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농성 200일] 영남대의료원지부, '투쟁의 14년'
[고공농성 200일] 영남대의료원지부, '투쟁의 14년'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16 16:23
  • 수정 2020.01.1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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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14년 간 지속된 영남대의료원 투쟁
삭발, 단식, 오체투지, ‘매일’ 삼천배 투쟁, 고공농성까지 ‘안 해본 투쟁이 없다'
2020년 1월 15일 영남대
2020년 1월 15일 오후 2시 대구 영남대병원 네거리에서 개최한 민주노총 결의대회 현장. ⓒ 보건의료노조

법의 보호가 끝나는 곳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시작된다. 법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노동조합이 쟁취하는 일이다. 흔히 ‘투쟁’이라고 불린다.

지난해 7월 1일 박문진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지도의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은 70m 높이의 영남대의료원 옥상을 찾았다. 16일로 고공농성 200일을 맞는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은 고공농성 200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2006년 여름 영남대의료원에서 일어난 ‘노조파괴’에 맞서 싸운 지난 14년의 기록이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영남대의료원지부의 ‘투쟁’을 되짚어 본다.

2007년 영남대의료원지부의 투쟁 활동. (왼쪽 위)2007년 11월 13일 영남대의료원 로비에서 해고자 5인이 삭발식을 가졌다. (오른쪽)2007년 11월 20일 영남대 집중투쟁 1일차 삼보일배 현장. (아래)2007년 11월 29일 영남대의료원 로비에서 진행한 '춘향이 칼 퍼포먼스' ⓒ 보건의료노조

2010년 3월 ‘정당해고’ 대법원 판결까지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이하 지부)는 2006년 8월 24일 ‘주5일제 전면 시행’을 주장하며, 3일 간 부분 파업을 진행하고 로비농성을 이어 나갔다. 이에 영남대의료원(이하 병원은) 2006년 10월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간부 10명에게 파업과 장기농성으로 인한 피해 명목으로 약 56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또한, 파업행위를 이유로 2007년 1~2월에 걸쳐 총 28명의 노조 간부를 징계했다. 해고가 10명, 정직이 8명, 감봉이 10명이었다.

해고 이후 지부는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3년 간 병원 내에서 지난한 부당해고투쟁에 나섰다. 그 사이 950여 명에 달하던 지부 조합원은 70여 명 가량으로 줄었다. 반면 2009년 7월 1988년 국정감사에서 비리문제로 쫓겨난 박근혜 이사장은 영남대재단에 실질적으로 복귀했다. 영남대의료원 의료원장실과 1층 로비 홍보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 이쯤이었다.

(왼쪽)2006년 영남대의료원이 발행한 소식지와 (오른쪽)2008년 영남대의료원지부에게 보낸 공문 내용. 노동조합을 '폭력조직'이나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국정감사에서 영남대병원이 창조컨설팅의 자문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자료=2006~2010년 영남대의료원노조 투쟁사례집.

2010년 3월 4일 마침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해고자 10명 중 7명은 부당해고, 3명은 정당해고 판정이었다. 그러나 2012년 9월 24일 은수미 민주통합당 의원(현 성남시장)이 노조파괴 전문 기업 ‘창조컨설팅’의 개입을 폭로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2007년 창조컨설팅이 영남대의료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남학원의 실질적 주인, '박근혜' 겨냥

2012년 국정감사 이전 지부는 영남대재단의 실질적 주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겨냥해 투쟁을 벌였다. 병원 내부에서 교섭을 통해 투쟁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영남대의료원지부가 2011년 1월 발간한 ‘2006-2010년 영남대의료원노조 투쟁사례집’을 보면, “현재(2011년 1월) 의료원 안에서 투쟁은 어려운 실정이다. 밖으로의 투쟁이 불가피한 상태다. 지난 7월 22일 박근혜 사건 이후로 여론과 언론을 대대로 탔고, 이를 계기로 영남학원이 주인이 박근혜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됐다”며, “박근혜 의원 면담을 계속적으로 추진하고 해결이 안 될 시에는 상경하여 서울 국회 앞부터 강도 높은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왼쪽)2012년 8월 9일 김천에서 열린 박근혜 대선 후보 그림자 투쟁. (오른쪽)2012년 8월 12일 춘천에서 그림자 투쟁의 일환으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여기서 ‘박근혜 사건’은 2010년 7월 22일 대구지하철 1호선 연장 기공식에 참여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지부 조합원들이 면담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손목 찰과상을 입힌 사건이다. 당시 언론은 2006년 ‘커터칼’ 피습 사건과 연관 지으면서 이 사건을 ‘테러’, ‘피습’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영남대의료원은 2010년 8월 31일 ‘박근혜 사건’과 관련해 당시 오미향 영남대의료원지부 부지부장, 김진경 조직부장(현 영남대의료원지부 지부장), 김경옥 조사연구부장을 징계했다.

이후 지부는 “본조 및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박근혜가 영남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촉구한다”는 지침으로 ▲한나라당 1인 시위 ▲여의도 국회 앞 1인 시위 등 ‘박근혜 그림자 투쟁’을 기획했다. 대표적으로 2012년 7월 26일부터 8월 18일 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 유세일정에 맞춰 진행한 투쟁이 있다. 또한, 박문진 지도위원은 2012년 10월 24일부터 57일 간 영남대의료원과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며 '매일 3,000배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왼쪽)2012년 12월 18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 자택 앞에서 57일 간의 매일 3,000배 투쟁 해단식이 열렸다. (오른쪽)2012년 11월 30일 3,000배 투쟁 39일 차, 박문진 지도위원의 그림자. ⓒ 보건의료노조

창조컨설팅 개입 알리는 투쟁도 함께

영남대의료원지부는 창조컨설팅의 영남대의료원노조탄압 사실을 알리는 활동도 함께 벌였다. 당시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영남대의료원의 행동을 ‘노조파괴’라는 키워드로 다시 돌아보는 일이었다.

실제로 지부는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를 모르지 않았다. 투쟁이 한창이던 2007년 11월 13일 지부의 기자회견문에서는 심종두 전 대표를 ‘S 노무사’로 칭하며 ‘단체협약 일방해지’, ‘노조탈퇴 종용’ 등 부당노동행위를 규탄했다. 하지만 당시 지부는 '의도적으로 노조파괴를 공모'한 것까지는 인지하지 못했다.

국정감사 이후 지부는 부당노동행위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2012년 11월 6일 민주노총이 주관한 ‘노동기본권 박탈, 노조파괴 증언대회’에서 ▲2006년 9월, 6급 이상 직원 연수 당시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가 ‘합법적인 노사관계’에 대해 강의 ▲2006년 임단협 교섭시기에 맞춰 영남대의료원은 창조컨설팅과 자문계약을 체결(이후 2005년 8월 체결로 밝혀짐) ▲지노위와 중노위 심문회의 당시 심종두 창조컨설팅 전 대표가 사측 노무사로 직접 출석한 사실을 알렸다.

촛불 정부 이후 지금까지

하지만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영남대의료원의 투쟁은 한풀 꺾였다. 2013년 9월 영남대의료원 노사는 교섭을 통해 해고자 문제를 다루고자 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끊어진 투쟁은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되살아났다.

2017년 6월 13일 영남대학교의료원지부와 영남대학교 교수회, 영남대학교 직원노동조합 등은 ‘영남학원 적폐 청산하고 민주적 학문 공동체 회복하라!’는 집회를 개최하며, ‘영남학원의 민주화’를 주장했다. 또한, 2017년 11월 28일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다고 알렸다. 2018년에도 각종 결의대회를 통해 해고자 복직을 요구했다.

2019년 9월 4일 영남대의료원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에서 '영남대의료원 해고자 원직복직'을 주장하며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이러한 활동의 연장성에서 2019년 7월 1일 박문진 지도위원과 송영숙 부지부장은 ‘해고자 원직복직’을 주장하며 고공농성에 들어갔다. 2019년 가을에는 경주부터 대구까지 4박 5일 도보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더불어 고공농성 193일차인 2020년 1월 9일에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16일로 단식 8일째를 맞이 한다. 

보건의료노조는 16일 ‘고공농성 200일째 영남대의료원 결단 촉구’ 성명서를 통해 “영남대의료원은 2020년 새해가 열리자마자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의 단식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한다”며, “대법원의 해고 판결에도 불구하고 해고자를 복직시킨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코레일은 12년 만에 180명의 해고자를, 콜텍은 13년 만에 3명의 해고자를, 쌍용자동차는 10년 만에 119명의 해고자를 복직 조치했다. 이제 영남대의료원이 결단해야 한다. 14년 간 역대 의료원장이 풀지 못한 해고자 복직문제를 이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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