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우체국 전진일씨의 .하.루.
은평우체국 전진일씨의 .하.루.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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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전령사’는 이제 옛말
각종 고지서, 청구서에 ‘불청객’으로 전락


‘우체부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산 지 벌써 22년이 되어 간다는 전진일(50)씨. 집배원 90명 중 절반이 격주로 출근을 하는 토요일. 공식적인 출근시간은 8시지만 7시를 채 넘기자마자 나와서 그날 돌릴 우편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날 돌려야 하는 것들은 통상우편물을 제외한 빠른 등기와 빠른 우편물, 특급우편과 같이 ‘빨리’ 자가 붙은 것들이다.


“주5일 근무가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는 말은 여기서 안 통해요. 쉬는 사람 몫을 나눠서 하니까요. 게다가 주말에 접수된 것들 때문에 월요일, 화요일엔 우편물에 쌓여서 죽어납니다”라고 호소하는 전진일씨는 ‘두 다리 쭉 뻗은’ 주말을 보내고 싶다고 한다.
“저렇게 하느니 차라리 주5일 근무제를 없애는 게 더 나아요.”

 

“힘들어도 옛날이 좋았지”
편지 한 통에 울고 웃던 시절, 자전거를 타고 한 손에는 편지를 든‘우체부 아저씨’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 때가 있었다. “한창 사우디에 일하러 간 사람들 많았을 때는 남편 소식만 기다리는 아줌마들이 수두룩했죠. 편지 받고 기뻐하는 아줌마들 볼 때 덩달아 저도 기분이 흐뭇했는데 말예요.”


당시를 회상하며 환한 웃음을 짓는 전진일 씨는 그때가 많이 그립다고 한다. 한 동네를 계속 돌다보면 그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누가 아픈지, 돌잔치는 언제인지 아는 것쯤은 쉬운 일이었다. 편지를 돌리다가 들어가 밥도 먹고, 힘들면 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도 못 꾸는 먼 옛날이야기. 인심 좋던 상가 아저씨들도 먹고 살기 힘들다고 울상이고, 숫자만 빽빽이 적힌 서류봉투를 쳐다보고 있으면 일할 맛도 자꾸 줄어든다고.


우편번호 책자는 점점 없어지고 이메일 주소록만이 가득한 요즘, 손으로 편지를 쓰는 사람들을 찾아보기란 힘들다.
“내 딸이 대학생인데 도통 편지 쓰는 걸 못 봤어요. 받는 것도 없고. 집에 오는 거라곤 죄다 고지서에 통지서, 광고물뿐이죠. 은평우체국에 있는 우편물도 99%가 그런 종류라고 보면 되요.”


IMF 전후로 카드와 핸드폰이 쏟아지면서 각종 요금안내 책자와 연체통지서가 주요 우편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 홈쇼핑의 등장으로 광고책자 발송이 크게 늘어나고 백화점, 대형 할인마트 등 온갖 광고물 일색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편물은 하루평균 1500만 통으로, 2003년 대비 5%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계속해서 늘어나는 광고물 때문에 오히려 우편물이 많아졌다고 느끼고 있다. 


특히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과 경기지역은 꾸준히 우편물이 증가하고 있다. 건물이 계속 높아지면서 우편물량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셈. 웬만한 대형 빌딩에는 몇 만통씩 차 한 대 분량이 들어가기도 한다. 


재개발, 재건축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은평구도 우편물이 다른 구에 비해 많은 편에 속한다. 2007년까지 입주 예정이거나 분양된 곳이 1만5천 세대, 2008년까지 또 1만5천 세대로 2년에 걸쳐 약3만 세대가 유입될 예정이다. 이전이나 이사를 했을 경우 우편물량이 바로 반송되는 것이 아니라 이전된 곳으로 이동을 시켜 줘야 하기 때문에 여간 손가는 일이 아니다. 또 은평구는 25개 구역 중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한 곳으로 대기업이나 대형 건물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가가호호 방문을 해야 한다는 전씨는 경제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행동도 많이 달라졌다고 얘기한다.


“법원 통지서나 돈 달라는 종이만 계속 오니까 집배원 보면 심지어 도망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기분 나쁘다고 쓰레기통에 우편물을 버리는 사람도 있죠. 이렇게 세상 살기가 팍팍해서야… 그러지 말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집배원이 보는 앞에서만큼은 ‘제발’ 그러지 않도록 부탁한다는 말을 거듭 강조한다. 그래도 전씨가 22년간 집배원 생활을 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직접 기쁜 소식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항상 가까운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다.


“전에 개인택시 면허증이 나온 걸 갖다 준 적이 있었죠. 그 아저씨가 어찌나 기뻐하던지 직장까지 쫓아와서는 밥을 사준다고 난리를 치는데…(웃음)”라며 “이런 이들이 있어서 요즘같은 세상에 그나마 일할 맛이 난다”고.

 

쉬면서 일하고 싶어
집배원 1인당 하루에 돌리는 우편물량은 적게는 1500통에서 많게
는 4000통까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특히 각종 고지서가 나오는 중순경부터는 ‘비상시기’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이들의 우편물을 무게로 환산해 보면 약 100kg정도로, 하루평균 약 600~700가구에 들어가는 분량이다.


하루 정해진 우편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돌려야 하는 이들에게 잠시 잠깐 쉰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전씨는 점심시간에 맞춰 식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등기의 경우 고객이 자신들의 시간에 맞춰 달라고 요구하면 언제든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그의 일이다. 밥을 시켜놓고 가까운 곳에 한 곳이라도 더 돌리고 와서는 겨우 3분에서 5분간 ‘코로 들어가는’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집배원들 중에 위장병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말하는 전씨 또한 위장병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다.


“돌릴 게 많으니 시간이 돈이죠”라고 말하는 동료 P씨(34세)는 특급우편물을 싣고 주로 차로 이동을 한다. 골목골목 급커브는 물론, 옆에서 말 붙이기가 힘들 정도로 차에 타고 있지 않을 동안은 계속 뛰어 다닌다. 그는 입사한 이래 7kg이나 살이 빠졌다. 갖다 줘야 하는 건 많고 시간은 부족하니 동분서주하다 보면 접촉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작년 10월 이후 한 달에 2~3명 꼴로 사고가 일어났다는 은평우체국 집배실. 12월에는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이도 있었다. 현재 물량을 돌리기에는 90명의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 94명이었던 인원이 명예퇴직, 퇴사 등으로 줄어들었지만 빈 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몇 년간 90명으로 지속되고 있다. 게다가 평균 연령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점점 고령화되어 체력적으로도 물량을 감당하기 힘들 때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한테 미안하죠. 공동으로 작업해야 하는 일이 있으면 일찍 들어와 줘야 하는데 30이나 50이나 양은 똑같아도 저는 힘이 딸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니 원…” 기자가 물어보는 시간에도 일하고 있을 후배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전씨의 고백이다.

 

휴가 쓰면 다른 사람들 일 많아져 미안해
보기만 해도 삭막해지는 서류봉투들만이 집배원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새롭게 생겨나는 제도들은 이들에게는 업무 과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픽업제도’가 대표적인 것. 우편을 받을 고객이 시간을 정해주면 집배원이 그 시간에 맞춰서 물건을 갖다 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는 모든 고객과 시간을 맞추기도 힘들뿐더러, 일하고 있던 동선에서 벗어나는 장소인 경우 길에서 시간을 버릴 때가 허다하다. 또 요즘에 골목마다 ‘00로’ ‘00길’ 같은 길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일을 하는데 도움을 전혀 주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주소를 헷갈리게 하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전진일 씨는 “인력도 부족한데 택배도 해야 하고, 편지도 돌려야 하고, 고객들이나 사무실에서 전화 올까봐 신경도 써야 하고… 몸이 몇 개인지 모르겠어요”라며 불만을 털어 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직원들이 휴가 한 번 제대로 못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휴가 한 번 내면 자리가 비는 사람의 일을 동료들이 맡아서 해야 하니 미안해서 도저히 갈 엄두를 낼 수가 없다.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은 더더욱 생각하기 어렵다.


오토바이를 타러 나가기 전 각종 고지서와 통지서를 차곡차곡 쌓아들고 ‘오늘은 또 누가 돈 내라는 청구서를 보고 가슴 아파 할는지…’ 약도를 챙겨들고, PDA기에 등기번호를 옮겨 보내고, 큰 가방 대신 작은 가방을 어깨에 맨 전씨의 어깨에는 예전에 없던 짐이 하나 더 생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