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오세윤
[언박싱] 이 주의 인물 : 오세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2.22 00:00
  • 수정 2020.02.21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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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 : #민주노총 #정기대대 #소신발언 #선전홍보 #개혁

민주주의는 체력전이었습니다. 지난 17일 KBS아레나 홀에서 열린 민주노총 제70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는 대의원들의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과 토론이 벌어져 장장 6시간이나 대회가 진행이 됐죠(사실 이번 대의원대회는 빨리 끝난 축에 속합니다).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공동성명(네이버지회) 지회장은 이날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할 말이 많았습니다. 질의 한 번에 약 3분의 시간이 주어지는데 오세윤 지회장은 5분을 넘기고도 할 말을 끝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는 ‘민주노총의 선전홍보’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소신 발언을 이어 갔습니다. 5분 남짓 질의로 모두 말하지 못했던 오세윤 지회장의 생각을 17일 대의원대회 현장에서 물어봤습니다.

2월 17일 민주노총 제70차 정기대의원대회 현장에서 오세윤 화섬식품노조 공동성명 지회장. ⓒ 참여와혁신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정기대의원대회는 이번에 처음 참여하시는 건가요?

네. 임시대의원대회는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정기대의원대회는 처음입니다.

어쩌다보니 오늘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단일발언 기준 최장시간 발언자가 된 것 같아요. 5분 넘게 발언을 하셨는데.

처음이라서 3분 시간제한이 있는 줄 몰랐어요. 사실 원래 더 길게 준비하려고 했었는데(웃음). 중간에 자르고 그래서 급해지니 미처 다 말을 못했어요.

발언에서 선전홍보의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평소에 민주노총의 선전홍보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요?

일단 조직사업 중심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조직사업이 중요하지만 선전홍보도 중요한 영역이잖아요? 민주노총이 생기고 할 때야 집회해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언론이나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주고 이슈화가 됐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선전홍보 사업이 힘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지난 2년간 노동조합을 활동하면서 든 생각인가요?

그렇죠. 저도 민주노총에 들어오기 전에는 보통 사람이 민주노총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 있었죠.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보니까 되게 옳은 일을 하고 있었어요. 사회적 약자나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민주노총이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선전홍보 역량을 키우면 사람들에게 민주노총의 좋은 활동과 생각을 훨씬 빠르게 전달하고, 동의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안 되고 있다는 생각이죠.

노동조합 활동을 하기 전에 민주노총에 대한 이미지가 어땠나요?

사실 그냥 크게 관심이 없지 않아요?(웃음) 그냥 뭔가 좋은 일은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조금 과격한 것 같다는 느낌이 좀 있었죠. 사실 그 모습으로만 비춰지니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노총에 대한 오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민주노총에서 주장하는 대부분이 노동조합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거예요. 비정규직 철폐나 안전한 일터를 만들겠다는 것,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도요. 사실 최저임금을 적용 받는 사람들 중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사람이 더 많을 거예요. 노조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노조할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노조를 할 수 있게 하자는 거잖아요?

그런데 언론에서는 ‘기득권 챙기려고 한다’는 프레임을 짜는 거죠.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당연히 단위사업장에서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죠. 사회적으로는 배제된 사람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거잖아요? 그게 전혀 전달이 안 되는 거죠. 우리만 알고 있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노동절이나 11월에도 수시로 모이는데, 그렇게 모여도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잖아요? 민주노총이 누군가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걸 사람들이 모르는 상황인데, 단지 ‘왜 이렇게 몰라주지?’, ‘모르는 사람이 이상한 거야’, ‘우리 노동을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나쁜 거야’, ‘그냥 우리는 옳을 걸 하니까 하던 대로 하기만 돼’라고 생각하는 건 운동하는 사람들의 자기만족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결과를 내려면 선전홍보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한다고 봐요. 특히 지금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매체가 많잖아요? 매체를 효과적으로 쓸 수 있고, 전문가를 모셔서 이미지도 바꾸고 했으면 좋겠어요. 질의에서 말하지 못한 부분이 조직사업을 맡은 분은 20년, 30년 지속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고, 조직적으로 그분들에게 힘을 실어 줘요. 그런데 과연 우리 민주노총은 선전홍보사업을 맡은 분들에게 전문적인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을 주는가. 그냥 조직하는 분들이 돌아가면서 관성적으로 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죠.

일각에서는 여론이 좋다고 투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민을 상대로 설득하는 것과 투쟁에서 이기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는 거죠.

사업장에서의 투쟁과는 다를 것 같아요. 투쟁을 하는 이유가 정치의 영역에도 있잖아요? 집회에 모여서 우리가 옳다는 걸 사람들에게 알려서 정부나 국회가 뭔가를 바꾸길 원하는 거잖아요? 정부와 국회는 득표율을 제일 많이 봐요. 그러면 예를 들어 대시민 선전홍보를 통해서 시민들이 특별연장근로허가를 내리는 게 매우 잘못됐다고 인식한다면 정부가 정책을 중단할 수도 있죠.

구체적으로 민주노총에 어떤 방향이 필요한 것 같나요?

제가 이쪽으로 완전 전문가가 아니고, 또 민주노총의 정확한 조직 진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서 이야기를 해볼게요. 사실 회사에서 어떤 부문에 치중을 한다고 하면 사람을 많이 쓰고 돈을 많이 쓰는 거잖아요? 만약 일할 사람이 부족해서 문제가 나타난다고 하면, 좀 더 많은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를 들어 게임을 잘 만들려고 하는데 1~2년 차 개발자들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충분한 사람이 있는데 못하는 거면 업계나 진짜 회사에서 경력이 많은 분을 모셔 오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어느 정도 노동의식이 있어야겠죠.

사실 선전홍보가 단순히 회사나 사용자하고만 경쟁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품홍보도 있고 정치홍보도 있고요. 한 사람의 하루 일과를 따져보면 하루에 선전 당할 시간이 제한돼 있어요. 제한된 선전홍보 시간 안에서 다양한 분야의 선전홍보 전문가들이랑 경쟁을 해야 해요. 전문적인 역량이 없다면,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선전홍보가 또 하나의 독자적인 영역으로 중요하다’, ‘선전홍보에 힘을 실어 주자’는 의견에 많은 대의원이 동의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발언을 한 거예요. 당장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수정할 수 없는 건 알았지만, 사람들이 선전홍보를 보는 시각이 바뀌어서 민주노총 중앙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요.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질의 중에 ‘민주노총이 선전홍보에 최선의 노력을 한다지만, 경쟁자들은 기차나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다. 최선을 다했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말 할 수 있냐’는 취지의 발언이 인상 깊었어요.

선전홍보하시는 분들이 되게 열심히 하실 거예요. 주력 언론에 실리게 하는 것도 있지만, 지금은 유튜브도 있고 채널이 다양하잖아요? 그런 하나의 기조를 가지고 SNS나 우리 채널을 키워서 홍보할 수 있다고 봐요. 여러 가지 홍보방식이 많은데, 그냥 집회하면 유인물 만들어서 뿌리고, 웹자보를 홈페이지에 게시하고, 형식적으로 남들 하는 대로 하는 거지 뭔가 제대로 홍보하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기업에서 홍보하면 엄청나게 많은 수단을 쓸 거 아니에요? 선전홍보 담당자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개인은 열심히 하는 거지만 조직적으로 열심히 하는 거라고 볼 수는 없잖아요. 그게 잘못됐다고 보는 거죠.

애정 섞인 비판 발언이었던 것 같네요.

민주노총이 좋은 역할을 많이 하고 있어요. 결국은 노동자들이 힘들면 민주노총이라고 봐요.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잘 모르죠. 사람들이 여전히 예전 이미지에 갇혀 있고 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하고 아니면 한명씩 가서 설득할 수는 없잖아요? 민주노총 사업계획에도 리브랜딩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내용을 보면 홈페이지 개편, 캐릭터 만들기 그 정도예요. 그 정도로는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대해 몇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었던 편견을 절대 리브랜딩 할 수는 없어요. 선전홍보실 사업계획 보면 좋은 게 많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번 정기대의원대회가 열리기 전에 ‘#방구석 민주노총’(▶관련기사: 민주노총, ‘#방구석 민주노총’ 영상 공개)이라는 영상이 올라왔는데 보셨나요?

보긴 봤어요. 그런 시도는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만들면 좋겠어요. 그런데 내부 조합원들에게도 홍보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왜 우리가 집회를 하는지에 대해 잘 몰라요. 조직적으로 지침이 떨어져서 집회가 이뤄질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잘 정리된 콘텐츠로 보여주는 게 훨씬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해요.

아니면 내부 유튜브 채널이라도 다 구독하게 하는 방법도 있죠. 100만 조합원이잖아요? 사람들이 괜찮은 영상이면 공유할 거 아니에요? 그런 힘만 이용해도 충분히 효과를 보겠죠. 물론 집회가 중요하고 좋은 수단인 건 알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죠. 검찰개혁 집회가 조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참여한 건 아니잖아요? 분노하는 어떤 게 있어서죠.

맨날 어떻게 조합원들 한 명 더 데리고 와서 진행하는 집회로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전홍보가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과 함께 자원과 역량을 투입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