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이윤 뒷전’ 산재사망 언제까지?
‘안전은 이윤 뒷전’ 산재사망 언제까지?
  • 이동희 기자
  • 승인 2020.02.07 04:54
  • 수정 2020.02.07 04: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재사망사고=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보는 영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으로 기업 처벌 강화해야”

실제 국내 산업재해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지난 2008년 1월, 경기도 이천시에 위치한 ㈜코리아2000 냉동 물류 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창고에서 일하고 있던 노동자 40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창고 출구가 하나밖에 없었던 점, 화재 현장에 있던 우레탄에서 나온 유독가스, 공사 강행 및 엉터리 준공검사, 안전교육 미실시 등을 사건 원인으로 지목하고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인재(人災)라고 보도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40명의 인명피해를 낳은 이 화재의 책임자인 원청 기업에서는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노동자 산재 사망에도 사업주 ‘솜방망이’ 처벌

위 문제의 답은 이렇다. 최종심에서 원청 기업인 ㈜코리아2000 법인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며, 원청 대표 역시 업무상과실치사죄로 2,0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원청 기업 소속 현장소장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천 ㈜코리아2000 냉동 물류 창고 화재 사건

➊ 피해현황
- 사망 : 40명
- 부상 : 9명

➋ 처벌현황
- 원청 기업 : 벌금 2,000만원
- 원청 대표 : 벌금 2,000만원
- 원청 현장소장 : 징역 10개월(집행유예 2년)
- 원청 방화관리자 : 금고 10개월(집행유예 2년)
- 원청 냉장공무팀장 :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
- 원청 냉장공무차장 : 징역 8개월(집행유예 2년)

자료 : 산재사망사고의 처벌 실태 및 특별법 제정 방안, 강문대 변호사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안전조치와 보건조치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하도록 정하고 있지만, 실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은 ㈜코리아2000 사례처럼 집행유예 또는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은 사업주 처벌을 강화했다. 사업주가 안전조치와 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를 사망하게 하는 죄를 5년 이내에 두 번 이상 범할 경우 그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도록 하고 법인에 대한 벌금 상한액을 현행 1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높였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가 산재 예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현행법에도 불구하고 산재에 대한 기업 처벌이 미미하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지난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기소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중 정식 기소된 사건은 4.6%에 불과하며, 나머지 사건은 약식명령으로 처리돼 공개재판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벌금 처분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 판례분석 연구’에 따르면 2018년 기준 5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은 경우 90.72%가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기업 처벌이 미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매년 노동자 산재 사망이 반복되자 사업주를 형사 처벌하는 등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전형배 강원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형사처벌제도의 실효성’ 보고서에서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사업주를 형사 처벌하는 방식은 가장 강력한 법적 장치일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제재의 대상은 사업주라기보다는 주로 현장의 관리감독을 담당하고 있는 근로자”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에게 책임을 직접적으로 물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법인 처벌은 행위자와 법인 또는 사용주를 함께 처벌하는 양벌규정(산업안전보건법 제71조)을 통해 이루어진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양벌규정 적용을 전제로 실질적인 행위자를 먼저 처벌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법인을 독자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따로 없으며, 행위자의 형사처벌을 바탕으로 법인의 형사처벌이 이루어진다.

매우 드물게 사업주가 행위자로 처벌되는 일도 있지만, 사업주가 영세기업의 대표자인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사업주가 안전보건경영상 의무 미흡으로 처벌되는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즉, “사고 현장과 ‘업무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이나 사업주일수록 처벌을 받기 쉽고 최초 해당 사업을 진행한 사업주는 형사처벌을 거의 받지 않는다”는 게 전형배 교수의 설명이다.

전형배 교수는 “경제적 이익이 집중되는 사업주가 사실상 해당 사업의 안전보건에 관하여 많은 재량 혹은 결정권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전적인 형사 책임주의 바탕을 둔 대법원의 해석론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며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국과 같은 법인에게 직접적으로 중대안전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한국의 산안법과 관련 형법규정이 정비되고 개정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 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
ⓒ 고(故) 김용균 시민대책위

영국, ‘산재사망사고=기업에 의한 살인’
국내 미약한 기업 처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해야”

전형배 교수가 언급한 영국은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하 기업살인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처벌제도를 제정해 2008년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대형인명안전사고를 겪은 영국에서는 반복되는 안전사망사고를 제대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이 제정돼야 한다는 사회 여론이 형성됐다. 이어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에서 법 제정 운동을 전개해 결국 행정자치부는 2005년 3월 법인과실치사법(안)을 공표하고 해당 법을 2007년 7월 26일 공포했다.

영국 기업살인법의 핵심은 산재사망사고를 ‘기업에 의한 살인’으로 보고 산업안전보건과 관련하여 기업을 직접적인 형사책임의 주체로 본다는 데 있다. 시행 이후부터는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는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 홀딩스 사례다.

2011년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 홀딩스에서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3.5m 깊이 광구(광물 채굴 구역)에서 홀로 일하고 있던 노동자가 광구 붕괴로 사망한 사고였다. 당시 검찰은 “광구는 흙막이 공사나 업무 지원을 필요로 했는데 회사는 그러지 못해 회사가 소속 근로자에게 갖고 있는 배려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회사에 38만 5,000파운드(당시 기준 한화 6억 4,63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 금액은 당시 코츠월드 지오테크니컬 홀딩스 연 매출액의 250%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회사는 벌금형이 과도하다며 항소신청을 했지만, 항소법원은 항소신청을 거부했다. 재판부는 “위반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사용자들이 안전한 근무 장소를 제공해야 할 의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한 액수”라고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국처럼 법 제정을 통해 기업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대표(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반올림의 삼성전자 백혈병 산재 인정 투쟁, 2012년 20대 청년의 용광로 추락 사망 사고,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들의 잇따른 사망사고와 산재사망 사고를 겪으면서,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한 책임은 기업에 있으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기업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인식이 꾸준히 확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7일에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대책위원회는 중대재해 기업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에 “안전과 이윤을 맞바꾸는 현상이 멈추지 않고 있다”며 처벌법을 제정해 산재사망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철홍 인천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다치거나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장 안전보건조치에 들이는 비용보다 위반 적발 시 발생하는 비용이 훨씬 적기 때문에 사업주 입장에서 굳이 노동자 안전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형 기업살인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지난 2017년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기거나 안전·보건조치를 위반해 산업재해가 발생한 경우 기업 및 정부 책임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는 사업장이나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기업의 대표이사와 이사 등 경영책임자 처벌 ▲기업, 법인 처벌 ▲하한형 도입 및 형량 강화 ▲사업장이나 대중이용시설 등에 대해 인허가 업무를 수행하거나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처벌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처벌은 사고의 결과에 따라 차이를 둔다. 사망자가 2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징역,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와 질병자가 동시에 2명 이상 발생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3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또한, 산업현장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하여 위험의 예방 및 안전관리 의무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거나 그러한 장소에 대한 인허가 책임이 있는 공무원이 그 책임을 소홀히 하여 사업장 또는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때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여기에 해당 공무원을 감독할 책임이 있는 공무원도 같은 처벌을 받게 했다. 안진걸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기업의 경영책임자와 공무원에게 사업수행이나 사업장 관리 시 재해를 방지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를 위반하여 시민과 노동자에 대해 재해를 발생시킨 경우 엄하게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위험의 외주화 금지·중대재해기업처벌 쟁취 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지난해 11월 18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조사위원회 권고 즉각 이행 위험의 외주화 금지·중대재해기업처벌 쟁취 농성 돌입 기자회견’이 열렸다. ⓒ 전국금속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