을 바라보고 있는 고진곤 의장에게 여남은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인터뷰는 1월 15일 전화 통화로 진행했다.)

군산형일자리 협약식에서 고진곤 의장
군산형일자리 협약식에서 고진곤 의장(중간)의 모습. ⓒ 한국노총 

13대 의장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당선을 무척 축하드리지만, ‘이제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중간에 몇 번 그만두려고 했어요. 이 일 자체가 큰 돈이 생기거나 국회의원, 장관처럼 명예가 올라가는 일이 아니잖아요? 지금도 사실 나이도 있어서 그만두려고 하는데 다시 또 계속하라고 하네요. 누군가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면 제가 안 할 건데. 아무래도 이제 그런 분위기는 아니니까요.

최근 군산의 상황이 안 좋다 보니 지역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클 것 같습니다

꼭 군산이 아니더라도 현재 노동자가 처해 있는 현실이 비슷해요. 일자리 창출과 고용안정이 핵심이잖아요? 일하는 사람도 언제 잘릴지 모르니까 걱정되는 거예요. 또 다른 문제는 지역별 노조와 산별 노조의 양극화죠. 특히 그 틀 속에서 임금 격차가 심해요. 원하청 격차요. 처음에는 소위 3D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 하청 노동자들이 생겼는데 지금은 인건비 절감차원에서 생겨요. 한국 사람이 할 수 있고 선호하는 일자리도 도급화 시키는 거죠. 도급의 취지가 업무의 효율성이나 관리의 편의 때문이 아니라 임금을 깎는 거로 변했어요. 가령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에서 동일한 조건에서 일을 해도 억대 연봉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도 있죠. 우리 사회가 풀고 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와 어미 닭이 동시에 알을 쪼는 것을 일컫는 말. 안과 밖에서 함께해야 일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라는 사자성어처럼, 이 문제는 사용자나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사용자도 노동자에게 희생만 강요하고 도급화만해서는 안 되고, 노동조합도 양극화 격차해소를 위해 노력해야죠.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면 노동조합 탓은 해도 기업가가 잘못했다는 말은 없어요. 예를 들어 사용자의 비자금, 분식회계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임금 상승 우려’ 이런 이야기만 나오잖아요? 책임은 결국 노동자 쪽으로 돌아와요. 사회적으로 해소돼야 할 불신이라고 봐요.

근데 또 여기서 맹점이 있어요. 결국 일자리 조성은 누가 하냐하면 노동자가 아니에요. 기업인이 하는 거잖아요? 군산 전기차 클러스터처럼요. 자본이 투자할 수 있도록 투자 의욕을 만들어주는 것이 노동자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노동자들이 와서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이죠. 이런 게 ‘줄탁동시’라는 논리죠. 그런데 계속 서로 일방적인 주장만 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지역에서 볼 때 답답한 거죠.

노동운동을 시작한 지 30년이 훌쩍 넘으셨습니다. 의장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갑작스러워서 구체적인 사례가 기억나지는 않네요. 그래도 노사분규가 났던 사업장이 수습돼서 현장으로 다 돌아갈 때가 감동이죠. 승리감 같은 쾌감보다는 그런 게 더 기억에 남아요. 제가 처음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는 한국노총의 어용성을 부정하면서 시작했죠. 전국에 민주노조연합회가 생겼는데 거기에 전라북도 초대 의장을 했었어요. 그 당시는 파업을 불쏘시개로 이용해서 정치적으로 지역을 선동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왜냐면 그때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니까요. 그때는 내가 나이가 어려서 판단을 하지 못했죠.

이념이나 진영 논리로 풀면 투쟁을 계속 선동해요. 투쟁이 보람 있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이 바른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공자가 이야기 했듯이 지금 내 나이는 옳은 걸 옳다고 말하고, 틀린 걸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때잖아요? 30년 동안 노동판에서 있어보니 나온 결론이 이거예요. 설사 어용이라고 매도당하는 한이 있어도 틀린 걸 틀리다고 말할 수 있는 거요. 이념이나 진영논리에 매달려서 발언하고 싶지 않다는 거죠.

‘대가’의 말씀인 것 같습니다

과찬이에요. 물론 저도 젊었을 때 선동적으로 투쟁하고 그게 전부인 양 생각한 적도 있어요. 지금 보니까 아니라고 생각되는 거죠. 파업현장에서도 패배할 파업 같으면 하지 말라고 그래요. 현장이 올 스톱이 안 되는 파업은 생산라인이 서지 않으니까 회사에 아무런 충격도 줄 수 없어요. 조합원 임금만 손실 나죠. 그러면 불만이 생겨요. 돈이 안 들어오는데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있나요? 그런데 가끔 (다른) 노조 들리다 보면 아주 악랄한 기업인이 있어요. 그러면 위원장한테 ‘회사를 못 다니는 일’이 있어도 파업을 해야 된다고 해요. 파업 한 번 제대로 해서 회사에 불벼락을 내려주라고요. 그러면 직장은 다녀야 하고 조합원이 안 따라줄까봐 불안하다고 말하는 위원장이 많아요. 그러면 “뭐 하러 노조위원장 하냐. 하지마라.” 면전에서 이야기하죠. 사실 저도 시간이 지나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긴 해요.

마지막으로 이번 임기를 맞는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군산 지역에서 한국노총 위상을 정립해서 노조를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죠. 그리고 지역에서 자꾸 하도급 노동자가 생기는 걸 막고, 원하청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도록 지역에서 돕고요. 또 기업들이 투자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도록 좋은 노사풍토를 만들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