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기] 치열했던 한국노총 선거, 기자들의 뒷이야기
[취재후기] 치열했던 한국노총 선거, 기자들의 뒷이야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1.23 14:40
  • 수정 2020.01.23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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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치열했던 한국노총 선거가 끝났다. 한국노총의 향후 3년을 책임질 적임자로 ‘김동명-이동호’ 집행부가 선출됐다. 한 끗 차이였다. 단 52표, 약 1.5%의 차이로 승부는 결정됐다. 두 후보 모두 쟁쟁한 실력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한편, 이날은 선거 과정을 취재한 기자들에게 일종의 해방이기도 했다. ‘특별 입단속’이 풀린 것이다! 비공식적으로 이어진 몇 달의 선거기간 동안 입조심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기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었다. 이런저런 겪은 마음고생을 이야기하다 보니 이번 주 칼럼으로 쓸만 한 내용이 됐다. 선거인대회에 참석한 기자들의 소감과 나름의 전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공공부문을 맡고 있는 최은혜 기자(이하 ), 한국노총을 담당하는 강은영 기자(이하 ), 금융노조, 자동차노련 등을 맡고 있는 임동우 기자(이하 ), 제조부문을 담당하는 손광모 기자(이하 ) 그리고 아직 출입처가 배정 되지 않은 백승윤 기자(이하 )가 함께했다.

선거 끝! 각자의 소감은?

: 선거가 드디어 끝났다. 각자 소감부터 한마디씩 말해달라.

: 드디어 끝났다. 선거 막바지 2주 동안 긴장을 엄청나게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후보자들만큼 긴장하고 팔로우를 했던 것 같다. 왜 후보자들이 시원섭섭하다고 이야기했는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 저는 선거를 준비한 시간이 짧아서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선거인대회에 참석한 인상은 ‘노동조합이 선거를 열심히 하고 있구나’ 정도였다.

: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고 축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솔직히 선거가 한국노총의 축제였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금이 3공화국 시대도 아니고 체육관 선거를 하냐는 것이었다. 모바일 선거 요구가 많았는데, 예산 문제 때문에 힘들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장에서도 ‘조직에서 결의하니 따라간다’라는 인상도 많이 받았다.

: 잠실실내체육관에 들어가는 입구에 커다랗게 체육관이라고 쓰여 있지 않나? 체육관 선거라는 말이 다른 의미로 쓰이긴 하는데 체육관 선거가 아니라고 할 수가 없겠구나. 정말 체육관 선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그래서 조금 찜찜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열기가 대단했다.

: 맞다. 한국노총의 열기를 선거인대회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선거인대회 중 인상 깊었던 장면?

: 기자 하나하나가 카메라라고 생각해보자. 각자가 생각하기에 이번 선거에서 가장 재밌었던 장면은 뭔가? 저는 미처 기사에 다 쓰진 못했는데, 담배를 입에서 물었다가 뺐다가 하던 문희열 전국우정노조 부위원장이 있었다. 그런데 들어보니 문 부위원장이 담배를 안피운다고 하더라. (웃음) 1년 동안 담배를 끊었는데 너무 긴장이 되니 자기도 모르게 담배를 만지작거리는 거리고 있던 것이다.

: 선거의 묘미는 '경기를 보는 느낌'인 것 같다. 안 그래도 체육관에서 선거를 치르지 않았나. 양자 대결 구도여서 마치 경기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람들을 지켜보니 시선이 모두 한 군데로 가더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군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흔히 접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 인터뷰를 하다가 지지후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익명성을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도 말들을 아꼈다. 왜 그런지 궁금했다. 또 다른 장면은 선거하자마자 대다수 사람들이 빠져나간 거다. 결과가 별로 중요하지 않나? 의문이 들었다. 선거는 원래 결과가 제일 중요하지 않나. 투표했으니까 내 할 일 다 끝났다. 그런 느낌이었다.

: 처음에 노동의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불렀는데 체육관 전체가 울렸다. 콘서트 같은 울림이 있었다. 또, 마지막 유세에서 선거를 위해 운동원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선거인대회를 하면 자주 못 보는 대의원분들이 한자리에서 만나보는 게 좋았다. 선거라는 큰일이 앞에 남았지만, 설 앞두고 소소한 이야기를 다 같이 나눌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 저도 한 가지 더 생각나는 게, 개표 할 때 모든 위원장들이 단상을 바라보고 있더라. 거기서 긴장하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장면이 새롭게 다가왔다.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52표’를 가른 차이는?

: 이제 선거가 다 끝났으니 결과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박빙의 승부였다. 선거 전 예측도 너무나 어려웠다. 결과를 보면 52표 차, 1.5% 차이였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다고 보나?

: 후보자들이 얼마나 지지자들에게 확신을 ‘줬냐, 못 줬냐’의 차이인 것 같다. 전국 어디에 있건 그 사람을 지지하겠다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결집력의 차이가 있지 않았나 싶다.

: 기존에 지지하는 사람들이 투표권을 포기하면서 막판 뒷심이 부족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러닝메이트의 조합이 투표의 관건이었던 것 같다.

: 러닝메이트 합은 당선된 기호2번도 좋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뒤풀이에 갔는데 우정노조 따로, 화학노련 따로 자리에 앉더라. 사실 합을 맞출 시간도 기호2번 후보조에게는 부족했지 않았나. 후보등록 마감 직전에 성사가 됐으니.

: 선거인대회 현장에서 아직 결정을 못 내린 선거인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근소한 차이이지 않나.

: 선거인단으로 온 분 중 처음으로 온 분들이 꽤 많았다. 인터뷰했을 때 그분들이 가장 크게 바라는 점은 ‘제1노총 지위 회복’과 ‘현장조합원들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자’였다. 슬로건의 차이라고 본다.

: 이후 걱정되는 건 경선 후 갈등이다. 경선을 치르고 나면 갈등할 수밖에 없고 봉합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너무 근소한 차이이기 때문에 봉합하는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 뒤풀이에서도 제조업 간의 대결이었다는 점을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입장이다. 금속노련과 화학노련은 제조연대로 묶여있다. 뒤풀이에서 김만재 위원장이 김동명 위원장에게 축하 인사도 했다고 들었다. 크게 갈등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 한국노총의 위기라고 다들 말하니 갈등으로 번지지 않고 서로서로 뭉칠 것 같다. 결국 2월 말 정기대의원대회 때 윤곽이 보이지 않겠나.

: 어쨌든 김동명 위원장이 당선 후 첫행보로 기업은행을 갔다. 경선에서 대결했던 반대 진영 노조의 가장 큰 현안을 챙긴 것이지 않나? 그게 통합의 제스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큰 갈등이나 내홍은 없을 것 같기도 하다.

희비 엇갈린 뒤풀이 풍경

: 선거인대회 직후에 여의도 한국노총회관 내의 각기 다른 음식점에서 있은 뒤풀이 장소에도 취재기자들이 모두 참석했는데,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 기호1번 후보조 뒤풀이에 참석했는데 즐거운 마음으로 뒷풀이에 참여하는 게 아니다보니 발걸음을 옮기는 게 굉장히 무거웠다. 또, 다들 수고했다고 토닥여주고 눈물 흘리는 모습들이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느껴지기도 하고 마음이 짠했다. 3년 뒤 김만재 위원장이 다시 도전하라는 얘기도 나왔지만, 선거 직후라 크게 힘이 실린 목소리는 아니었다.

: 저도 1번 캠프에 동행했는데 처음에는 쉽사리 말을 떼기도 어려웠다. 나중에 술을 좀 마시면서 얘기를 터놓고 나눠보니 아쉬운 점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김만재 위원장 같은 경우는 두 번째 선거니까. 함께 고생한 간부들이 내색은 안했지만 많이 속상해 하는게 보였다. 기호2번 후보조의 뒤풀이는 어땠나?

: 축제분위기였다. 근데 또 몇 사람은 마냥 즐거워만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선거라는 게 참 복잡하구나 생각했다. 처음 가는 자리라서 조금은 어색했는데 그나마 이긴 쪽이라 분위기가 나았다.

: 한 마디로 비유하자면, '아모르 파티(amor fati)'. 어디서든 이야기가 흘러 넘쳤다. 이야기가 넘치는 자리는 늘 매력적이다.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긴 했지만, 모두가 한국노총이라는 애정의 구심점에 모여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던 것 같다.   

: 굉장히 왁자지껄했다. 다들 정말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한국노총의 새로운 3년을 축하하러 많은 사람이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중간 김동명, 이동호 당선인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했는데, 상대 선본에 다녀왔다고 하더라. 김만재 위원장도 이 자리에 잠시 들렀다. 치열했던 경쟁의 시간을 봉합하고 서로 보듬는 것 같이 느껴져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찡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화학노련 모 부장의 눈물이었다. 즐거운 자리에서 왜 우냐고 했더니, "이렇게 좋은 위원장님을 또 만날 수 있을까"라고 했다. 김동명 위원장이 인덕을 많이 쌓은 모양이다. 

한국노총의 대정부 관계 변화 있을까?

: 다음 질문은 한국노총과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다.

: 김주영 위원장은 젠틀하고 대화를 중시하는 이미지이지 않나? 그런데 이번 두 후보는 모두 대화보다는 투쟁에 방점을 두는 것 같다. 지금은 노동법 개악이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그 부분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지 않는다면, 틀어질 가능성이 존재할 것 같다.

: 그런데 워딩을 명확히 해야 할 것이, 후보들이 투쟁을 우선시한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 맞다. 투쟁할 때는 해야 한다고 했다. 방점을 투쟁에 조금 더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 어쨌든 조합원들도 조금 더 강력한 투쟁, 혹은 명확한 입장을 바라는 것 같으니 직전의 한국노총보다는 조금 결이 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겠나. 4월 총선 이후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 다만 김동명 위원장이 정부여당과의 관계에서 호락호락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입장에서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지 않으면, 기존의 좋은 관계로만 가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정부와 여당도 계속 애매모호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는데 태도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지난 한국노총이 약했다고는 평가하지 않는다. 향후 한국노총의 정치세력화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총선에서 한국노총이 어떠한 정치방침을 세우는 지에 따라서 한국노총 대정부 스탠스가 달라질 것 같다.

: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국노총과 정부가 유지하고 있던 호의적 관계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제1노총 지위를 찾아오는 게 관건이지 않나. 민주노총이 투쟁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제1노총 지위를 차지했다고 판단했다면, 한국노총도 대외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고민할 것이다.

: 바로 대정부 관계에서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화국면이 어느 정도 이어지지 않을까.

: 바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 포토그래퍼 김영근 dusky@naver.com

새로운 취재방식에 대한 평가

: 이번 선거를 맞아서 취재방식을 조금 달리했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속보로 1보부터 8보까지 내는 방식을 택했는데, 기자들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 조금 아쉬운 감이 있다. 길게 쓰는 것보다 압축적으로 쓰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포토 기사는 포토 기사대로 압축시켜서 내는 게 나중에 더 찾아보고 싶은 기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조회 수가 높았던 기사는 ‘최종 결과’, ‘새 집행부에 바란다’ 등의 내용이었고, 상대적으로 낮았던 기사는 선거현장에 대한 스트레이트 기사였다. 생중계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 전달 기사는 독자의 궁금증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름 괜찮았던 시도라고 생각한다. 타임라인을 보면 중간중간 비는 구간이 있었는데, 시간을 딱딱 맞췄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 포토 기사나 누가 당선됐는지 확인하는 기사는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기사다. 유튜브 중계도 있다 보니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선거 판세나 전망을 기자 내부에서 논의를 많이 해서 전망이 보이는 기사를 쓰도록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