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 김영훈 “권리의 불평등, 전태일법으로 해소하겠다”
[노동+정치] 김영훈 “권리의 불평등, 전태일법으로 해소하겠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2.03 08:09
  • 수정 2020.02.0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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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 총선 출마자를 만나다①]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준비된 노동자 후보’로 출사표

4.15 총선 출마를 위한 노동계 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던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도 오는 5일 출마 기자회견을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 본부장은 1992년 부산지방철도청에 부기관사로 철도노동자의 삶을 시작하고, 철도노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김 본부장은 지난달 29일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 진보정치를 이어가야 한다는 숙제를 가지고 있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출마 소감을 밝혔다. ‘청년 민주노총’을 슬로건으로 국민을 닮은 노동운동을 꿈꿨던 그가 이제는 국민을 닮은 노동정치를 꿈꾸고 총선 출사표를 던졌다.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 김효진 포토그래퍼 kkimphoto@gmail.com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 김효진 포토그래퍼 kkimphoto@gmail.com

- 총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배경은?

누구나 알다시피 오늘날 한국 사회 가장 큰 문제는 불평등 아닌가. 불평등 타파가 한국정치에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평등이 ‘권리의 불평등’에서 왔다고 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해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게 됐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가 박탈당할 때, 일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오늘날 불평등이 심화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결국 그들에게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우리 사회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중요한 핵심이라는 답을 내렸다. 진보정치의 소명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감히 그 일을 자임하겠다고 나서게 됐다.

이번 총선에서 감히 ‘준비된 노동자 후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 노동자 후보답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철도노동자에서 철도노조 위원장,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며 치열하게 노동운동을 해왔고 노동운동만큼 노동정치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노동이 당당한 대한민국을 내건 정의당에서 나 같은 후보 한 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치열한 영역은 여전히 노동이다. 노동을 가지고 평생을 고민해왔던 사람으로서, 정의당 4기, 5기 노동본부장을 맡아온 사람으로서 준비된 노동자 후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찾아주기’가 이번 총선의 목표라는 이야기인데, 이를 위해 추진하고자 하는 법안에는 어떤 게 있나?

올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해 총선 슬로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모든 전태일을 국회로’다. 전태일 열사가 쓴 일기에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지 않나. 이 구절이 전태일 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적인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노동으로 하루를 채운다. 전태일 열사한테는 옆에서 일하는 여공이 전태일 열사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였던 거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 사회에는 근로기준법 적용 예외가 많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15시간 이하 노동하는 초단시간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전태일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시키고 노조 할 권리를 보장받게 해주는 것이 이번 총선의 핵심 공약이자, 민주노총과 함께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이해 추진하려는 ‘전태일법’이다.

그리고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있다. 이 법안은 고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정의당에서는 그 유지를 받들어 21대 국회에서 꼭 통과시키려 한다. 지난 2017년 5월 1일 노동절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 6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지 않았나. 6명이 사망한 참혹한 사고였는데도 불구하고 삼성중공업이 받은 처벌은 벌금 300만 원이었다. 사내하청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서도 차별받는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나온 거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할 수 없도록 하는, 제2의 김용균을 막기 위한 중요한 법안이다.

마지막으로 추진 준비 중인 ‘공공기관민영화방지법(가)’은 한때 우리 시대를 풍미했던 민영화의 거짓 신화에 종지부를 찍는 법안이다.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시키면 효율이 증대할 것이라는 가설은 현실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의 구조적 문제도 결국은 위험의 외주화 때문이었다. 그동안 경쟁과 효율이라는 핑계로 공공기관을 민영화하고 중요 업무를 외주화해서 위험하지 않았던 업무가 위험하게 돼버렸다. 분할민영화된 전력산업을 재공영화하고, 박근혜 정부 때 분할됐던 SRT와 KTX 고속철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 김효진 포토그래퍼 kkimphoto@gmail.com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 본부장.
ⓒ 김효진 포토그래퍼 kkimphoto@gmail.com

-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목표는?

올해가 민주노동당 창당 20주년이다. 이번 총선은 진보정치 20년을 총결산하는 중요한 선거이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돼서 치러지는 첫 번째 선거이기도 하다. 정의당에서는 이번 총선의 결과로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고, 정당 지지율을 20%까지 끌어올리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정의당에서는 현역 의원 6명 재선이라는 과제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진보정치 1번지라고 불리는 창원성산에서 여영국 의원의 선대본부장을 맡아 여 의원을 재선시키고 노동자들의 정당 투표를 극대화해 나 역시 동반 당선되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 이번 총선은 문재인 정부 4년 차에 치러진다. 이번 총선이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난 3년 동안 한국 사회 안에서는 촛불 이전에 구성됐던 의회 권력과 촛불 이후 만들어진 행정부 간에 극한 대립이 이어져 왔다. 그동안 모든 개혁은 국회 앞에서 멈췄다고 표현을 할 정도로 개혁이 제도화되는 데 국회가 큰 난관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이번 총선은 이 불일치로 발생한 대립이 해소될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거라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인식이 대중들에게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는 거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자고 했을 때 국민들이 환호할 만큼 국회의원들을 불신한다. 그러나 국회 규모가 작아지면 통제받지 않는 시장권력만 무한대로 커질 거다. 유명한 철학자가 이야기했듯이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의 지배를 받는 거다.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이 왜 정치를 하느냐, 노동자들이 정치에 관심을 안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심심찮게 유포되고 있지만, 과연 우리 삶에서 정치와 무관한 게 있는가. 비정규직법으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정리해고법 때문에 정리해고가 양산된다. 노동자들이 정치를 외면하면 가장 저질스러운 시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고삐 풀린 시장권력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결국 시민의 힘이 정치로 모아질 때 시장권력을 통제할 수 있고, 그 중심에는 일하는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노동자들이 반정치 의식을 뛰어넘어 정치의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고 호소하고 싶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변화된 선거 제도하에 치러지는 첫 번째 총선이기 때문에 이를 전망하는 전문가와 언론의 다양한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동안 전문가와 언론의 예측대로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는 거다.(웃음) 한국정치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정의당 후보로서 이번 선거에 의미를 부여하자면 이번 선거를 통해 양당 체제를 뒤집고 진보정당 정의당이 제3당으로 우뚝 설 것인가가 판가름 나는 중요한 선거라고 본다. 결과적으로는 정의당이 제3정당의 위치를 확고히 가져가 그동안 제도의 그늘 아래 대표되지 못했던 소수화된 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기를 바란다.

- 그동안 본부장님이 걸어온 길에서 의미 있는 시간은?

2013년 겨울 박근혜 정권이 수서고속철도 분할민영화를 시도했다. 사실 정권이 철도노조를 깨기 위해 파업을 유도했다고 본다. 노조는 싸울 수밖에 없었고 파업에 들어갔다. 그때 철도노조 지도부를 검거한다고 민주노총을 침탈했다. 그때 민주노총은 박근혜 정권이 민주노총 사무실을 군화발로 짓밟은 것은 이 정권 몰락의 신호탄이 될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걸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이후 제가 다시 철도노조 위원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300명이 넘는 인원이 해고되고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지도부가 구속되면서 위원장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2016년에 쉬운 해고, 취업규칙 일방 변경, 공공부문 성과연봉제 도입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서 3년 만에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9월 27일에 파업에 들어가서 탄핵되는 12월 9일까지 74일간 철도노조 최장기 파업이 이어졌고 박근혜 정부 몰락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철도노동자들은 그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그때 철도노동자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웠고, 국민들은 ‘불편해도 괜찮다’, ‘힘내라 철도파업’ 하면서 응원해주셨다. 이게 바로 국민과 함께하는 노동운동이다. 민주노총 위원장 때는 하지 못했지만 다시 철도노조 위원장을 맡으면서 해냈다는 것 자체가 제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노동운동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자면, 노동운동은 보수언론이나 보수야당으로부터 이기주의자라고 정치적 낙인이 찍혀 있다. 그렇게 보수언론과 보수야당은 끊임없이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된 노동자들을 이기주의 프레임으로 고립시킨다.

노동운동이 공장 밖으로 과감하게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데, 지난 시기 노동운동은 공장 밖으로 손을 내밀고 노동조합 밖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보다는 공장 밖으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싸웠던 시절이 더 많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노동운동이 실리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왜 그들이 공장 밖으로 손을 내미는 사회연대보다 공장 밖으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실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그 실리적인 것 이면에는 불안한 미래가 있다. 밀려나는 순간 낭떠러지라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실리적인 노동운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해도 안 바뀌는 거다.

그래서 노동정치가 중요하다. 정치가 노동자들로 하여금 과감하게 공장 문을 열고 공장 밖의 청년노동자들과 연대할 수 있게 사회안전망을 갖추고 법제도를 통해 불안한 미래를 해소할 수 있게 담보해줄 때 노동운동도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크지는 않지만 우분투나 하후상박 임금 같은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 것은 희망적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