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생명과 안전을 위한 노동
[박완순의 얼글] 생명과 안전을 위한 노동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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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이 멈췄다. 스크린도어 너머 지하철이 그냥 서 있었다. 다음 열차를 타야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내 앞으로는 지하철 공익요원과 역무원이 뛰어갔다. 어떤 할머니 한 분도 내 앞을 지나갔는데 “누가 욕하고 난동 부려서 그래”라고 중얼거리셨다. 그래서 잠깐 멈췄나보다 할 찰나에 다시 스크린도어가 열렸다. ‘어’ 하고 반가운 마음에 지하철을 탔다.

열차에서 방송이 나왔다. 승객 여러분들 모두 하차해달라는 방송이었다. 열차 유리창이 깨져 안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내 앞을 지나던 할머니가 말한 난동의 정체인 것 같았다. 어느새 역사가 발 디딜 틈 없어졌다. 생각보다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고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역사로 지하철을 타러 사람들이 더 왔다.

지옥철이 시작됐다. 사람들은 마구 밀며 탑승했고 마구 밀며 하차했다. 어릴 적 고향에서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콩나물 시루마냥 빽빽하다.’ 지하철 안에 탄 사람들은 흔들리는 콩나물이었다. 사람들이 밀면 밀리는 대로 열차가 출발하거나 서면 그러는 대로 콩나물들이 쏠렸다.

사고가 일어나면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예전에 근무 경험이 꽤나 된 지하철노동자에게 물어봤다. 이렇게 많이 타도 되냐고. 이렇게 꽉꽉 실어도 괜찮은 것이냐고. 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그는 그 많은 인원이 한 번에 탈출해도 문제라고 했다. 많이 타면 안 된다는 말을 빙 둘러 한 말이다.

콩나물 시루마냥 사람을 꽉꽉 태우는 것에 별말 없이 넘어가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 상황이 하루에 몇 번 안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하루에 몇 번 안 일어나는 일을 위해서 열차 배차 간격을 조정하는 데도 무리가 있고 배차 간격을 최대한 줄인 현재 간격을 더 줄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차선은 대비책을 꼼꼼하게 세우는 것이다. 결국에 숙련되고 사명감 있는 지하철노동자가 필요하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많은 사람을 질서 있게 대피시키거나 위험에 초동 대응을 하는 것은 지하철 역무원, 지하철 기관사 등 지하철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무인지하철도 생기고, 역당 역무원 수도 줄이고 있는 추세다. 하루에 몇 번 안 일어나는 빽빽함을 해소하진 않더라도 안전을 담보한 빽빽함을 위해서라도 무인화나 지하철노동자 수를 줄이는 건 고려해봐야 할 문제다.

나는 회사까지 출근하는 데 코레일과 서울교통공사가 각각 운영하는 지하철을 탄다. 코레일 자회사 소속 코레일네트웍스 역무 노동자들은 인원 감축으로 인한 노동 강도 강화와 낮은 수준의 처우 때문에 아직 싸우고 있다. 서울교통공사 지하철 승무노동자들은 운전 시간 연장으로 인한 노동 강도 강화에 싸워 운전 시간 연장을 이전으로 되돌리기도 했다. 두 곳의 노동자들이 말한 것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었다. 자신들의 노동 환경이 나빠질수록 시민의 생명과 안전도 위협받는 다는 이유에서였다.

출근길 지하철이 멈췄고 지하철이 다시 운행하는 데까지 20분이 걸렸다. 출근길에서는 참 초조하고 긴 시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이다. 신고를 접수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난동 부렸던 사람을 경찰에 인계하는 데 걸린 시간을 다 합치면 20분은 빠른 대응이었을 수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지하철노동자들의 노동 때문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