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혁신 중소기업 탐방기] 프론텍에선 매일 혁신이 일어난다
[일터혁신 중소기업 탐방기] 프론텍에선 매일 혁신이 일어난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2.08 05:07
  • 수정 2020.04.13 02: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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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불편 개선하니 생산성 올라
일터혁신은 ‘사건’아닌 ‘과정’

[리포트] 일터혁신 중소기업 프론텍 탐방기

일터혁신은 노동자가 일하고 싶은 일터를 만들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이다. 구체적으로 ‘일터’는 생산이 이루어지는 공간인 작업장을, ‘혁신’은 무언가 바꾸기를 뜻한다. 작업장에서 뭘 바꾸는 걸까? 방법은 다양하다. 일터혁신은 정리정돈부터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환경 개선, 중·고령 인력을 배려한 작업공정 배치, 공정 최적화, 품질관리 방식 변화 등 생산시스템 바꾸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 목표는 기업의 경쟁력 향상과 노동의 질 개선이다. 경쟁력과 노동조건 개선,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일터혁신은 피할 수 없는 선택지인 셈이다. 선택을 피하지 않은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 프론텍은 국내 일터혁신 사례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중소기업이다.

경기도 시흥시 (주)프론텍 전경 ⓒ (주)프론텍
경기도 시흥시 (주)프론텍 전경 ⓒ (주)프론텍


“몸 커졌는데 체력은 부실”

프론텍은 자동차 공구세트와 너트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민경원 회장이 1978년 창업했으며 지금은 아들인 민수홍 대표가 이끌고 있다. 프론텍은 현대·기아자동차 1차 협력사로 2018년 기준 매출액은 445억 원, 영업이익률은 2.3%다. 평범한 중소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였던 프론텍이 일터혁신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민수홍 대표가 취임한 2013년부터였다.

민 대표는 대학을 졸업하던 1999년에 프론텍에 입사해 실무를 경험하고 14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 앉았다. 어깨가 무거웠다. 현대차와 거래를 많이 하다 보니 매출은 급성장했지만 생산성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출이 2009년 201억 원에서 2013년 499억 원으로 늘어나는 동안 영업이익률은 4.4%에서 -1.1%로 떨어졌다. 민 대표는 “몸은 뚱뚱해지는데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며 “회사가 어제 산 것처럼 오늘을 사는 느낌이었다. 이대론 지속가능하지 않겠단 위기감이 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일터혁신의 시작, 외부자원 활용

민수홍 대표는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혁신할 여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론텍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신 민 대표는 외부 자원 활용을 모색했다. 경기중소기업성장지원센터로부터 초기 기술개선과 사업장 혁신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고 시흥여성새로일하기지원본부(이하 새일본부)에서는 구인 과정 등을 지원받았다. 새로운 인사제도 도입과 정부 지원금 신청 과정 등은 노사발전재단의 무료 컨설팅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① 공구세트 조립라인

자동차를 팔 때 트렁크 안에 들어가는 공구세트 조립라인은 프론텍의 골칫거리였다. 완전 자동화 설비였지만 고장이 잦아서였다. 투입 인원 수 대비 생산성 지표인 공정효율은 65% 수준밖에 안 됐다. 2013년에 기술 컨설팅을 맡은 경기중소기업성장지원센터는 공정마다 따로 조립하던 자동 조립라인에서 기계 설비를 들어내고 라인을 하나로 묶는 U자형 셀라인(cell line)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려면 80% 이상을 차지하던 외국인과 일용직 노동자를 내국인 전일제로 대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동 조립라인보다 사람의 손에 더 많이 의존해야 하는 U자형 셀라인으로 바꾸려면 의사소통이 어려운 외국인 노동자나 애사심이 부족하고 숙련도가 낮은 일용직 노동자보다는 책임감이 높고 말도 잘 통하는 내국인 전일제 노동자가 더 적합하다는 판단이었다.

고민하던 민 대표는 연초에 경영자 모임에 참석했다가 새일본부 관계자에게 들었던 경력단절여성 채용이라는 대안에 주목했다. 단, 일과 가정의 양립이 중요한 경력단절여성들은 하루 5~6시간만 일하는 시간선택제를 원했다. 선택지가 없었다. 민 대표는 컨설턴트와 상의해 한 라인에서 먼저 시간선택제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혁신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이 투입된 U자형 셀라인을 운영한 결과 시간당 1인 생산량이 22대에서 37대로 뛰었다. 이들은 목표 생산량을 달성하고 시간 내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기에 전일제 노동자들이 8시간 동안 하던 일을 5시간 안에 끝마칠 수 있었다.

② 너트 생산 단조라인

일터혁신은 너트 생산 단조라인으로 이어졌다. 쇠를 두들겨 너트를 만드는 단조라인은 조립라인에 비해 복잡한 기계 설비를 다뤄야 한다. 쇳덩어리를 설비에 체결하고 주문받은 대로 너트가 생산되도록 기술자가 설비를 세팅하면 기계가 너트를 찍어낸다. 특히 초반에 설비를 세팅하는 과정은 암묵지를 가진 숙련 기술자 몇 명에게 의존해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론텍은 경험이 부족한 초보 기술자도 해낼 수 있도록 단조 설비 세팅 작업을 표준화했고 근력이 약한 여성노동자도 다룰 수 있도록 새 기계를 주문했다. 현재 단조라인엔 3개월 동안 기계 다루는 법을 교육받은 여성노동자 3명이 일하고 있다.

프론텍은 이러한 일터혁신 경험을 ‘사건’이 아닌 ‘과정’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프론텍은 현장개선반을 만들었다. 현장개선요원은 3명으로 여성가족부에서 지원하는 제조혁신과정 교육을 이수했다. 시간제 여성노동자인 이들은 채용된 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접 라인에서 생산활동을 했고 부족한 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외부 컨설턴트를 통해 지금도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은 5시간 동안 현장개선만을 위해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노동자들에게 뭐가 불편한지 묻고 직접 발견하며 개선사항을 찾고 개선안을 만들어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 덕분에 프론텍에선 일터혁신이 매일 일어난다.

프론텍의 노력은 성과로도 드러났다. 생산성은 개선 전과 비교해 59%가 향상됐고 불량률은 67%나 줄어들었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일터혁신 과정을 거치다 보니 2013년에는 전 공정 통합 생산관리시스템을 구축해 생산성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 성과를 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 2014년에는 고용창출 공로로 고용노동부 장관상, 2016년에는 남녀고용평등에 힘쓴 공로로 산업철탑훈장을 수상했다.

스마트공장으로 바뀌고 있는 프론텍의 일터 ⓒ (주)프론텍
스마트공장으로 바뀌고 있는 프론텍의 일터 ⓒ (주)프론텍

튼튼한 체력 바탕으로
똑똑한 일터 만들기

작업장 바꾸기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프론텍의 다음 발걸음은 ‘스마트공장’이었다. 2015년 정부가 스마트공장 추진단을 발족하면서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대표이사의 열린 경영 마인드와 생산성은 향상됐지만 아직 미래 경쟁력은 갖추기엔 부족하다는 판단이 근거였다.

공장의 스마트화는 기존 설비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더 똑똑한 설비로 바꿔나가는 것을 말한다. 프론텍은 스마트공장 구축을 결정한 후 공구 조립라인과 단조 가공라인에 필요한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적용했다. 먼저 공정별 생산 계획과 실적 관리, 물류시스템 최적화 등을 지원하는 제조실행시스템(MES)을 도입했다.

공구세트를 만드는 생산라인에는 라인별로 ‘저울 실시간 관제시스템’도 설치했다. 예전엔 작업자가 공구세트 가방을 살피며 견인고리, 스패너, 드라이버 등 빠진 부품이 없는지 수작업 검사를 했는데 제품이 누락되는 문제가 종종 발생했다. 지금은 디지털 치수 측정기와 중량검증 장비가 검사를 대신해 작업자가 공구세트 가방을 저울 위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저울이 자동으로 무게를 측정해 완성품 개수까지 체크해줘 작업 상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다. 프론텍은 MES 덕분에 불량률을 80%나 줄였다.

MES를 도입한 프론텍의 일터혁신은 물류창고의 자동화 등 스마트공장 고도화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원칙이 있다. 단순노무에서 작업관리자로 전환하면서 일자리의 질이 좋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노동자가 공장의 스마트화를 좋아할 거란 전제도 배제한다. 민 대표는 “내가 볼 때 이렇게 바꿔주면 행복할 것 같아도 적응하기 어려운 60대 노동자는 아닐 수 있다”며 “전환배치할 때 고령 노동자는 대화해서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직무를 바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생산성 향상
결국 사람에서 나온다

프론텍은 스마트공장 다음으로 스마트워크도 추진하고 있다. 스마트워크는 쉽게 말해 노동자들이 불편해하는 점을 개선해주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빅데이터라는 똑똑한 기술을 통해 사무직 직원의 업무를 모니터링 한다. 그러면 해당 노동자가 하루에 어떤 일을 하는 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지 데이터가 나온다. 결과값을 토대로 보고서 작성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보고서 작성 업무 중 불필요한 부분을 줄여주는 거다. ‘이 보고서는 구두 보고해도 됩니다’ ‘PPT 작성이 느린 걸 보니 중요한 기능을 잘 모르네요. 기능을 배웁시다’ 이런 식으로 업무 개선활동에 들어간다. 개선활동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다시 데이터로 확인한다. 이 외에도 프론텍은 직원 간 소통과 협업을 원활하게 하는 그룹웨어 도입, 화상회의 일상화 등 일을 똑똑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진행 중이다.

민수홍 대표는 이러한 일터혁신 과정을 통해 사람을 중심으로 일터를 개선해나가면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고 이야기한다. 민 대표는 “사람이 불편한 걸 해결해주면 생산성이 오른다”며 “회사가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성장도 필요하다. 그래야 함께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이 성장해야 기업도 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특히 일터를 바꾸는 과정에서 “사람 마음이 다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프론텍 탐방을 마치고 사내카페인 ‘프론테리아’ 앞을 지날 때였다. 출퇴근 차량을 운영하며 경비일도 보는 중년 남성 직원이 “차라도 한 잔 더 하고 가시라”며 카페 안으로 안내했다. 프론텍 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 직원들이 한숨 돌리며 쉬는 작은 공간이었다. 자리에 앉아 물었다. 민 대표가 진짜 사람중심으로 일터를 바꾸고 있는 것이 맞느냐고. 그는 “대표님은 절대로 누구한테든 함부로 하는 게 없다. 내가 말단인데 상무님, 부사장님, 대리님도 다 나한테 인상 한 번 쓰는 걸 못 봤다”고 답했다. 진짜냐고 되묻자 “일한 지 3년이 됐는데 대표님이 한 번도 ‘이렇게 해주십시오’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업을 하던 그는 이제 정년까지 프론텍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면 출근하려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 생활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