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위원장, “사회적 대화 불씨, 노정 대화 활성화로 살려놔야”
김명환 위원장, “사회적 대화 불씨, 노정 대화 활성화로 살려놔야”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2.05 09:04
  • 수정 2020.02.07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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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제1노총 칭호 얻고, 2020년 ‘전태일법’ 개정 투쟁으로
[인터뷰 전문]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이 오는 2월 17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올해 사업계획을 확정한다. 지난해 1월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안건으로 뜨거웠던 정기대의원대회 이후 약 1년 만이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를 안건으로 부칠 수 없다”고 확답하면서도 “교섭도 필요하다”며 정부와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적 대화를 둘러싼 ‘응답하라 민주노총’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기에 “지금 민주노총이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후의 사회적 대화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지난 1월 14일, 임기 3년 마지막 해를 맞이한 김 위원장을 만났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 2020년 새해 인사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다.

올해 들어서 인사말을 할 때 꼭 하는 말인데, 2020년이 지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의 결절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해이며, 민주노총이 출범 25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나아가 6.15남북공동선언과 민주노동당 출범 20주년이 되는 해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에서 진보, 민주주의, 노동자의 생존과 권리가 확장된 지난 역사의 도도한 흐름의 결절점이 올해이기 때문에 2020년을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해라고 보고 있다.

제1노총 민주노총, “양적 경쟁에서 질적 성장으로”

- 지난해 12월 정부 공식발표로는 처음으로 민주노총이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이 됐다. 제1노총이라는 수식어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조합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투쟁, 자본과 독재에 대한 저항, 그리고 활동가들의 헌신과 희생이라는 부분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은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사실 제1노총이라는 수식어로 한국노총과 경쟁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민주노총이 이번 정부 발표에서 주목하는 건 노동 탄압에 국가권력을 동원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시기에 9.2%까지 떨어졌던 노동조합 조직률이 11.8%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 조직률 20% 시대, 나아가 30%까지 올라가는 세상을 만들려면 이제는 양적인 경쟁보다는 질적인 성장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노동조합 운동을 같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지난해 9월 민주노총 내부 집계에 따르면 2019년 4월 기준으로 민주노총 조합원 수가 101만 4,845명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조합원 수가 증가한 배경을 무엇이라고 진단하며,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난 2016~2017년 촛불항쟁이 민주주의의 성장과 회복, 국민들의 권리 의식과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생각하고, 그 결과 노동조합에 가입한 사람들이 늘어났다고 본다.

이번 조합원 수 증가에서 눈여겨볼 점은 그동안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청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는 통로로 노동조합을 선택했다는 데 있다. 과거처럼 ‘노동조합=빨갱이’가 아니라 이제 노동조합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는 의식이 생긴 거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지난 12년간 미조직전략사업에 뛰어들어 조직화를 꾸준히 준비해왔던 민주노총이 조합원 수를 늘리고 노동조합 조직률을 끌어올리는 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7년 1월 이후 민주노총에 가입한 조합원의 압도적 다수는 기업별 노조가 아닌 초기업 단위 노조 조합원이었다. 민주노총이 업종과 산업을 대상으로 조직화 사업을 진행한 결과다.

- 국제사회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한국의 이 같은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을 상당히 이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들었다.

실제 민주노총이 국제회의를 참석하면 노동조합 조직률 상승에 대해 발표도 하고 그에 대한 조명을 많이 받기도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조합원의 절대적인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질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은 이례적으로 조합원 수도 증가하고 있고, 노동조합 조직률도 상승하고 있는 케이스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노동조합 조직률 11.8%는 한국 사회에서는 의미 있는 숫자일지 몰라도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기업별 노사관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50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0.5% 수준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말할 것도 없다. 민주노총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걸고 2020년 미조직전략사업으로 작은 사업장 노조 만들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민주노총 제1노총 소식에 몇몇 언론에서는 ‘노정 관계 파장’, ‘민주노총이 정부에 더 무리한 요구를 할 것이다’ 등 부정적인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를 어떻게 보는가?

그런 기사가 많았다. 부정적인 기사라기보다는 악의적인 기사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민주노총이 덩치가 커졌으니 무리한 요구를 할 거라는 건데, 민주노총이 제1노총이 됐다고 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요구가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우리 사회 불평등 양극화 해소,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기본권 확장은 그동안 계속해왔던 요구를 앞으로도 할 거다.

다만, 우리가 정부의 제1노총 발표에 대해 표명한 입장은 제1노총이라는 이름 아래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원론적인 입장을 이야기한 거다. 규모가 커졌다고 무리한 요구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막중해졌으니 더욱 신중하겠다는 거다.

- 제1노총이 된 민주노총, 우리 사회에서 어떤 사회적 책임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앞서 이야기한 노동조합의 양적인 경쟁에서 질적인 성장을 민주노총이 제시할 수 있다. 우리 사회 불평등 양극화 문제를 노동조합을 통해 극복하고 해소하자는 것이 우리의 목소리고 비정규직 철폐, 차별 해소, 처우 개선, 격차 줄이기가 민주노총의 핵심 과제이자 지향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거다. 노동조합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을 때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나머지는 소외될 수밖에 없다. 조직화가 안 된 노동자를 위해서 만들어야 하는 건 무엇인가. 민주노총에서는 사회안전망이라고 본다. 특히, 연금, 노인부양, 보험 문제 등 각종 공적인 의제를 통한 사회보장 강화가 병행돼야 하고 이를 노동조합 조직률 활성화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 이현석 객원기자 175studio@gmail.com

2020년, ‘전태일법’ 개정 투쟁

- 민주노총은 오는 2월 17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올해 사업계획을 확정한다. 올해 사업계획 이야기에 앞서 지난 한 해 민주노총 활동에 대한 평가가 필요할 것 같다.

작년은 ‘사업장 담장을 넘어 사회대개혁으로’가 민주노총 핵심 슬로건이었다. 사회대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 참여를 사업계획으로 제출했지만,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서 사업계획을 수정하게 됐다. 이후에는 노동개악 공세로 경색된 노정 관계가 이어졌고 개악저지 프레임 속에 갇혀 사회대개혁 의제를 확장시키지 못했다는 자체 평가가 있다. 이런 평가를 바탕으로 올해는 개악저지 프레임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쟁취해내는 투쟁을 하자는 게 하나가 있다.

올해는 임기 3년 마지막 해다. 아마 올해 추석 전후로 신임 위원장 후보가 거론되는 등 선거 국면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올해 지도부에 주어지는 집행 시기는 최대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작년처럼 연초에 사회적 대화 논쟁을 길게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니 ‘실사구시(實事求是)’에 집중하자는 게 현 지도부의 생각이다.

- 그렇다면 올해 사업계획에는 어떤 내용이 담기나?

캐치프레이즈는 ‘전태일 열사 50주기, 모든 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불평등 양극화를 넘어서자’이다. 말 그대로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는 해에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확장하고 불평등 양극화를 해소하자는 게 사업 목표다.

특히, 노동기본권과 관련해 중점적으로 진행하려는 사업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 확대와 노동기본권 확대 사업이다. 전태일 열사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지 않나. 여기에 노동시장에서 노조 할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특수고용노동자에게 노조 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까지 포함하려고 한다. 민주노총에서는 올해 이 두 가지를 ‘전태일법’으로 이름 짓고 법 개정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 이야기한 전태일법의 경우, 제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법 개정 사항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과 함께하는 진보정당과 이번 4.15 총선 의제로 만들 예정이다. 이외에도 앞서 이야기한 사회안전망 강화, 청년과 여성, 비정규직의 문제, 재벌개혁, 한반도 평화 등의 과제를 노동기본권 확대와 불평등 양극화 해소라는 큰 틀과 함께 가져가야 하는 과제로 보고 있다.

- 이번 4.15 총선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민주노총에서는 이번 총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일단 민주노총당은 안 만들 거다(웃음). 민주노총당 만드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그 얘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민주노총에서는 총선을 단순한 정치 일정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이번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과거 권위주의적 적폐 세력을 청산하느냐, 축소하느냐, 유지하느냐가 첫 번째로 결정될 것이고, 두 번째로 민주노총이 진보정당과 이번 총선에서 어떻게 공동 대응할 것인가가 과제로 있다. 마지막으로는 진보정치 다원화 시대에 연합정치 가능성을 모색하고 연합정치 토대를 강화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이 의제를 마련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오는 3월 28일에는 총선을 앞두고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날 대회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특수고용노동자, 사회안전망 등 민주노총의 총선 의제를 부각하고 촉구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경사노위 참여’ 여부 올해 정기대대서 부칠 수 없어…
그럼에도 남은 과제 해결 위한 ‘대화’해야

- 2020년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에서 민주노총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민주노총에서는 다양한 대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올해 사업 계획인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노동자 노조법 2조 개정을 위한 대화를 해야 할 것이고, 공공부문 노정위원회(공무직위원회) 등 정부와의 협의 틀도 요구하고 활용할 계획이다.

사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고 있지 않을 뿐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국무총리실 사회보장위원회,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심의위원회 등 정부 주요 위원회에서 진행하는 사회적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대화, 협의, 교섭의 틀에 민주노총의 의제를 가지고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투쟁도 필요하지만 교섭도 필요하다”며 정부와의 대화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된 이후 주52시간 상한제, ILO 기본협약 등 문제로 노정관계가 악화됐었는데, 지금 ‘다시’ 정부와의 대화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총의 작년 한 해를 돌이켜보면 ‘모 아니면 도’였다. 조직 운영 목표는 조직이 내세우는 의제를 현실화하는 것인데, 조직 운영에서 ‘all or nothing(전부 아니면 전무)’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지 않나. 민주노총 내부에 있는 사회적 대화기구 참여에 대한 논쟁을 거두면 상당한 여유와 공간이 생긴다. 그 공간에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이야기하는 순간, ‘경사노위 참여’라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런 혐의는 민주노총의 유연성과 기동성을 떨어뜨린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오는 2월 17일 정기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안건으로 부칠 수 없다. 참여 여부를 물으려면 작년처럼 상당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엔 현 지도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경사노위 참여라는 조직적 결정이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사노위라는 틀은 민주노총에서 참여가 불가능한데, 경사노위 참여만 이야기하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은 과제를 방치할 수 없으니 다양한 대화 채널을 통한 정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거다.

- 그렇다면 민주노총에서 원하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노사정뿐만 아니라 시민사회 단체도 함께 할 수 있는 범국민 대책기구를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범국민 대책기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통령도 함께 할 수 있는 대토론회를 개최해 민주노총의 의제를 전달할 의향이 있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민주노총이 주장하는 정부와의 대화 채널이 새로운 노사정 대화기구는 아니다. 앞서 언급한 공공부문 노정위원회 등 노정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거고, 일자리위원회 등 민주노총이 참여하고 있는 정부 주요 위원회에 안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다. 사실 현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개선된 점도 있지만,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의 숫자, 데이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올해 초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과 만났을 때 일자리가 몇 개 늘었느냐보다 일자리의 내용이 어떤가를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 경사노위 참여는 위원장 임기 이후에도 계속 붙어 다닐 민주노총의 꼬리표일 텐데,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민주노총을 둘러싼 경사노위 참여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고, 관련 내부 논의가 필요하다. 그 논의의 장에서 내 입장이 뭐냐고 묻는다면 지금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망은 긍정적이다. 이제 민주노총은 노사관계로만 대화할 수 없다. 정부의 산업정책, 노사관계정책, 재정정책 이 세 가지에 민주노총이 개입하고 같이 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논의의 장은 역시 사회적 대화기구라고 생각한다.

다음 위원장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임기에서 살려놓을 수 있는 경사노위 불씨는 안정적이고 정기적인 노정 협의, 주요 정부 위원회 활성화라고 본다. 지금처럼 단기적이고 의제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대화 채널로는 안 된다. 지금 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후의 사회적 대화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기제가 될 거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