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의 두 축, 혁신과 사람
기업가정신의 두 축, 혁신과 사람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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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성장’과 ‘사람성장’ 균형이 중요
균형 깨진 한국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필요

커버스토리② 기업가정신의 두 바퀴

혁신은 기본이니 ‘사람’을 고민해봅시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시대에 대한민국 기업가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기업가의 기본적인 역할은 당연히 필요했다. 불안한 경제 상황, 예측 불가능한 미래 경제 흐름 속에서도 과감한 투자와 변화로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는 ‘혁신’을 수행하는 역할 말이다. 우리는 혁신을 만들어가는 기업가의 역할을 기업가정신이라고도 부른다.

대한민국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의 압축성장을 한 배경에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기업가정신이 놓여 있다. 그 때의 기업가정신을 지금 시대 대한민국에서 되살린다면 저성장과 불평등의 장벽에 균열을 낼 수 있을까. 당시의 고도 압축성장 과정이 현재 나타나고 있는 불평등의 요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때의 기업가정신으로는 지속가능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기업가정신이 필요할까? 혁신이 기본이라고 한다면 그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 여러 가능성 중의 하나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에 주목하고자 한다.

Q. 
기업가정신이란?


A. 
“혁신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재능이나 능력” 조지프 슘페터(J. A. Schumpeter)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기혁신의 바탕” 피터 드러커 (P. Drucker)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혁신 의지를 기반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려는 창조 의지, 그리고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해내는 도전 정신” 한국청년기업가정신재단
“내 인생의 CEO로 살아가는 힘” OEC랩(기업가정신 교육기관)


기업가정신, 뭘까?

기업가정신은 좁게는 ‘창업정신’부터 넓게는 ‘사람이 갖춰야 할 기본역량’까지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어떤 정의가 맞는 걸까? 전지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경제학자, 경영학자, 정치경제학자가 말하는 정의가 조금씩 다르다”며 “지금까지 논의된 바에 따르면 하나의 정의가 있는 게 아니라 그동안 발전해온 모든 정의를 통합한 것을 기업가정신의 정의라고 봐야 한다”고 힌트를 줬다. 여러 정의를 합쳐보니 기업가정신은 ‘불확실성과 높은 위험에도 기회를 포착하고 도전하며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의지 및 활동’으로 정리된다.

이 중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혁신’이다. 어쨌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적으로 바꾸는 혁신이라는 수단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기업가정신을 체계적으로 접근한 학자로 평가받는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이론경제학자 슘페터도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혁신이라고 강조했다. “혁신적인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재능이나 능력”으로 기업가정신을 정의한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갖춘 기업인이 끊임없는 혁신을 거듭하면서 경기가 순환되고 파이가 커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성장의 원동력인 기업가정신이 쇠퇴하면 경제성장은 어려울 뿐 아니라 파이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 또한 “기업가란 언제나 변화를 탐색하고, 그것에 대응하며 이러한 변화를 하나의 새로운 기회로 활용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기업가정신을 발휘하는 특유의 수단은 혁신”이라고 짚었다. 기업가정신과 혁신은 뗄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이봐, 해보긴 해봤어?”
한국경제 성장동력도 기업가정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한국경제의 성장동력도 기업가정신이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경제의 급속한 발전은 기업가정신을 갖춘 기업가들이 한국전쟁, IMF 등 ‘위기’를 반도체, 철강, 조선, 자동차, 휴대전화 등 다방면에서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한 ‘기회’로 바꿔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1970년대 산업화 초기 1세대 기업가정신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됐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이봐, 해보긴 해봤어?”는 지금까지 한국의 대표 기업가정신으로 회자되고 있다. 2세대는 1987년 IMF 이후 금융위기 이후 ‘벤처성장기’ 기업가정신이다. 이 시기엔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만든 안철수 전 의원, 삼성SDS의 사내 벤처로 시작한 네이버 이해진 의장 등이 기업가로 기억되고 있다. 피터 드러커도 그의 책 <넥스트 소사이어티>(2002)에서 한국을 세계에서 기업가정신이 가장 뛰어난 나라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벤처버블이 꺼지고 한 때 혁신의 밑바탕이었던 한국의 기업가정신은 점차 쇠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 등 후발개도국의 기업들이 턱밑까지 추격해오고 있는 가운데 한국경제는 활력을 잃고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0%로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며 뾰족한 혁신방법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기업가정신 지수도 하락하고 있다. 100여 개국 창업데이터를 분석해 만든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 모니터(GEM)에서 한국은 2000년 미국을 제치고 세계 2위를 기록했지만 2018년에는 24위로 떨어졌다. 미국 암웨이가 만든 국가별 기업가정신 지수(AESI)도 44개 조사 대상국 중 2018년 33위로 2년 전보다 10단계나 내려갔다. 이는 혁신의 원동력이었던 과거 기업가정신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통적 기업가정신의 대안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우리 사회엔 경영이 어려워지면 가장 큰 비용인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을 답이라고 생각하는 기업이 아직 많다. 기업이 직원을 생산성의 도구로 생각하면 직원도 기업을 돈 주는 도구로밖에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한국 노사관계가 늘 갈등과 긴장상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 기업들도 혁신에는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보다 사업 중심이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이처럼 지속가능성이 떨어지는 사업 중심 기업가정신의 한계를 느끼고 대안을 모색했다. 바로 사람을 혁신의 대상이 아닌 혁신의 주체로 보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Humane Entrepreneurship)’이다. 그동안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개념은 세계중소기업학회(ICSB) 주도로 발전되어 왔다. 특히 2016년엔 UN 본부에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UN 선언’을 발표했으며 2017년부터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이 UN 중소기업의 날의 주요 사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중요한 화두가 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은 “기회 실현과 지속 발전을 위해 기업가적 방식의 성장과 인력개발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조금 더 풀어 보면 전통적인 기업가정신이 강조하는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발전시키되, 그 과정에서 직원에게 주인의식과 동기부여를 촉진하고 역량을 개발해 성과를 공유하는 사람중심 경영을 동시에 구현하자는 뜻이다.

사실 사람들이 모여서 협력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기업이 사람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일터혁신을 통해 떨어진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린 민수홍 (주)프론텍 대표이사는 “기업가정신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핵심 키워드를 꼽으라면 사람”이라며 “경영을 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기계와 솔루션이라도 결국 사람이 잘 받아들여야 효과가 나오더라. 어떻게 중노동을 시켜서 직원을 뽑아먹을까 대신 직원이 공정에서 불편하다고 말하는 부분을 해결해주면 생산성이 자연스럽게 오른다”고 이야기했다.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연구그룹(HERI)’의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도 “기업은 사실 사회가 원하는 꿈을 실현하는 곳이고 그 꿈을 달성하고 만들어가는 주체는 직원들이고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업이 직원에게 공감하고 권한을 주고 키워주면 회사가 당연히 잘 되는 것”이라며 “사람성장과 기업성장 사이클이 선순환 할 수 있는 모델이 바로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이라고 말했다.

단, 김기찬 교수가 설명했듯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에서 핵심은 사업성장과 사람성장의 ‘균형’이다. 기업이 사업개발에 치중하면 노사 갈등이 잦아 지속가능한 혁신이 이뤄지기 어렵고 사람중심으로만 운영하면 혁신의 부재로 기업성과가 떨어져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기찬 교수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을 말하지만 사람만 강조하면 장기적으로는 혁신에 실패한다”며 “사람과 사업의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성장 < 사업개발’ 한국기업
균형 위한 사람성장 고민해 봐야

한국의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지수는 어떨까? 사람중심 기업가정신 연구그룹은 2017년 사업중심 기업가정신 지수를 개발해 국제비교 연구를 진행했다. 지수는 사업개발 사이클(비전제시·열정·변화·혁신·탁월성추구)과 사람성장 사이클(권한부여·윤리·평등·동기부여·생태계육성) 총 10개 항목으로 구성됐다.

20개국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사업 중심 저기업가정신’ 국가로 분류됐다. 캄보디아, 아르헨티나, 터키, 스페인 등과 같은 그룹이다. 반면 ‘사람중심 고기업가정신’ 국가는 오스트리아, 싱가포르, 영국 등이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 25점 만점에 사업개발 사이클이 평균(15.56)보다 높은 15.85점, 사람성장 사이클은 평균(14.02)보다 낮은 13.43점이었다. 꼭 기계적 균형을 맞출 필요는 없겠지만 이 결과는 정체된 한국기업이 사람성장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이 그리는 그림은 ‘기업가의 의식혁신(사람중심 기업가정신) → 기업혁신(직원의 동기부여 통한 기업혁신) → 시장성과(기업혁신의 결과를 시장 경쟁력으로 연결해 시장개척)’라는 선순환이다. 그런데 이상적인 선순환 논리가 이해는 되지만 과연 이런 착한기업이 현실에 존재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의시스템’은 이상을 현실로 바꾼 기업이다. 책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에 소개된 여의시스템은 산업용 컴퓨터 전문업체로 1991년 설립됐다. 위기는 2001년 찾아왔다. 매출이 50% 이상 급감한 것이다. 당시 회사의 생존을 위해 직원의 30%를 해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성명기 회장은 해고 대신 미래 성과공유를 제안했다. 앞으로 함께 노력해서 성과가 나면 이익의 25%는 직원, 25%는 주주, 50%는 기업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성과공유에 대해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과공유는 돈을 잘 뿌려준다기보다 직원이 회사와 끝까지 같이 가야 할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성과공유를 잘하는 기업들이 대체로 기술혁신 쪽에서도 답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원을 구조조정의 대상이 아닌 혁신의 주체로 세운 여의시스템은 살아나기 시작했다. ‘회사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직원의 업무 몰입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 결과 2004년 이후 매출은 연평균 20%, 수익은 60%씩 증가했다. 현재 여의시스템은 직원의 몰입이 만든 혁신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장비·시스템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했다. 직원의 동기부여 방법 중 하나인 미래성과공유제가 기업혁신, 나아가 시장성과로 이어진 것이다. 여의시스템은 사람중심 기업가정신이 지속가능한 모델임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