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의 확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기업가정신의 확산,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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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혁신도 ‘사람’이 먼저다
정부의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한 때

커버스토리④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혁신은 기본이니 ‘사람’을 고민해봅시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시대에 대한민국 기업가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업가의 기본적인 역할은 당연히 필요했다. 불안한 경제 상황, 예측 불가능한 미래 경제 흐름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변화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는 ‘혁신’을 수행하는 역할 말이다. 우리는 혁신을 만들어가는 기업가의 역할을 기업가정신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의 압축성장을 한 배경에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기업가정신이 놓여 있다. 그 때의 기업가정신을 지금 시대 대한민국에서 되살린다면 저성장과 불평등의 장벽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당시의 고도 압축성장 과정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불평등의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의 기업가정신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기업가정신이 필요할까? 혁신이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동안 ‘사업중심’이었던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산업 환경의 변화 속에서 더욱 쇠퇴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기회 실현과 지속적 발전을 위해 기업가적 방식의 성장과 인적 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람중심’의 기업가정신이 대두되고 있다. 성공전략을 ‘사람’에 두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학계에서도 기업가정신 함양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의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직’이라는 구심점부터

문제의 실상을 파악하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적 의미에서의 기업은 ‘조직’이다. 조직은 유기체(Organism), 즉 ‘신체’와 같다. 이는 박수를 치기 위해 두 손이 필요하듯, 기업이라는 조직이 나아가야 할 목표 및 방향을 위해 각 위치에 있는 구성원들(노동자, 경영진 등)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함을 뜻한다.

유럽의 경제위기 속에서 빠른 경제회복 능력을 보인 독일의 경우 혁신 전략 수립 외에도, 조직의 관점에서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문화가 뒷받침되어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과거 칼뱅주의를 기반으로 문화가 형성된 독일에서의 직업이란 소명이자 구원의 수단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은 기업의 성장을 위해 개인이 온전히 조직의 일부가 되어 일하며, 개인과 조직생활을 철저히 분리하는 문화로 이어져 온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의 조직 문화는 대체적으로 가족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 과거 아버지가 생계를 책임져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장자(長子)를 키우며 집안을 일으키던 것처럼, 위계질서와 상하관계를 비롯한 감정적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 한국 조직 문화의 특성이다. 이러한 특성은 기업 내 노사관계에서도 적용된다. 기업이 이윤을 창출했을 때 경영진 입장에서는 투자가 더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벌어들인 만큼 분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의견이 충돌한다. 어느 측 주장도 틀린 주장이 아니나, 결과적으로는 노사 대립이 불신을 동반하여 기업의 성장을 더디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기업의 혁신 성장을 염두에 둔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위해서는 우선 노와 사가 ‘조직’이라는 구심점으로 돌아와 문제를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노와 사의 역할은?

① 노동,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주인의식’ 필요

SK하이닉스 노사는 2015년부터 임금인상분의 20%(직원들 10%, 회사 10%)로 66억 원의 기금을 조성하여 협력사 직원 4,700여 명의 처우개선에 지원하는 임금공유제(상생 협력 임금 공유프로그램)를 시행하고 있다. 임금공유제에 대한 노사 합의는 구성원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조직적 차원의 성장에 초점을 둔 결과였다.

30분 만에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마무리 지은 것으로 유명한 SK이노베이션의 경우에도 노사가 임직원 기본급의 1%씩을 기부하기로 협력사 구성원의 처우를 개선하는 ‘1% 행복나눔 프로그램’을 구축했고, 매년 소모적이었던 임단협 관례를 없애고자 ‘물가 연동 임금인상안’ 시행에 합의했다. 2019년 11월 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153%의 성장률을 보였고, SK하이닉스도 역시 2015년 당시 25조 원이었던 자산이 지난해 기준 60조 원대로 증가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앞서 제시한 두 사례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노동조합이 먼저 안을 제시하고 주도했다는 점이다. 노사 합의 당시 SK이노베이션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이정묵 전 위원장은 “대기업 임금인상이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그 이상으로 높아지면 협력사 임금이 그만큼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임금 인상을 위해 1년에 3~4개월씩 관행처럼 이뤄졌던 소모적인 투쟁을 중단하고, 상생에 초점을 맞춰 그만큼 협력사 처우개선 등의 복지를 통한 환경 개선에 힘썼다. 이를 지지해준 조합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밝혔다.

혁신을 이끌어낸 중심에는 갈등이 반복되는 노사 간 임단협 관행을 허물고 자신의 일터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참여하는 노동이 있었다.

② 기업, 노동을 ‘파트너’로 인지해야

노사갈등으로 일어난 쟁의행위 현장에 가보면 노동자들이 ‘우리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말라’고 외치는 광경이 자주 보인다. 최근 언론에서는 자금력과 정보력을 동원하여 노동조합 파괴를 주도했던 어느 대기업의 실태가 보도되기도 했다. 세습경영이 일상처럼 벌어지는 한국 사회에서 기업은 마치 오너(Owner)의 소유자산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경제의 두 주체가 ‘노’와 ‘사’인 이상, 기업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될 수 없다.

김석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듯, 기업은 기업 혼자 끌고 가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노동을 함께 가야 할 공동의 주체로 바라보는 인식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인식이 부족하다”며 “기업의 혁신은 노동과 함께 공감할 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으로 유명한 유한킴벌리의 경우, ‘노사’라는 말을 ‘노경’으로 대체하여,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탈피하고자 했다. 노동자를 상생의 파트너로 인지하려 노력한 유한킴벌리는 현장 중심의 수평적 소통 문화를 구축했고, 이후 2018년 순매출 1조 3,272억 원을 달성하여 주요 제품이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정부의 역할은?

① 교육

1988년, 도쿄 땅을 팔면 미국 땅 전체를 사고도 남는 시기였다. 시가총액 2위였던 IBM을 제외하면 시가총액 상위 랭크를 일본기업이 싹쓸이했고, 록펠러 센터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도 일본인의 소유였다. 당시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넘기지 못하던 미국은 초·중·고·대학교에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창업을 활성화시켰다. 초등학교 수업부터 문제를 찾아내고 어떻게 해결할지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됐고, 이는 2000년대 미국의 기업들이 다른 기업을 제치고 앞질러 나가는 데 동력이 되었다. 현재 순위권에 드는 일본 기업은 ‘닌텐도’뿐으로, 20위에 해당한다. 학계에서는 승승장구했던 일본 기업의 몰락 원인을 미흡한 ‘기업가정신’으로 꼽는다.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우리나라 교육은 단순히 시험문제를 맞았느냐, 틀렸느냐에 비중을 둔 지식 암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문자가 요구하는 것을 빠르게 생산하는 것이 곧 기업의 이윤과 직결됐던 과거에는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하는 것보다 주문자의 요구를 빠르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했기에 이런 교육이 효과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하나로 원하는 걸 검색할 수 있고 혁신과 창의성의 발휘가 필요한 현재 필요한 건 지식 암기가 아닌 문제 원인 분석과 이에 대한 해결력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기회를 읽고 도전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기업가정신 교육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 양현봉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장기적 관점으로 초·중·고등학교 정규 교육과정에 기업가정신 함양 관련 교육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이에 연계한 창업교육 상설화를 통해 예비창업자의 현장 경험을 독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국의 경우 청소년 시절 ‘기업가정신’ 교육을 받은 학생들 중 15~20% 정도가 창업에 도전했고, 취업률(78%)과 업무수행 능력(77%)도 비교육 학생(취업률 59%, 업무수행 능력 59%)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또한 기업가정신 교육은 도전에서 비롯되는 실패를 낙인처럼 바라보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풍토를 변화시킬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의 창업 실패는 창업당사자에게 신용불량자 낙인을 찍으며 재도전의 기회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창의적인 도전을 통해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연하게 얻은 지위가 더 많은 보상을 받고, 단기적 성과에 치중해 혁신보다는 기존에 확인된 분야에만 뛰어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보신주의, 내가 먼저 도전하고 혁신하기보다는 그럴듯한 명분 뒤에 숨어 도전자를 비난하는 풍토가 팽배해 있다.

기업가정신을 교육하는 것은 이 같은 사회문화적 토양을 개선하는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이 이렇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육제도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교육으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당국을 비롯해 교육과 연관을 맺고 있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지혜를 모을 때, 우리나라 교육은 경쟁과 지식 암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기여할 사회적 숙련능력을 교육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② 기업 지원

세계 1위 규모의 R&D 투자 국가인 한국은 2017년 기준 중소기업 전용 R&D 투자를 1조 1,787억 원으로 크게 늘렸다. 현재 R&D 투자 자금 외에도 교육 자금·네트워킹 자금 등 다양한 유형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나, 사업화 성과는 사실상 저조하다. 학계에서는 정부의 지원 방식에 선택과 집중이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프로그램인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Program)은 연방정부의 재정적 투자로 기술혁신 촉진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창업과 기업가정신을 장려하고, 혁신기술을 민간에 상용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SBIR은 1단계(기술개발 테스트를 통한 상용화 가능성 증명), 2단계(상용화 제품 개발 및 제작 지원), 3단계(상용화 단계)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재정을 지원함과 동시에, 기업 선정 단계부터 혁신성과 사업성을 가늠할 수 있는 현장 경험자 투입, 선정 확정 시 PD(Project Director)가 전담하여 수시로 자문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높은 경쟁력을 뚫고 선정된 중소기업의 성공을 위해 체계적이고 집약적인 투자를 이행하는 점이 돋보인다.

반면, 이를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진 한국형 중소기업 기술혁신 지원프로그램 KOSBIR의 경우 미흡한 점이 많다. KOSBIR에 참여한 14개 정부부처의 153개 사업 가운데 100% 예산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전용사업은 4개에 불과하며, 중소기업의 기술혁신 촉진에 목적을 두기보다 사업 본연의 목적 달성이 우선시 되고 있다. PD(Project Director)가 집중적으로 모니터링 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하는 SBIR과는 다르게, KOSBIR는 사업 계획 미이행의 경우에도 제재 조치가 없고, 해당 사업의 이관, 존폐와 상관없이 임의적으로 대상이 빠지거나 들어오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외에도 사업 선정 이후 혁신성과 사업성을 가늠해야 할 민간전문가로 현장 및 창업 경험이 없는 교수가 선정되기도 하는 등의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의 중소기업 지원이 ‘형평성’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나타난다. 중소기업에 형평성 있는 기회를 지원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좋으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중소기업 전용 R&D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고 분명한 목표를 제시하며, 신기술과 신산업 분야에 과감한 투자, 기술혁신 지원 취지에 맞는 지원금 산정 등의 ‘선택과 집중’이 절실하다.

이와 함께, 사업의 성장과정에서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사업 신청 과정에 ‘사람성장 사이클(권한부여, 윤리, 평등, 동기부여, 생태계육성)’ 항목을 심사기준에 반영하고, 이와 연계된 교육 지원을 통해 사람성장과 기업성장의 선순환 구조 마련에 힘써야 하는 건 기본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 노동하기 좋은 나라

우리 사회는 노동과 기업을 ‘극과 극’ 대립 구도로 봐왔다. 짜여 있는 각본 속에서 반기업 정서와 반노동 정서가 교차했고, 노동과 기업의 간극은 더욱 멀어졌다. 이러한 간극 속에서도 우리 사회는 ‘혁신 성장’을 필요로 하고, ‘기업가정신’의 가치는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기회를 읽어내는 ‘기업가정신’을 탐구하다 보면, 그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깨닫는다. 기업도 ‘사람’이 하고, 노동도 ‘사람’이 한다. 새롭게 변화할 시대 속에서 ‘기업가정신’은 노동과 기업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할 것이다. 노동과 기업이 ‘사람’이라는 구심점에서 만나는 그날이 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