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함께 '기생충'을 만든 사람들
봉준호와 함께 '기생충'을 만든 사람들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2.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버티기’ 공식에 많은 영화인들 영화계 떠나"
"예산에 따라 노동환경 낮아질 수 있다는 인식 버릴 때"

'기생충'이 오스카에서 4관왕을 기록했다. 세계 영화팬들이 봉준호 감독에게 찬사를 보냈다. 무대에 오른 한국 영화인들을 보며 많은 한국인이 감격에 젖었다. 카메라에 담긴 그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반면 '기생충'을 만들었지만 기억되지 못할 사람들도 있다. 감독, 배우, 제작자가 아카데미 시상식 무대에 오르기까지 함께한 현장 스태프들이다. 세계는 ‘Director Bong’의 업적이라며 찬사를 보내지만, '기생충'은 스태프들이 함께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궁상맞은 반지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미술팀, 소품팀은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어 파리‧모기를 끌어들이기도 했다. '기생충'이라는 한국 영화의 역사가 만들어지기까지 함께 했던 영화 스태프들의 현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과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제2의 기생충’을 언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서울 충무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안병호 위원장을 만나 한국영화 산업과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Q.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받으면서 감독, 배우, 제작자들이 시상식 무대에서 축하를 받았다. 반면 함께 일한 현장 스태프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시상식 무대에 오르지 못하는 영화 스태프들의 노고를 얘기해 달라.

제작사가 정한 날짜와 시간에 맞춰서 촬영팀, 조명팀, 소품팀 등이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또 감독이 구현하는 그림을 제대로 나오게 하려고 각자 노력을 다한다. 특히 '기생충'에는 집안이 배경으로 많이 나온다. 실내 장면이 많으면 미술팀이 바빠진다. 콘티에 맞게 공간을 세팅하려고 미리 현장에 가는 건 물론이며, 프리프로덕션(현장 촬영을 위한 준비 단계) 때도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먼저 일 한다. 이번에 미술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는데, 프로덕션 단계에만 작업하는 팀들보다는 더 오래 일하면서 영화의 보이지 않은 부분에 많이 기여했을 거다.

Q. 스태프들이 기여한 만큼 보상을 받고 있는가? 2014년 12월 개봉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영화스태프 처우가 나아졌다는 평이 대체적이다.

동의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했을 뿐인데 처우가 많이 개선됐다. 예전에는 법이 있어도 지켜야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영화가 좋으니까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자는 마음뿐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5년 전부터 근로기준법을 지키면서 일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영화촬영 현장에서도 노동시간을 줄여서 운영하자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 다만, 저예산과 아닌 영화에는 차이가 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Q. 저예산 영화 스태프 처우는 어느 정돈가?

예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다. 주류 영화계에서 노동시간 단축, 임금 상승이 확산되니까, 저예산 영화계에도 시간만큼은 줄여보자는 변화가 이제 막 생겨나고 있다. 설문을 통해서 일부 현장에서는 근로계약서를 썼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Q. 지난해 영화배우 윤지혜 씨가 폭로한 '호흡' 촬영장 실태가 단적인 사례 같다.

'호흡'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의 졸업 작품이다. 한국영화아카데미 교육과정 중 ‘장편과정’이란 게 있다. 장편영화, 그러니까 상업영화 현장에서 실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게 목표다. 그런데 교육방식에 문제점이 있다. 실무형 인재 양성과는 거리가 멀다. ‘적은 예산으로 좋은 작품 만들기’라는, 저예산 영화의 고질적 문제 원인을 그대로 갖고 있다.

Q. 창작에 대한 열정으로 어려움을 버텨내야 하는 건가.

그렇다. 교육적 의미가 강해서 그런지, 아카데미나 영화진흥위원회부터 일반 상업영화와는 다르게 인식한다. 노동조건을 고려하지 않는다. 저예산으로 잘 만든 영화를 선보여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서 노동시간, 복지 등은 뒤로 미룬다. 교수들도 기본적으로 더 열심히, 더 오래 찍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게 상당히 모순적인 거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곳을 거친 학생‧스태프들이 상업 영화계로 유입된다. 장편과정이 실무를 위한 연습이라면 상업영화에 준하는 기준으로 시간에 맞춰 촬영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기준은 무시하고 ‘열심히 만들어서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 받으면 잘 된 것’이라고 포장한다. 창작을 위해서라면 노동조건이 낮아도 된다는 인식이 남아있으니, 저예산 영화의 처우개선이 더뎌지는 거다.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공공기관 예산이 투입되는데도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다.

Q. 외국은 좀 다른가?

미국 아카데미의 경우, 학생들이 상업영화 현장으로 진출할 걸 염두에 두고 시간을 철저하게 맞춰 교육한다. 노동시간을 지키지 못할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채택하지 않거나, 촬영 스케줄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작업과정을 수정하라고 요구한다. 근데 한국은 그런 여과 과정이 없다. 일단 다 쓰고 다 만들도록 한다. 그게 실제 현장과 괴리가 있는 거다. 현장에서는 시간에 맞춰야 하는데 교육기관은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장과 괴리를 만드는 교육이 되고 있다. 노동권 측면에서도, 영화교육으로서도 적합하지 않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노동시간 준수를 무시하면 제대로 된 교육이라 하기 어렵다.

Q. 학생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영화교육은 대부분 연출이나 '메인롤'에 국한돼있다. 하부역할에 대한 설명은 없고, 메인롤 교육만 이뤄지다 보니까 이른바 ‘예술가 정신’을 창작의 전부처럼 여긴다. 배우는 사람은 ‘영화 하려면 배고파도 참아야지’, ‘좋은 창작물을 만든 선배들은 힘들게 작업한다’는 왜곡된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도 노동시간, 노동권에 대해 깊이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Q.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실시한 '2019년 한국영화 근로계약 및 노동시간 실태조사'에 관한 질문이다. 계약형태를 보면 ‘도급계약’, ‘근로계약’, ‘계약없음’ 세 가지로 분류했다. 현장에서 어떤 차별을 겪게 되나?

임금, 노동시간에 큰 차이가 생긴다. ‘근로계약’은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기준법에 부합하는 근로계약을 한 경우다. ‘도급계약’은 예전에 많이 쓰던 계약방식이다. 임금은 월급제로 받지 않는다. 촬영 전에 반을 받고 촬영이 끝나면 나머지 임금을 받는다. 촬영이 끝나고 임금체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계약서도 용역계약서를 사용한다. 근로기준법에서 정하고 있는 4대 보험, 연장수당 등을 적용받지 못한다. 반면 부담은 크다. 맡은 일에 대한 책임을 모두 당사자가 져야 한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너는 영화에 혼신을 다해야 해!” 이런 거다. 한마디로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계약서지, 노동조건이 기술된 건 아니다. ‘계약없음’은 팀 단위로 계약하다 보니 생긴다. 예를 들어, 분장팀을 꾸리는 팀장이 “너 나랑 같이 일하자” 말하면 하위 조수는 근로계약서도 없이 일하는 식이다. 낮은 처우는 물론이고,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못 올리는 경우도 있다. 계약서도 없으니 일을 했다는 증명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위 조수로 일한 사람은 경험한 셈 치는 거다. 가장 좋지 않은 계약이다.

Q. 저예산 영화인 ‘10억 미만 영화’의 계약형태는 도급계약이 46.0%, 계약없음이 35.1%이다.

저예산 영화에 대한 인식 탓이다. ‘자본이 없어도 일단 만들자, 일단 영화를 찍어서 좋은 작품을 만들자’는 목표로 활동한다. 나름의 예술 활동이다. 예술적 가치에만 착안하다 보니 노동조건은 생각조차 않는다. 저예산 영화촬영은 당연히 열악한 것,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저예산 영화 현장에 퍼져있다.

Q. 지난해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 언론 시사회에서 "설국열차, 옥자로 해외 스텝들과 비슷한 형태의 규정을 지키며 작업해왔다. 제가 그렇게 훈련이 된 상태로 한국에 오니 한국에서도 노동 시스템이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라고 했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해외 방식이 무엇인가?

'옥자' 촬영에 할리우드 스태프들이 있던 거로 안다. 할리우드는 영화노동조합 역사가 110년이 넘는다. 영화 스태프 노동조건을 높이는 데 많은 역할을 했다. 할리우드 촬영장에서는 노사 간에 정한 시간 규정을 철저하게 지킨다. 제작사부터 현장 촬영시간과 일정이 정해진 스케줄대로 이행되는지 관리‧감독한다. 현장에서는 특히 조감독 역할이 크다. 전반적인 촬영 스케줄을 관리한다. 감독이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으면, 조감독이 가서 시간을 지키라고 얘기한다. 한국처럼 감독이 되기 위해서 거쳐 가는 단계가 아닌, 현장 스케줄을 철저하게 관리하는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Q.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서비스‧제조인력 감축처럼, 앞으로 영화계에도 기술혁신에 따른 노동환경의 변화가 있을까?

‘콘텐츠의 세부화’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영화‧영상콘텐츠의 유통 경로가 다양해지고 있다.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극장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극장용 영화보다 비용이 적게 드는 영화를 제작하려는 제작자가 많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적지 않은 제작사가 온라인 플랫폼 활로를 확보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예산을 적게 책정하면 인건비를 줄일 가능성이 커진다. 임금이 줄거나 인력이 줄어든다. 노동시간 증가뿐 아니라, 현장 복지 등 노동조건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말한 저예산영화처럼, 영화산업의 고질적 문제가 발생하는 거다. 또한, 영상 제작이 쉬워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전문적이든 비전문적이든 상업적 영상을 제작하는 다양한 현장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할 기준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Q. 영화계 노동자 처우 개선에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안다. 노조가입에 대한 영화 노동자들의 인식은 어떠한가?

예전보다 노조 가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200명에 머물렀던 조합원이 지난 5년 새에 1,000명 가까이 늘었다. 노조가 이룬 노동자 처우개선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다만, 노조 조합원 채용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어서 노조 가입을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Q. 영화감독의 노동자성 인정은 어떻게 생각하나?

다른 영화인들과 다르지 않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Q. 영화산업의 노동권 개선을 가로막는 근본 원인이 뭔가.

예산에 따라 노동조건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인식이다. 노동조건은 노동자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한다. 영화산업에 종사한다고 노동자의 열정만을 요구하는 건 너무 옛날 생각이다. 제작사는 항상 돈이 없다고 얘기하지만, 한 해에도 수백 편의 영화가 제작되고 있지 않은가. 예산이 적다고 노동자가 희생해야 한다면,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노동조건이 예산을 따라간다는 공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인식은 이제 버릴 때도 됐다.

Q. 이른바 ‘제2의 기생충’ 탄생에 노동환경 개선이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물론이다. ‘영화=버티기’라는 공식과 편견이 많은 노동자들을 영화계에서 떠나게 한다. 혹독한 제작 환경을 버텨야만 재능 있는 영화 인재가 되는 건 아니다. 영화를 해도 ‘일반적인 삶’을 누릴 수 있다면, 다양한 스태프들이 영화계에 남아서 좋은 한국영화를 만든다면, ‘제2의 기생충’ 그리고 한국 영화산업 발전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영화가 좋아서 영화계에 뛰어든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이제 “스크린 앞보다 스크린 뒤”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고 활동한다. 노조 위원장이 된 2015년부터 인간적인 영화현장을 만들기 위해서 제작사, 정부기관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왔다. 그가 했던 대부분의 이야기가 이른바 ‘갑’을 향해 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관객인 우리들을 향한 당부를 남겼다.

영화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을 조명하기 마련이다. 먼저 배우, 감독이 드러나고 좀 더 비추면 촬영감독, 미술감독 등 헤드 스태프나 프로듀서가 드러난다. 이른바 ‘메인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 밑을 받치고 있는 사람들은 드러나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스태프도 거창한 축하를 받고 싶어 하진 않는다. 다만, 자기가 기여한 것은 알아주길 바란다. 영화 엔딩 크레딧의 스태프롤에서 그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관객들이 앉아서 봐주시면 좋겠다. 한국 영화는 외국 영화에 비해 스태프롤 길이도 짧은 편이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영화를 본다는 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살피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