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정치] 김해정 "노동의 가치는 위아래 없다는 인식변화 만들 것"
[노동+정치] 김해정 "노동의 가치는 위아래 없다는 인식변화 만들 것"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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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해정 광주시 송정초등학교 급식노동자·학비노조 광주지부 광산1지회장

김해정(44·사진) 학교비정규직 급식노동자가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로 21대 총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위원장 박미향, 이하 학비노조) 광주지부 교육선전국장이자 광산1지회장인 그는 "더 적은 급여를 받아서, 더 배우지 않아서 노동의 가치마저도 절반짜리 취급하는 대한민국을, 국민의 고통은 외면한 채 허울 좋은 말잔치와 권력 나눠먹기를 위한 이합집산에 여념 없는 국회를 싹 바꾸고 싶다"며 출마의 뜻을 밝혔다. 

이날 김해정 지회장은 주요 공약으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의 온전한 정규직화 ▲40만 공무직 법제화 ▲파견법 폐지 ▲기간제법 사용사유 제한 ▲불안정고용수당 신설 ▲기업살인 처벌법 제정 등을 내세웠다. 

13일 오전 국회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마친 김해정 지회장을 만났다. 그는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비정규직노동자로서 국회에 들어가 노동의 가치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인식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해정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국회에 들어가 노동의 가치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인식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김해정 민중당 비례대표 후보가 '참여와혁신'과 인터뷰에서 "국회에 들어가 노동의 가치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인식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 21대 총선 출마 배경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가 국회에 들어가 활동했으면 좋겠다는 학비노조 전체의 염원이 있었다. 이런 마음을 모아 이번 총선을 앞두고 학비노조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간부나 투쟁의 전설을 가진 유명한 분보다 현장 조합원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냈으면 좋겠다는 방향이 정해졌다. 그러기 위해 현장에서 뛰는 젊은 조합원이 국회로 가서 생생한 목소리를 내보자는 조직의 제안을 받아 총선 출마를 결심하게 됐다. 

- 최근 노동자들의 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민중당 비례후보로서 '김해정'의 장점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인 것 자체다. 나는 언변이 좋거나 좋은 학벌을 가진 건 아니다. 그렇지만 내겐 학비노조의 힘이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0년간 투쟁 결과 이제 1년마다 해고되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되고, 교장한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돈을 주고 일하는 상황도 없다. 어떤 어려움도 6만 조합원이 힘을 모아서 돌파해왔던 위력이 내가 가진 강점이다. 

- 국회에 들어가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동의 가치는 같다, 우리 모두 똑같이 귀한 노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 광주에서 코로나19 대처 관련해 학교마다 공문이 내려왔다. 그런데 비정규직에겐 공문이 안 오더라. 비정규직이 법과 제도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니 사람들의 머릿속에도 우리는 고민의 대상이 아니구나 싶더라.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매년 삭발하고, 단식하고, 거리에서 자면서 죽을 듯이 투쟁해왔지만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를 근본적으로 없애지 않는 한 임금차이 55%만큼 노동도 반쪽짜리 취급받는 현실은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번 총선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은? 
슬로건이 확정된 건 아닌데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국민의 국회로 만들어 보고 싶다. 

- 주요공약 중 어떤 공약을 가장 먼저 추진하고 싶나? 
내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다 보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온전한 정규직화다. 그리고 애초에 정규직-비정규직 이중구조를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 파견법 폐지와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기간제법 개정도 중요하다.

- 사실 학비노조에서는 잘 알겠지만 그 외에는 지회장을 잘 모른다. 
학비노조에서도 모르는 분이 많다.(웃음) 

- 그래서 걸어왔던 길 중 의미 있는 장면들이 궁금하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광주에서 미닫이문 레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다. 일을 하면서 결혼도 했다. 그런데 30년이 넘은 회사였지만 당시에 육아휴직을 쓴 여성노동자가 한 명도 없었다. 노조가 없었으니까. 그런 환경에서 내가 노조를 만들고 나서 그 회사에서 첫 육아휴직을 쓴 노동자가 됐다.

- 노조 창립 멤버였나? 
맞다. IMF 이후 경기가 어렵다는 이유로 당시 회사에서 상여금을 다 삭감하는 등 노동자들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노조를 만들었다. 내가 첫 육아휴직을 쓴 이후로 여성노동자들이 당연하게 육아휴직을 썼다. 그때 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주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을 많이 느꼈다.  

- 그 회사에는 계속 안 다닌 건가?
출산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이 단절됐다가 공채를 통해 학교에 급식조리원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노조가 꼭 필요하다는 경험이 있었기에 학비노조 활동도 같이했다.
 
- 학비노조 활동하면서 기억나는 장면은?
2012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첫 파업날이었다. 그날 아침 9시에 광주역 앞에 모이기로 했는데 10분 전까지도 조합원이 아무도 안 나타나는 거다. 그래서 '이 파업 되는 거야?' 불안해하고 있었는데 15분 만에 광주역 광장이 다 찼다. 그 장면을 보면서 '학교에서 유령 같은 우리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구나' '이런 시대가 왔구나' 느꼈던 감동이 오래 남아 있다. 남들이 보기엔 별거 아닌 소소한 기억일지 몰라도 내겐 굉장히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어려운 순간에도 조합원들이 늘 답을 찾아줄 거라는 확신이 생겼고 우리 조합원들은 늘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해준 사건이었다. 

 - 박미향 위원장한테 물어봤더니 "늘 긍정적이고 훌륭한 중재자"라고 평가하더라. 
중재를 좀 하는 편이다.(웃음) 아무래도 노조 활동을 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딪히는 일이 있고 본인 의도와 다르게 의사를 잘 전달하지 못하는 조합원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합원들 입장을 고려해 중재하다 보니까 '친절한 교육국장' '민원 잘 받아주는 교육국장'이라고 불러준다. 주말에도 쉴 새 없이 민원전화를 받고 있다. 

- 마지막으로 노동정치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나? 
말했듯이 가진 자-못 가진 자, 배운 자-못 배운 자 상관없이 노동의 가치에는 위아래가 없다는 인식 변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교육공무직 법제화 투쟁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공시생들이 공정하지 못하다며 우리의 투쟁을 반대했을 때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밥 짓는 노동자는 차별받아도 되는 사람들, 어렵고 힘들게 살아도 되는 사람들, 왜? 안 배웠고 노력을 많이 안 했으니까. 이 같은 노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학습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