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추모제에서 만난 미래
[박완순의 얼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추모제에서 만난 미래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0.02.19 19:16
  • 수정 2020.02.20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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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지난 17일과 18일, 철도지하철노동자들의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17주기 추모제를 동행 취재했다.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기억 공간에서 화마가 휩쓸고 간 그날의 참혹한 화재 흔적을 보고, 대구지하철노동자로부터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화재 전동차 상황을 몸으로 느꼈고, 아직 치유되지 않은 유가족들의 슬픔에 대해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모 행사에 왔던 젊은 철도지하철노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물었던 게 있다. 2003년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냐.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 아니면 중학교 1학년 쯤 됐던 그들은 TV와 신문에서 본 검은 연기로 그날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나 또한 그랬다. 한 컷의 이미지로 기억될 뿐 오감과 생각을 동원한 기억은 없었다. 어찌 보면 이번 추모제 동행 취재로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 대해 ‘처음’ 안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며 내내 생각했던 것은 왜 나는 그 때를 한 컷의 이미지로 밖에 어렴풋이 기억하지 못할까였다. 관련해 동료기자와 이야기도 나눴다. 내린 결론은 너무 어렸다는 것이었다. 무책임한 결론일 수도 있지만 그 때 나는 너무 어려 내 세계관의 크기가 작았다. 나는 그 때 내가 살고 있던 고향, 그것도 어느 시의 아주 일부분인 동 정도가 내가 인지할 수 있었던 공동체의 크기였다. 그 때 나는 대구라는 도시를 나의 공동체가 아닌, 쉽게 말해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아닌 딴 나라 이야기로 느꼈을 것이다.

사람은 자연스레 성장하면서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관, 공동체의 크기가 커진다. 점점 커지면서 나와 수많은 타인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커가면서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 이제야 나는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를 ‘사회적 참사’로 바라본 것이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자랐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배타적인 태도, 이기주의적인 태도, 그것들로 무장해 폭력적인 태도를 우리는 줄곧 목격하기 때문이다.

이번 추모제에서도 목격했고 들었다. 팔공산 자락에 만들어진 추모지에는 팔공산 상인들의 플랜카드가 걸려있었고, 갈등을 중재해야 할 지방 정부나 국가 기관은 갈팡질팡하거나 때로는 적절하지 못한 태도를 취했다. 이해 관계자들이 그러한 태도들이다보니 애초에 제대로 된 추모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7년 째 유가족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의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감수성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최근 우리 사회는 스스로가 감수성 부족 사회라는 것을 고발하듯이 ‘○○감수성의 필요’라는 문구의 키워드가 유행이다. 감수성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다. 맞다. 나를 둘러싼 타인들의 세계가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고 느껴야 나와 수많은 타인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를 안다.

감수성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다가 재밌는 사실도 하나 알았다. 감수성의 반의어가 자발성이었다. 자발성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남의 교시나 영향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기 내부의 원인과 힘에 의하여 사고나 행위가 이루어지는 특성’이다.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를 하는 것이다.

‘감수성’과 ‘자발성’ 반의의 관계를 가진 두 단어를 바라보니 감수성 부족 사회에 감수성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자발성도 길러야 할 것 같다. 나를 둘러싼 타인들의 세계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하는 능력, 해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사고하는 자발성에 의해 가능하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자기 내부의 원인이 발생하려면 외부 세계의 신호를 민감하게 수신해야 한다.

돌아보면 대한민국 사회는 사회적 참사를 겪어왔다. 대표적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있고,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있고, 세월호 참사가 있고, 구의역 참사가 있고, 김용균 청년 노동자 참사가 있고. 참사는 비단 황망히 떠난 사람들이 많아서가 아니다. 비참하고 끔직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거기에 ‘사회적’이라는 말을 붙이는 건 사회 구조에서 발생한 인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회적 참사의 시간을 관통해 온 대한민국은 교훈을 얻고 성장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랬더라면 사회적 참사는 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나와 연결된 수많은 타인들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읽지 못하고 스스로 사고하지 못해서, 감수성과 자발성이 발현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감수성과 자발성에 대해 깊이 배우거나 생각하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약간 절망적이었다.

지난 17일과 18일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추모제에 어린 아이가 함께 했다. 나는 어땠냐고 물었다. 어린 아이 특유의 천진한 목소리로 엉뚱하고 관련 없는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나에게 “왜 요자를 붙여요?”라고 물었다. 우물쭈물해 하던 찰나, 그 옆에 있던 아버지가 아이에게 대신 답했다. “우리 ○○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줘서 그래요. 나이가 어리다고 반말하는 태도는...” 끝은 잘 들리지 않았다.

어린 아이가 대구지하철 화재참사에 대해 느낀 점을 말하지는 못했을 뿐 저런 아버지와 저런 설명이라면 충분히 스스로 느낀 점이 있을 것이라 확신이 생겼다. 그런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약간의 절망감도 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