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우의 부감쇼트] 숙명여대를 생각한다
[임동우의 부감쇼트] 숙명여대를 생각한다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2.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른 말로 버즈 아이 뷰 쇼트(bird’s eye view shot).
보통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싶습니다.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임동우 기자
dwlim@laborplus.co.kr

지난 1월 말, 경복궁 어귀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몇 개월 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들, 1년 넘게 못 보던 얼굴들이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13인치 노트북만큼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의자를 여댓 개 끌어 앉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와 함께 잔을 기울였고, 싱글몰트 위스키는 향이 좋았지만 비쌌다. ‘싱글’이라는 단어가 왠지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친구들은 위스키처럼 홀로 꿋꿋이 숙성되어가고 있었다.

한 친구와 명함을 나눴다. 나지막이, 기자가 되겠다는 내 말을 기억했던 친구가 나를 축하해줬다. 그러면서 주섬주섬 지갑에서 무언가 꺼내들었다. 나도 자랑할 게 있다고, 장장 1년을 고생하여 쟁취한 것이 있다고,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친구가 지갑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주민등록증이었고,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1’은 ‘2’로 바뀌어 있었다.

친구는 3년 전 아는 '형'이었다가, 아는 '누나'가 되었다. 친구가 처음으로 사실을 털어놨을 때, 우리는 친구를 ‘누나(혹은 언니)’라 부르기로 했다. 친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집안에서도, 사회에서도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기 위해, 존재가 딛고 설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묵묵하게 싸웠다. 그리고 3년 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바뀌었다며 자랑하는 친구가 나는 자랑스러웠다.

이번 숙명여대 트랜스젠더 입학 관련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혐오가 가득하다. 혐오를 표하는 이들의 발언을 영화 <기생충> 대사를 인용하여 얘기하자면 ‘선 넘지 말라’는 거다.

최근 논란 속에서 숙명여대 인권동아리 학생들이 입학을 지지하는 대자보를 올리자, ‘래디컬’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가장 약자인 생물학적 여성의 고통과 공포, 두려움에는 공감하지 않으면서 생물학적 남성인 트랜스젠더의 감정에만 공감하는 당신들이야말로 여성혐오자’라며 맞대응했다.

‘급진(Radical)’은 동력을 얻기 위해 배타적 대상을 소모해야 한다. 대상을 소모하면서 그들만의 네트워크를 결속시킨다. 성조기와 태극기가 휘날리는 광화문에서도, 이번 숙명여대에 입학하려 했던 트랜스젠더 학생에게 던진 말들에서도 혐오가 보인다. 누군가를 혐오하면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 역으로 차별을 행하는 인권신장이 어디까지 사회적 효용성을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 거듭된다.

지난 역사 속에서 집단의 주체성이 공포에 지배당했을 때, 사회적으로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세시대 마녀사냥도, 1950년대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즘도, 2018년 이슬람 난민혐오에서도 쉽게 이성을 잃고 소모시킬 대상을 찾았다. 주관적 공포를 너무나 쉽게 실재(實在)로 인식하면서 많은 이들이 무고한 사냥감이 됐다.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지역사회 조직화로 유명한 사울 알린스키는 ‘급진’이 “내가 원하는 현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타협적이고 허구적인 이상보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실용’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폭력 사태 이후 폭력을 목격한 운동가들이 “여전히 우리가 현 체제 내부에서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미쳐버려서 폭탄을 투척하라. 하지만 그 방법은 사람들을 우파로 돌아서게 만들 것이다.”

인류는 각기 다른 종착지에 도착하기 위해, 같은 기차를 타고 달리는 공동체다. 나는 그 기차의 좌석 독점을 위해 폭탄이 던져지길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기차의 승차권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